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영화

"싸워야할때 싸우지 않으면 폐인돼"(2002.5.2)

참된 2009. 2. 20. 15:28

"싸워야할때 싸우지 않으면 폐인돼"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 <밥.꽃.양> 상영... 감독과의 대화

 

   허미옥 (pressangel)  오마이뉴스

 

 

 

지난해 울산인권영화제에서 사전검열논란으로 사이버공간을 뜨겁게 달구었던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 '밥꽃양'(감독 임인애, 제작팀 LARNET, Labor Reporters' Network)이 지난 29일, 대구에서도 상영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찾기 행동주간 중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영화 상영 및 감독과의 대화'에서 임인애 감독은 "영화가 아니라 보고서 형태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2시간10분 동안 이 영상을 지켜본 사람들의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며 "마지막을 to be continue... 로 결론 지은 이유는 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기록하겠다는 제작팀의 의지"라고 밝혔다.

밥꽃양이 상영된 대구교육대 상록관 500석은 빈자리 없이 꽉 찼고, 박창근 씨가 무대위에서 '이유'(밥꽃양의 배경음악)를 부르면서 영화는 서서히 시작되었다.

이유

내게 목을 죄는 쇠사슬을 준다면
나는 순순히 응하지 않을 거야, 물어 볼 거야
내게 사랑을 원하고저 한다면
나는 쉽게 그것을 말하지 않을 거야. 침묵할 거야
왜 내가 인정해야 하는지,
왜 내가 상처를 받아야 하는 지
그 대답을 들어야만 할까봐
그것이 내가 줄 최선의 것인지
나는 어떤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지
창문을 열어 새벽 바람을 맡을까봐

꽃이 피는 이유를 꽃이 지는 이유를
함께 사는 이유를 시기하는 이유를
기뻐하는 이유를 미움받는 이유를
죽어가는 이유를 기도하는 이유를
난 물어보고 싶어 살아가는 이유를

난 물어보고 싶어 함께 살아가는 이유를


<영화 줄거리>

1998년 여름 노동운동의 성지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벌어졌다. 살벌하게 진행된 파업은 그러나, 한 번의 공권력 투입없이 노사정 협의하에 277명의 정리해고를 통과시킨다. 밥하는 아주머니들의 숫자는 276명. 아주머니들은 가장(남자)이 짤리면 가정이 끝장난다,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며, 상황이 호전되면 바로 복직을 시켜주겠다는 위원장 이하 (남성)노조의 압박과 회유에 서럽게 울면서도 정리해고를 수용한다.

정리해고 투쟁 과정에서 많은 아주머니들이 떨어져 나갔고, 남은 아주머니들의 인원은 144명. 결국 133명의 남성노동자와 144명의 여성노동자를 해고시키며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끝을 맺는다.

이후 경기가 호전되고, 국내 경쟁 자동차들의 타격 등으로 창업 이래 최대의 호황을 맡게 된 현대자동차. 함께 해고되었던 133명의 남성 노동자들은 복직이 되었지만, 밥을 짓는 아줌마들은 그러나 여전히 하청일 뿐이다. 노조측에 복직을 요구하지만 야멸찬 무시를 당한다. 그제서야 자신들은 협작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싸움을 시작했다. 농성과 단식, 나체시위,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밥하는 아줌마들이기에 천대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성공으로 이끈 숨은 공신들, 투쟁이 낳은 꽃들, 그러나 마침내 희생의 제물로 바쳐진 무죄한 양이 된 그녀들. 그러나, 그녀들의 이야기는 to be continue...

관객들의 평가도 각양각색

영화 상영 간간이 훌쩍이는 소리와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이기도 하고, 노조식당 여성조합원들의 절규에 가슴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켜질 때 즈음 상영관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충혈된 눈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임 감독의 이야기대로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다양했다.

"여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힘이 없으니 저렇게 당하지."
"결국 기득권층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경쟁시키면서 정규직에 의해 비정규직을 거세시키는 것이다."
"화면이 너무 거칠고 오디오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영화 전반을 이해하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학교 식당에서 밥짓는 아주머니들을 좀 더 새롭게 볼 것 같다."
"정리되지 않은 결론이 아쉽다. 예전에 노동영화에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싸워서 자본가를 이겼다. 아니면 위기에 처한 동료를 구했다는 등의 메시지가 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등등.

"투쟁은 조직과 정책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

잠시 자리가 정돈된 후 150여 명의 청중과 임인애 감독과의 대화에는 영화를 통해 채 습득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싸우면서 사측의 논리를 그대로 배워 활용하더군요"라는 임 감독은 "노조식당이라고 하면 사용자가 노동조합이 되죠. 노동조합간부가 사측이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식당아줌마들을 탄압하고, 비아냥거리고, 그들의 천막에 와서 갖은 회유로 설득하려고 했습니다"고 주장했다. 결국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쉬쉬하던 노동조합의 관료성과 기득권의식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다음은 임 감독과 가진 질의응답 내용이다.

-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는?

"87년부터 노동현장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왔었다. 원래 노동운동은 항상 '밥'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파업전야도 '이게 개밥이지, 사람밥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87년부터 노동운동은 시작되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다. 87년에 20대였던 노동자들이 지금은 40대가 되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더욱 나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영화는 평조합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장에서는 피 터지게 싸우고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노조간부와 사측과의 중재 또는 합의만을 아름답게 그린다.
결국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평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울산인권영화제 상황을 통해 느낀 점은?

"영화중간에 보면 여성노조원의 마이크를 뺏는 현대자동차 조합원의 모습이 촬영된 부분이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에서는 이 장면을 빼달라고 요구를 했다. 하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만일 그런 요구가 수용된다면 영화상영 자체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진보진영이라 일컫는 사람들의 사전검열 사태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힘에 의해 우리측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밥꽃양 사이트가 만들어 지고 영화관련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사이버공간을 통한 폭넓은 토론과 공방 등이 영화를 직간접적으로 빛나게 해준 것 같다.

그리고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를 찍을 때 우리는 항상 제3자의 위치였다. 식당 아주머니들은 투쟁하고 우리의 역할은 그 장면을 영상에 담는 것이었다. 하지만 울산사태를 겪으면서 아주머니들이 처한 현실을 정말 절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주머니들의 싸움을 영상으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 화면에 담지 못했던 부분은?

"노동조합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조차도 식당 아줌마들의 복직요구는 묵살 당한다. 천막농성과 단식, 그리고 응급실로 실려가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아줌마들은 노동조합사무실이 있는 본관 로비를 점거하게 된다. 그리고 가위를 목에 대고, 석유통을 들고 마지막으로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나체시위를 하게 되었던 것.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원은 3만4천 명이다. 그 조합원들이 노조식당 여성조합원 140명을 막아주지 못하더라. 과연 이 장면까지 찍어서 이 영화에 포함시켜야 했는지 회의스러웠다. 이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을 'to be continue... '로 기록했다. 이 외에도 아줌마들이 단식 농성을 통해 단련되는 모습들, 집회가 끝나는 시점에서는 전화통에 불이 난다. 자식과 남편이 요구하는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에 대한 요구로 인해. 이런 장면까지는 담지 못했다."

다른 투쟁현장에서 상영할 계획은?

"글쎄, 과연 어느 현장에서 이 영화에 대한 상영요구가 올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투쟁현장에서는 감동을 주는 영상이 필요할 텐테 이 영화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정리해고 당했다 - 싸웠다 - 안되더라 - 노동조합 간부가 사측과 똑같더라 - 아직도 계속 싸운다'라고 할 수 있다. 한창 싸우는 사업장에 여지없이 깨지는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그리고 이 영화는 싸우는 현장에서 투쟁의지를 키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파업전후에 여유를 가지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노조위원장은 카메라 앞에서 아무 때나 악수하면 안돼"

"노조위원장은 카메라 앞에서 아무 때나 악수하면 안됩니다"는 임 감독은 "언론과 사측은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써가며 이미지 연출에 혈안되어 있습니다. 협상테이블까지도 세밀한 구조로 세팅되어 있죠"라며 대기업 노조의 대외협력국은 항상 언론과 여론만을 생각한채 이리저리 조율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일까? 영화 장면 중에는 노동위원장과 노동조합활동가가 중재단을 구성, 아줌마들을 중재하려는 장면이 있다. "제발 삭발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제발 이제 천막은 걷으시지요?"라며 중재하는 척 하다가 천막 밖에서는 저희들까지 악수하고 만면에 웃음 짓는 기만적인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있다.

결국 "싸워야 하는 순간 싸우지 않으면 폐인이 된다"는 임 감독의 이야기는 점차 관료화 되어가는 노동운동현장에 의미있는 문제를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cham-i.org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02-05-02 21:53                                         ⓒ 2007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