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인터넷상에 있는 글로 글쓴이를 찾아보았는데 오마이뉴스 블로거 늑대별님인거 같았으나 블로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범능 스님과의 대화_음악도 지극하면 도를 이룬다.①
80년대를 다시 떠올린다는 것은 일종의 고역이다. 그것은 의심할 바 없는 "짐승의 시간"이었다.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모멸의 시대였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는 그의 「모토」라는 시에서 나치하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이 어두운 시대에도 노래는 불려질 것인가?"라고 되물은 바 있다. 그렇게 80년대 어두운 시절에도 노래는 있었으며 불려지고도 있었다.
"황성옛터"의 폐허에서도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어쩌고 하는 사랑 타령은 있었으며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말한 그 사람이 곁에 있기라도 하면 몽신 두들겨 패주기라도 할 듯이 온 목청을 다해 절규하는 용필 '오빠'의 노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을 울린 것은 이른바 '민중가요'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미 민중가요의 고전이 돼버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비롯 수많은 민중가요들이 압제와 싸우는 현장에서 불리워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 못지 않게 많이 불려진 민중가요중에는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 무엇이 두려우냐 출전하여라 / 억눌린 민중의 해방을 위해 /나가 나아가 도청을 향해/ 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이런 가사를 가진 「광주 출전가」가 있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광주에선 유명하지만 다른 데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정세현이라는 가수다. 다른 민중가요들은 그 전투성으로 하여 어느 정도 섬뜩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지만 정세현의 노래엔 국악적인 요소가 곁들여 있어 사람들을 안돈시키는 점이 있다.
나는 그의 노래가 실린 테잎 몇개와 1991년 지구 레코드에서 출시된 <통일은 언제일까>라는 음반을 지금도 갖고 있다. 그 시대를 횡행하던 모든 이념이 사라진 지금도 그는 여전히 80년 광주를 노래하고 있을까. 아니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마침 그의 후배이자 내가 회원으로 가입한 국악 사이트 운영자에게서 그 광주의 민중가요 가수 정세현이 대전 시내 포교당에서 스님으로 계신다는 귀뜀을 받았다. 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가 왜 80년대의 첨몌한 운동의 현장을 떠나 불가에 귀의했는가라는 세속적 호기심에 보다 그가 가진 비밀스런 생의 고뇌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80년대 광주의 유명한 민중가요 가수 범능 스님(속명 정세현)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스님이 계시는 대진정사는 대전시 대흥동 시내 한 복판에 삼층에 위치해 있는 수덕사의 대전 포교당이다. 3층 계단을 올라가니 어떤 보살님이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범능스님을 만나러 왔다고 했더니 수덕사에 촬영차 올라가셨단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내가 나서서 되는 일이 없다.
스님이 겪은 인생유전을 소재로 대전 MBC가 다큐멘타리를 찍는 모양이다. 스님을 만나지 못한 것도 아쉬웠지만 더욱 아쉬운 것은 그 프로그램이 로컬이라는 것이었다. 로컬 프로그램이라면 아무래도 보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그의 삶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범능 스님을 찾아가면서 그의 첫번째 LP 앨범인 <통일은 언제일까>를 가지고 갔다. 그런데 이 앨범은 주방에서 일하는 보살님들에게까지 두루두루 구경거리가 되었다. 귀한 앨범이라며 웃고 난리가 났다. 아마도 스님의 지금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내가 헛걸음을 친 게 미안했던지 범능스님의 속가의 동생이라는 선용 스님을 모셔왔다. 스님은 강진 백련사에 계시는데 잠깐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입산은 선용스님이 범능 스님 보다 먼저라고 한다. 선용스님에게서 가족사를 들었다. 범능 스님은 5형제란다. 그런데 그 가운데 4형제가 출가를 했다고 한다. 참으로 질기고 질긴 불연(佛緣)이 아닐 수 없다. 선용스님에게 이번에 범능스님이 냈다는 음반과 전에 속가에 있을 적에 낸 음반의 음악적 차이에 대해서 물었다. 선용스님은 아무래도 불가의 음악은 명상적이 아니겠는가고 말씀하신다.
내일은 미리 전화를 하고 만나러 가기로 했다. 불당을 나서는 길에 범능 스님이 새로낸 앨범 <오월의 꽃>과 <먼산>을 샀다. 앨범의 겉 표지를 살펴보니 <먼산>은 거의 시를 노래로 만든 것이라서 잔잔한 곡들인 것 같다. <오월의 꽃>은 전에 부른 곡을 리바이벌 한 것도 있고 해서 조금 더 강렬할 것이다.
계단을 내려 오면서 보니 2층은 가요주점이었다. 스님의 수행처로선 이보다 더 절묘할 수 있을까. 반짝거리는 온갖 마군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불도를 닦기엔 더 없이 좋은 곳이 아니겠는가. 본디 聖과 俗은 경계가 없는 것이거늘 ...번뇌도 오래되면 더러 꽃이 되는 수도 있느니...
그가 낸 첫번째 음반에 실렸던 <섬진강>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김용택의 시에 붙여 만든 그 노래에는 6,70년대 이별의 장면이 선명하게 잘 그려져 있다.
섬진강
가네 가네 떠나가네 찔레꽃 핀 강길 따라 가네.
덤불같은 우리어메 손짓에 눈물이 앞을 가려
서울가는 자식의 호주머니에 몇 푼 안되는 노잣돈을 찔러주며 자식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들길에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어딘가 낯익은 풍경. 가을은 설움까지도 함께 익어가는 그런 계절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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