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영화

밥주걱 부대 ‘서울 입성’(2002.3.27)

참된 2009. 2. 20. 17:13


 

 

 

 

 

 

 

 

 

 

 

            사진/ (한겨레 윤운식)

 

 

 

 

[ 사람이야기 ]

 

 

 

 

한겨레 21   2002년03월27일 제402호 


밥주걱 부대 ‘서울 입성’

 


“<밥·꽃·양>을 아시나요”  


제작과정부터 상영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노동 다큐멘터리 <밥·꽃·양>이 첫 서울 공개 나들이에 나섰다. 상영을 앞두고 부산에서 무거운 배낭 차림으로 서울에 온 임인애 감독(43)은 일반 감독과 달리 ‘진짜 노동자’ 냄새가 진하게 묻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뒤, 10년 넘게 울산을 비롯한 전국 노동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뛴 탓이다. <노동자란 무엇인가> <산업재해, 당신은 안전합니까> 등 웬만한 공장 노동자들은 임 감독의 다큐멘터리 한편씩은 접했을 터다.

 

<밥·꽃·양>은 지난 98년 정리해고를 둘러싼 울산 현대자동차노조 총파업이 ‘노사 277명 정리해고안 합의’로 평화적으로 끝난 그 사건의 이면을 뒤집어보는 다큐멘터리다. 당시 주요 해고자들은 현대자동차 공장 안 ‘늙은 식당 아줌마’들이었다. 나이 많은 여성인데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극빈 가정의 실질 가장인 탓에 ‘밥주걱 부대’로 불리며 누구보다도 총파업에 열심히 참여했으나, 결국 노사 양쪽은 이들을 희생양으로 일반 남성 노동자의 정리해고를 막는다. 다큐멘터리는 98년 총파업부터, 식당 아줌마들이 하청노동자로 전락한 뒤 복직투쟁 과정에서 노조가 이들 문제를 회피하자, 결국 노조를 상대로 ‘조합원으로서의 신분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하는 데까지 좇았다. “순간마다 카메라를 던지고 함께 싸우는 게 옳은 게 아닌가 고민했지만 결국 단식농성으로 아줌마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가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카메라를 드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소수자 집단 안에서도 결국 가장 열악한 위치의 소수자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담고 싶었다”는 임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진보진영 안의 무의식적 권위주의와 타성”을 꼬집고 말았다. 결국 지난해 9월 한 인권영화제에 초청됐다가 “노조의 압력으로 영화제 쪽이 사전심의를 시도했다”는 영화제측 프로그래머의 폭로로 <밥·꽃·양>은 세상 속에서도 거친 수난을 겪어야 했다. 공방과정에서 심신이 지친 임 감독은 “영화 상영을 포기”하려 했으나,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시민이 모여 만든 1<밥·꽃·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설득으로 서울 상영에 나서게 됐다. 하지만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임 감독은 순식간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임 감독은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이 작품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며 나직하게 말문을 닫았다.

 

 

예매문의 www.babsamo.com

김아리 기자/ <한겨레> 사회부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