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길을찾아서] ‘19세기 민중운동사’ 조명 위해 유적지서 밤샘 토론 이이화

참된 2010. 12. 14. 06:18

[길을찾아서] ‘19세기 민중운동사’ 조명 위해 유적지서 밤샘 토론 / 이이화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44

 

 

한겨레    기사등록 : 2010-12-13 오전 08:46:35

 

 

 

 

 

» 1986년 9월 경기대 입구에 있던 역사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학술발표회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고 있다. 왼쪽 뒷모습부터 박호성 교수(서강대), 윤해동 연구원, 필자, 정운영 선생(작고·경제학자), 이균영 교수(작고·동덕여대) 등이다.

 

1986년 출범한 역사
문제연구소는 여러 가지 학술 행사를 진행하면서 옥빌딩의 사무실이 너무 좁아 사직동 사회과학원 옆의 체신노조회관으로, 다시 충정로에 있는 경기대 입구로 옮겨갔다. 89년 필동에 자체 건물을 소유할 때까지 전전했던 것이다. 이 시기 모든 경비는 거의 박원순 변호사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임헌영 부소장은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뒤풀이까지 꼬박 참여해 대화를 이끌었고 이런저런 일들을 열성으로 준비했다. 실무를 맡은 천희상도 헌신적이었다.

 

첫 발족 때부터 매월 한차례 운영회의를 열었는데, 나를 포함해 운영위원 10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는 어김없이 뒤풀이로 이어져 끝없는 방담과 회포를 나누곤 했다. 나는 곧잘 술이 취해서 식탁 밑에 발을 뻗고 드러누워 ‘혁명을 해야 한다’고 외치곤 했단다.(그 무렵 월간 <샘이 깊은 물>에 실린 ‘이이화 탐방기사’에 나온 얘기다.) 지금 떠올리니 목가적인 풍경일 수도 있었겠지만 실제로는 시세가 엄혹하고 절박한 시절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운영위원, 뒤에는 부소장을 맡으면서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19세기 민중운동사’ 모임을 꾸렸다. 86년 6월30일 전두환 정권 말기였다. 동학 등 19세기 저항운동사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정리하려는 의도였다. 내 한문서당 수강생들, 규장각에서 만난 소장 학자들, 지인들이 참여했다. 조한혜정·성범중·우윤·조민·배항섭·이상희·서영희·차미희 등 20여명이었다. 우리가 다룬 주제는 홍경래가 주도한 관서농민전쟁, 삼남농민봉기, 영학당 활동, 동학농민전쟁 등이었다. 87년 6월21일 임창순 선생이 꾸려가고 있는 남양주군(현 남양주시) 물골의 지곡서당에서 마지막 발표를 끝으로 1기를 마무리했다.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었다고 볼 수 없으나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평가를 내리려 노력했다. 참여자들의 전공도 다양했고 들쭉날쭉해서 산만한 분위기도 있었다.

 

그래서 민중운동사의 제2기는 그해 6월27일, 6월항쟁의 열기 속에서 7명을 구성원으로 해서 새롭게 출발했다. 한 달에 두 번 발표를 하고 토론을 벌였다. 첫째 민중운동의 발생 배경동기, 둘째 참가 계층의 성격, 셋째 운동의 지향, 다섯째 용어의 정리 등으로 나누어 살폈다. 주제와 관련된 사료도 분석했다. 겉보기에는 학술 연구에 치중한 듯했으나 나름 실천적 의미를 담으려 노력했다.

 

이를 토대로 해서 87년 10월에는 ‘한국 근대 민중생활사’를 다루는 세미나팀을 진행시켰다. 민속학의 주강현, 종교학의 진철승 등이 새로 참여했다. 이 모임은 민중조직과 민중사상에 대한 집중적 연구를 통해 근현대 민중운동사의 본격적 서술에 기여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여기에서 다룬 주제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노동조직인 두레를 비롯해 계(契)·동회(洞會)·향회(鄕會) 등 마을공동체 안에서 가동되고 있던 다양한 조직을 포괄했다.

 

2기 참여자들은 무엇보다 현장 답사를 중요한 행동과제로 설정했다. 전북 모악산 일대와 원평 그리고 변산반도 답사가 뜻깊었다. 유홍준 교수를 비롯해 우윤·조민·주강현·진철승 등이 주로 답사대였는데, 모악산을 가로질러 원평의 증산교 유적이 있는 곳에서 밤을 새웠다. 우리는 증산교 전공자인 홍범초 등과 함께 밤을 새우면서 토론을 벌였다. 이어 변산반도에서는 조선 후기에 일어난 도둑의 근거지를 살폈다. 또 부안군 일대에서 정월 대보름에 벌이는 대동전, 원평의 동학농민군 유적지 답사, 경북 일월산 최시형·이필제·신돌석 유적지 답사, 경북 소백산과 풍기의 정감록 관련 유적 답사를 하고 조사활동을 벌였다.


» 이이화 역사학자

답삿길에는 늘 경비에 쪼들려서 봉고차를 빌리고 나면 밥을 사먹기에도 쩔쩔맸다. 때로는 아는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원평에서는 모악향토사를 연구하고 안내하는 최순식 선생 같은 분이 우리 일행에게 밥과 술을 사주면서 편리를 보아주었고 헤어질 적에는 여비 봉투도 찔러주곤 했다. 아무튼 두 모임은 훗날 역문연의 역사기행과 동학농민전쟁기념사업 모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이이화 역사학자

 

기획연재 : 길을 찾아서

 

 

 

 

기사등록 : 2010-12-13 오전 08:4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