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영화

태준식이 노무현을 통해 주는 슬기로운 해법 [강성률의 씨네포커스] 태준식 감독의 '슬기로운 해법'

참된 2014. 11. 22. 02:31
태준식이 노무현을 통해 주는 슬기로운 해법
[강성률의 씨네포커스] 태준식 감독의 '슬기로운 해법'

입력 : 2014-05-22  14:50:35   노출 : 2014.05.22  15:23:59
강성률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 rosebud70@hanmail.net   미디어오늘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침몰’을 상징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차가운 바닷속에 수장 되었다. 한 달이 경과한 아직도 침몰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고, 실종자도 모두 구조되지 않았다. 해운회사, 해경, 정부 모두 비판 받아 마땅하다. 돈 때문에 무리하게 증축하고 운행한 회사, 구조에 무능함을 보여준 해경, 스스로 재난 콘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말한 청와대 등을 보면 현재 한국의 부실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참사임에 분명하다. 스스로 책임지려는 이들은 없고 서로에게 떠넘기려고만 한다.

이 참사에서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언론. 기자 그 누구도 집중 취재를 하지 않고 정부의 입장만 그대로 받아쓰면서, 정작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희생자 부모들의 그 절박한 상황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외면만이 아니라 왜곡하면서 국민을 호도했기 때문이다. 희생자 부모들이 기자들의 출입을 금하고 그들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무엇을 상징하는가? 국민들이 밤만 되면 인터넷을 떠돌면서 정보를 모아 각자의 소설을 쓰도록 만든 것은 분명 언론에게 책임이 있다. 어떤 언론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재구성을 해야 했던 것이다.

현실과 거리가 있는 언론.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왜곡해 자신들이 스스로 권력이 되어버린 언론. 한국언론사에 길이 남을 부끄러운 단어, ‘기레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기자 + 쓰레기’라는 조합어. 어쩌다 기자가 쓰레기가 되었을까? 아니, 그런 조롱과 비아냥을 일반 국민들이 동의하는 수준으로 언론이 추락한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언론은 왜 문제가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 것인가?

   
▲ 영화 ‘슬기로운 생활’ 포스터
 
태준식 감독의 다큐 <슬기로운 해법>은 이 문제에 집중한다. 태준식이 제시하는 문제점은 간단하다. 그가 영화 도중 인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에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있다. “언론도 달라져야 합니다. 더 이상 특권을 주장하고 스스로 정치권력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에 충실하고, 공정하고 책임 있는 언론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론의 수준만큼 발전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남은 개혁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정확하고 명쾌한 지적인가!

현재 보수 언론에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지 태준식은 몇몇 사례를 들면서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 입맛에 맞는 소설을 쓰는 수준에 도달한 보수 언론의 작태를 신랄하게 고발한 것이다.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원칙처럼 되어버린 부동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언론이 왜 다루는지, 보수 언론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왜곡을 입맛에 맞게 일삼고 있는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비교하면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또한 그런 언론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된 삼성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면 영화는 언론이 왜 부동산 불패 신화에 편승해 거품을 조장했는지 이야기하고, 그 언론 권력이 어떻게 정치를 지향하면서 폐를 끼치고 있는지 해부하며, 언론이 결코 비판하지 못하는 유일한 권력이 된 삼성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지금, 2014년 언론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맨얼굴이라고 진단한다.

태준식의 진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보수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사회의 창(窓)이 아니라 날카로운 무기인 창(矛)이 되어버렸다. 다큐에서 홍세화가 말한 것처럼, 전직 대통령도 언론에 희생당하는 시대라면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라는 지금의 막대한 문제. 언론이 권력이 되고 아무도 견제하지 못하는 시대.

그럼에도 이 다큐를 보면서 몇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왜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중요한 소재로 선택했을까? 노무현을 선택하면 흡입력이 강하고, 그만큼 영화적 구성도 탄탄해질 수 있지만, 그의 전작 <당신과 나의 전쟁>에서는 노무현을 강하게 비판했었다. 그 사이 태준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슬기로운 해법>의 구성은 <당신과 나의 전쟁>과도 비슷해 보인다. 앞으로 일어날 불확실한 일을 기록하면서 다큐적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사후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들의 문제’라는 접근 방식 말이다.

둘째, 왜 태준식은 하필 언론이라는 문제를 해부하고 진단하면서 <슬기로운 해법>이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다르게 말하면, 지금의 언론이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다큐가 해법까지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태준식은 스스로 <슬기로운 해법>이라고 칭한 후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흥미롭게도 인터뷰이 스스로 특별한 해법이 없다고, 참으로 어려운 전쟁이라고 말한다. 태준식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아무래도 태준식은 이 때문에 노무현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언론에게 무한 자유를 주고서도, 권력이 된 언론과 끊임없이 싸우고 긴장 관계를 유지했으며, 끝내 그 언론에게 희생당한 노무현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정연주 KBS 전 사장의 말처럼, 지금 상황은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비율이 심하게 기울어진 축구장처럼 되어 있고, 그런 곳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는 경각심을 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농부가 농토를 비판할 수 없듯이, 선수가 경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지닌 선수가 되라는 당부. 이것이 우리를 격려하는 가장 ‘슬기로운 해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