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멤버이자 김용민 전 국민라디오 PD가 주축이 돼 출범한 미디어협동조합 국민라디오 프로그램들도 비교적 팟캐스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정봉주·김어준·김종배·장윤선 등 개인의 유명세에 따른 인기 팟캐스트 외에도 이박사(이종우)와 이작가(이동형)의 <이이제이>, 정영진과 최욱의 <불금쇼> 등 떠오르는 팟캐스트 스타들이 있는가 하면 송은이와 김숙, 배칠수와 전영미 등 기존 스타들까지 가세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 ||
팟캐스트 시장에 뛰어든 기성 언론은 고전 중
이에 탄탄한 기획력과 연출, 포털사이트와의 연계 등으로 청취자 유인에 힘쓰고 있던 라디오 뉴스·시사 프로그램들마저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맞춘 다시듣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팟빵을 운영하고 있는 코리아센터닷컴 김동희 기획해외사업본부 실장은 “JTBC<마녀사냥>, <김제동 톡투유> 등 기성언론이 많이 팟캐스트에 뛰어든다. 하지만 콘텐츠를 팟캐스트용이 아닌 오디오 파일로만 바꿔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지상파 종편 등에서 오는 콘텐츠가 수용자가 듣기 좋게끔 팟캐스트용으로 편집돼 업로드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BS 뉴스 팟캐스트 <골룸(골라드는 뉴스룸)>을 진행하는 김성준 앵커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보도국에서 뉴미디어 쪽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방침도 있었고 가능한 플랫폼에 모두 들어가 보자는 시도를 하자는 얘기가 있어, 우리도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며 “우리의 고민 중 하나는 팟캐스트 수용자들의 행태나 성향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 였고, 처음에는 심지어 ‘이따위로 할 거면 팟캐스트 하지 마’라는 댓글도 달렸는데 조금씩 우리의 의도를 공감해주는 청취자들이 생기는 것 같아서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했다.
“막말 방송은 알아서 도태될 것”… 규제 필요하지만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울라
승승장구하는 팟캐스트지만 그늘도 있다. 지난 4월 개그맨 장동민이 MBC<무한도전>멤버 후보에 오르면서 뒤늦게 그가 속한 개그 트리오 옹달샘(유세윤·장동민·유상무)의 팟캐스트<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의 여성비하 발언과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자 조롱 발언이 물의를 빚었다. 일부 팟캐스트의 표현 방식이 과하다는 지적은 <나는 꼼수다>때부터 제기돼왔다. 누구나 손쉽게 찾아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의 특성상 방송 내용에 대한 심의·규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일었다.
하지만 팟캐스트는 방송의 범위 밖에 있어 방송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방송법은 방송을 ‘기획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개별계약에 의한 수신자)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해 공중에게 송신하지도 않고, 방송 통신설비의 기술기준이 규정한 전기통신설비도 이용하지 않는 팟캐스트는 법률상 방송이 아니다.
다만 팟캐스트는 정보통신으로 분류돼 정보통신망법에 의한 규제를 받는다. 팟캐스트에 명예훼손, 음란, 사행행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내용이 있을 때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할 수 있다. 방통심의위는 현재까지 2개의 팟캐스트, 4건의 콘텐츠에 제재를 가했다.
지난 2013년 팟캐스트 <원나잇스탠드>와 올해 <야광성교육쑈>를 성관계 경험담 등 원색적인 내용을 다뤘다는 이유로 통신심의규정에 의한 청소년유해물로 지정한 것. 팟빵 집계에 의하면 현재 활성화된 팟캐스트 채널만 해도 8000여 개다. 이를 일일이 심사해 규제를 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방통심의위 관련자는 “팟캐스트가 방송형태지만 통신정보에 해당돼 방송처럼 공정성, 객관성 심의가 불가능하다”며 “인터넷 매체 특성이나 표현의 자유도 고려 요소”라고 설명했다.
규제 필요성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팟캐스트가 기성언론이 다루지 못하는 의제를 다루고 많은 이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주는 대안매체의 성격을 지닌 만큼 규제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불금쇼>, <미디어토크> 등의 팟캐스트를 제작·진행했던 김용민 전 PD는 “사회적 비판이나 풍자를 위해 나오는 ‘맥락 있는’ 욕설은 대중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무분별하게 혐오발언을 하는 팟캐스트가 있다면 듣는 사람이 불편해서 알아서 안 듣고 그 방송은 알아서 도태될 것”이라고 자정기능을 강조했다.
김성준 앵커도 “결국은 수용자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팟캐스트 시장이 성숙할수록 재미삼아 막말하고 편파적인 방송을 떠드는 곳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돼 수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웅 국민라디오 국장 직무대행(PD)도 “국민라디오는 자체적인 기준으로 욕설을 금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때때로 팟캐스트의 재기발랄함을 위해서 욕설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방송인의 자율규제와 팟캐스트 시장 내 자정작용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병남 강원대 언론학 박사는 “기존 미디어들이 제대로 시청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팟캐스트에 심의가 적용되면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로 갈 수도 있다”며 규제에 의한 표현의 자유 축소 가능성을 우려했다.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 ||
다양성 부족과 스타플레이어 위주의 인기…청취자 파이 키우기도 중요
다양성 부재와 제작시스템의 양극화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나꼼수 전성기 때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팟캐스트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방송은 시사정치 콘텐츠다.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팟빵 순위 10위권 안에 있는 팟캐스트 가운데 <지대넓얕>, <법률스님의 즉문즉설>,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사정치 팟캐스트다. 또한 정치인이나 사회 유명인사가 나오는 방송도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임대웅 PD는 “기존부터 잘 되던 팟캐스트와 유명인이 나오는 것 외에는 (잘 되기가) 어렵다. 팟캐스트 시장은 진입은 쉽지만 진입 이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명망가 출연 방송 위주로 인기를 얻으며 일반인이 뛰어들기엔 만만찮은 시장이 됐다는 것이다. 이어 임 PD는 ‘청취자 파이는 한정돼 있는데 플레이어는 늘어나는 상황’을 문제로 꼽기도 했다. 그는 “현재 업계에서는 나꼼수 때 듣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팟캐스트를)듣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안 듣던 사람이 새로 듣는 게 아니라 기존에 듣는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청취층 발굴을 강조했다.
김용민 전 PD도 다양성 부재를 지적하며 제작이 쉬운 팟캐스트의 특성상 이를 퍼블릭액세스(언론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미디어에서 탈피해 수동적인 시청자에서 능동적인 생산자로 바꾸자는 운동)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스템만 잘 갖춰진다면 좋은 콘텐츠를 가진 일반인들이 제작하는 팟캐스트도 충분히 인기를 얻고, 다양성 확보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PD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만드는 지상파 프로그램을 보면 실제 시민들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시민들이 좋은 기획을 가져오면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식으로 팟캐스트를 육성하면 표현의 자유도 보장하고 공익을 보장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이런 스튜디오 지원이나 교육을 팟빵이 담당하고 있다”며 “팟빵이 팟캐스트계의 방송통신위원회”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런 논의에 대해 한국언론진흥재단 관계자는 “팟캐스트가 저널리즘의 대안이 된다고 판단했다면 교육 과정이 있을 텐데 이런 것에 대한 공감대가 아직은 없는 현실”이라며 “팟캐스트 관련 교육은 재작년 현직 PD들을 대상으로 강좌가 한 차례 열렸을 뿐 따로 지원되지는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팟빵 관계자는 지난해 방송콘텐츠진흥재단에 팟캐스트 제작과 프로모션과 관련한 지원을 요청했으나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상업 광고 비중이 높은 라디오 방송처럼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사나 일반 기업들 입장에서는 선뜻 팟캐스트 시장에 뛰어들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기업 전략기획실 담당자는 “팟캐스트도 기업이 하면 홍보나 광고 느낌이 들어 아직 전면적으로 내세우진 못하는 것 같다”며 “TV나 라디오는 PPL(간접광고)도 넣기 쉬운데 팟캐스트는 그렇지 않고, 콘텐츠 자체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진 기업이나 제품이 아니면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 ||
지상파 방송·기업에게도 또 다른 가능성
여러 문제가 제기됐지만 여전히 업계 종사자들이 바라보는 팟캐스트의 미래는 희망적이었다. 지상파 라디오 종사자들의 시각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빛나 MBC 라디오 PD는 “경제나 육아 같은 특정 분야는 열정적으로 소비하는 계층이 있지만 기존 방송 시스템상 다 편성할 수가 없어 공급이 원활치 않았다”며 “일반인들이 만들기엔 전문적이라 부담스럽지만 기존 방송의 편성에는 다 담을 수 없었던 내용을 지상파의 노하우를 이용해 팟캐스트로 만든다면 수요와 공급이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혜윤 CBS 라디오 PD는 “우리도 대안 미디어로서의 팟캐스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이제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 청취자가 어디에 귀를 기울이냐가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팟캐스트 전문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김건우 미디어자몽(주) 대표는 “과거 페이스북이 1인 미디어처럼 개인화된 영역에서 기업의 채널이 열리면서 상호작용 효과를 일으켰듯이 팟캐스트도 기업 홍보 수단으로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고 본다”며 “개인이 하기 힘든 기부행위 등을 기업이 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만들어 낸다든지, 실제로 기업이 제한적인 올드미디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소통의 창구로 팟캐스트를 활용하는 긍정적인 아웃풋(output)도 목격했다”고 밝혔다.
김용민 전 PD는 총선 국면에 들어서면 팟캐스트가 핵심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들은 신문 구독자와 달리 자신이 직접 내려받고 시간을 내어 듣는 충성도 높은 수용자들”이라며 “김어준의 <파파이스>는 최근 100만, 노회찬·유시민·진중권의 <노유진의 정치카페>은 60만 다운로드가 됐다. 이런 매체력은 조·중·동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충분히 잠재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