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

[스크랩] 우리가 다음에는 조선남

참된 2014. 11. 28. 02:11

우리가 다음에는

 

 

선고 공판이 있는 날 새벽 4시, 일어나 가슴을 친다.

나의 미욱한 싸움은 수많은 동지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평생 일밖에 몰랐던 순박한 동지들이

폭도로 몰려 줄줄이 잡혀와 무거운 중형을 선고 받았고

또 오늘 저들의 법정에 죄인이 되어 선다.

 

우리는 투쟁에 앞서

자본과 그 하수인인 경찰과 검찰의 반격에 대해, 미리

충분하게 대비하고 그에 따르는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미 저들은 똑 같은 방법으로

세 번씩이나 우리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

 

울산 남부경찰서 앞

대구 수성경찰서 앞

포항 포스코 정문 앞

함정을 파고, 덫을 놓고, 언론까지 대기시켜 놓고

토끼몰이를 하듯, 해산 명령도 없이 굶주린 이리떼처럼 덤벼들었다.

수백 명의 동지들이 부상입고, 연행되고, 구속되고 그리고 죽어갔다.

거리는 온통 노동자의 피로 물들어 갔는데, 텔레비전에는 흉악무도한

폭도로 방영했다. 카메라의 앵글을 그렇게 잡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시작부터 저들의 음모는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일체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

하청 노동자들의 원청을 상대로 한 요구는

최소한 노동자의 권리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거센 투쟁의 물결은 순식간에 결집되었다.

투쟁의 폭발력은 순식간에 모든 건설 현장을 멈춰 세웠고

일제히 전진하는 노동자의 군대로 무장시켰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순박한 노동자들은 이미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하루 하루 목숨을 걸고, 살아남아야 했던 절박한 현실이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무장 시키고 있었다.

 

현장에서 신었던 안전화를 그대로 신었고,

현장에서 썼던 안전모를 그대로 쓰고 나왔다.

땀을 닦던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고

일할 때 끼던 장갑을 그대로 끼고 있었다. 이제,

그 손에 무엇이 잡히던 잡히는 대로 무기가 되었다.

 

아! 아!

그러나 나의 미욱한 투쟁은

우리들의 순진하기만 했던 투쟁은 참혹하게 패배했다.

 

자본은 철저하게 번득이는 계급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았는가.

저들은 일사분란하게, 신속정확하게 공조체제를 꾸리고 반격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순진하게도

기껏 불법 하도급 철폐를 요구했고

기껏 해야 시공참여자 폐기 하라고

8시간 노동제 보장하라고

최소한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임금을 보장 해 달라고

우리의 요구는 너무 순박하지 않았는가.

이미 100년 전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쟁취한 법으로 보장 받고 있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요구하였을 뿐이다.

 

처음부터 우리들의 투쟁은 너무 순진했다.

우리들의 투쟁으로 전개될 저들의 반격과 공세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고 준비해야 했다.

 

아! 동지들,

이 모든 패배는, 참혹한 패배는 나 때문이다.

믿고 따라 주었던 동지들!

한 평생을 거친 공사판에서 노동자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현대판 임금노예로 살아가야 했던 건설 노동자

인간으로 일어서고 싶었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 순박한 노동자들

 

이제는

이제는 우리들의 소중한 동지들이

죽어가도록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서툰 싸움, 어설픈 투쟁은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

저들의 법정에 서서 맹세하리라

 

저들의 법정에 서서 맹세하고 다짐하리라

우리의 수많은 동지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저 법정 앞에서

죽어간 동지들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또 맹세하리라

 

다음에는 저들이 덫을 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

투쟁본부 압수수색에 대비하고

일방적인 집회 불허에 미리 대비하고, 작전을 세워

굶주린 이리떼처럼 덤벼드는 야만적인 탄압에 대해

동지들을 지켜내고, 날 세운 방패에 찍혀 맞아 죽지 않겠다.

저들의 보도지침에 따라 폭도로 매도하는 보수 언론에 대해

이 땅의 모든 양심적인 세력과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입을 통하여 진실을 알려 낼 것이다.

우리가 다음 투쟁에는 구체적인 방법과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연대의 폭을 넓히고 투쟁을 확장하여

지역과 업종을 넘어 모든 건설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확장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중심에 서서

진군하는 노동자의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한 가슴에 칼을 갈아야 할 것이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은밀하게 다음 투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출처 : 늙은 노동자의 노래
글쓴이 : 조선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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