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2ㅣ위클리경향 802호
[사회]511일의 투쟁, 안타까운 절반의 승리
비정규직의 서러운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잡은 손 놓지 맙시다”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상암동 홈플러스 월드컵점에서 연 ‘마지막’ 투쟁문화제에서 빨간 장미꽃 수백 송이로 만든 펼침막을 들고서 서로 얼싸안고 울먹이며 아쉬움을 나누고 있다. <한겨레>
정확히 511일 만이다. 지난해 6월 30일 이후 ‘비정규직의 상징’으로 불리며 계절을 6번이나 넘겨온 아줌마들, 이제 그녀들이 다시 계산대 앞에 선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이랜드그룹이 계산 업무를 외주화하며 계약 해지를 한 데 맞서 홈에버 상암점 점거 농성으로 시작한 투쟁. “1박 2일로 계획했는데 조합원들이 ‘아무것도 풀리지 않았는데 나갈 수 없다’고 해 20일을 버텼다. 비록 공권력에 끌려나왔지만 그때 다 함께 만든 투쟁의 기억이 500일을 끌어온 것”이라는 홍윤경 이랜드노조 사무국장의 말처럼 누구도 이 싸움이 500일을 넘길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노조간부들의 살신성인으로 노사합의
자녀 학원비, 생활비를 보태보겠다고 밤늦게까지 매장 계산대에서 매달려 죽어라 일만 하던 아줌마들은 정규직·비정규직이 뭔지, 복직투쟁이 뭔지, 노동법이 뭔지 몰랐지만 물대포를 맞고, 유치장 갔다 오면서 ‘진짜 노동자’가 됐고, 차고 습한 곳에 쪼그리고 앉아 동료의 체온을 느끼며 ‘동지’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500일 동안 몸 성한 곳 없고, 신용불량자 신세까지 됐지만 그들의 치열한 투쟁은 결국 승리했다.
이랜드 노동조합과 홈플러스테스코(삼성테스코가 인수한 옛 홈에버 사업 부문)는 11월 13일 서울 독산동 노보텔앰배서더호텔에서 ‘노사합의 조인식’을 열고 파업 종결을 공식 선언했다. 노사는 서로 민형사상 고소를 취하하는 한편, 사측은 노조의 지위를 인정하고 노조는 회사의 경영 정상화에 대해 적극 협력하기로 하는 내용의 ‘노사화합 선언’을 채택했다. 합의서는 ▲노조 간부를 포함해 총 12명을 제외한 해고자 복직 및 추가징계, 인사 불이익 금지 ▲임금 10% 인상(성과급 포함) 및 2009~2010년 임금 인상 회사에 위임 ▲홈에버에서 이미 외주화한 업무(주차·카트·미화·시설·보안 등)를 제외하고 추가 외주화 금지 ▲입사 후 16개월이 경과한 계약직 조합원의 무기계약 전환 간주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노조 및 단체, 개인에 대한 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 ▲파업기간 중 조합원 연차발생 문제와 이랜드가 조합원들에 미지급한 매각 위로금은 민사소송 1심 판결 수용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사평화기간 3년 ▲13일부로 파업 종료 및 종료일 다음 날 전원 복귀함을 원칙으로 하고 개별 사정으로 복귀하지 못할 경우 오는 30일까지 복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랜드 소속은 여전히 복직 투쟁
137일간의 천막농성, 어린 자녀에게 빡빡 깎은 머리까지 보여주며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직장. 600명 조합원이 견디다 못해 하나씩 떠나면서 남은 186명 중 174명이 일터로 돌아가게 됐다. 나머지 12명은 홈플러스테스코가 마지막까지 거부한 노조 핵심 지도부다. 이 중 3명은 스스로 회사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지도부가 복직을 고집하면 협상을 타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합원을 위해 포기하자”는 김경욱 이랜드노조 위원장의 제안에 한 사람, 한 사람이 기꺼이 포기를 선언했고 전 간부가 결의하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이랜드 노조 간부 12명의 아름다운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타결”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오른쪽)과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
500일이 지나는 동안 무엇이 역부족이었을까? 그는 “힘의 문제였다”고 답했다. “회사가 강했다기보다 우리가 해고자 복직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다 소진돼 있는 상태였다”는 김 위원장은 “투쟁을 이어갈 돈을 마련하는 것도 벽에 부딪힌 상태였고, 조합원 개개인의 생계 문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더욱이 회사를 압박할 만한 투쟁 전술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도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홈플러스 매장 한 개라도 멈출 수 있는 힘조차 모자랐다는 것이다.
이랜드 노조의 비정규직 투쟁의 맨 앞엔 김경욱 노조위원장, 이남신 수석 부위원장, 이경옥 부위원장, 홍윤경 사무국장이 있다. 이랜드노조가 이랜드노조와 홈플러스노조로 나뉘면서 홈에버 소속이었던 김 위원장과 이 부위원장은 이번 합의안에 따라 퇴사하지만, 2001아울렛 등 다른 회사 직원이었던 이 수석 부위원장과 홍 사무국장은 다시 이랜드를 상대로 복직 투쟁을 해야 한다.
김경욱 위원장은 지난해 6월 홈에버 월드컵점의 21일 점거 농성을 이끈 당사자다. 홈에버 점거 농성으로 7월 10일 연행돼 구속된 뒤 그 해 10월 22일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결국 전과자로 전락했다. 그는 정규직 출신이다. 이랜드 일반노조에는 특이하게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원이 섞여 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김 위원장은 임관 뒤 5년간 복무를 하고 전역했다. “군인이라는 옷이 맞지 않았다”는 그는 전역한 뒤 1998년 까르푸 정규직 매니저로 입사했다. 다들 그렇듯 빨리 승진해서 점장도 하고, 본사 진출도 하는 게 꿈이었지만 2002년 새로 부임한 프랑스인 점장의 직원 해고조치는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노조에 가입한 그는 70일간 싸워 이겼고, 그 과정에서 노조위원장이 됐다. 평소 사회 문제나 노조활동에 관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불의에 맞서다 보니 투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향후 행보에 대해선 “이제 막 커다란 짐을 벗은 상태라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말하지만 김 위원장의 싸움은 지금부터다. 이랜드 투쟁을 하면서 신용카드 대출 등으로 얻은 수천만 원의 빚과 신용불량자라는 족쇄를 해결해야 하고, 지난 1월 소아정서장애 진단을 받은 두 아들 치료에도 나서야 한다. “도망치고 싶은 적이 많았다. 평조합원이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수십 번이었다”는 김 위원장은 그러나 “복직하지 못한 간부들, 조합원들 때문에 가슴 한쪽에 있는 응어리가 꽤 오랜 기간 남을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경옥 부위원장도 이번에 퇴사했다. “동지들에게 그동안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다”는 그는 “파업의 힘은 우리 아이들에겐 절대로 비정규직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이었고, 둘째는 연대의 힘이었다”고 밝혔다. 조합통장이 파업 하루 만에 바닥이 나고 투쟁복 티셔츠마저 외상으로 구입하며 시작한 싸움이 500일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일면식도 없는 동지들의 연대의 힘이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집에서 살림만 하거나 여성 가장인 엄마들이 아이들 학원비와 생활비 벌려고 나왔다가 생존권을 걸고 시작한 이번 파업 투쟁을 통해 세상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철저히 보았고, 또 다른 세상은 너무나 소중하고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우리 애들이 파업이 끝나 좋아하면서도, 내가 해고된 점을 많이 아쉬워한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해고되어 받은 퇴직금 7000만 원을 투쟁비로 내놓으며 김 위원장이 구속된 이후 노조를 이끌다 역시 구속 수감됐던 이남신 수석부위원장도 이랜드 투쟁이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전선’에 서야 한다. 이남신 부위원장과 홍윤경 사무국장 등 이랜드그룹 소속 노조 간부 6명의 징계 해고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 사무국장이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진정한 투쟁은 앞으로의 현장 투쟁”이라고 강조한 것은 그래서다.
“잡은 손 놓지 말고 투쟁합시다”
‘비정규직의 상징’으로 불리며 500일이 넘는 지난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피폐하다. 지난해 여름 이랜드 노조의 홈에버 점거 투쟁 당시 한 노조원이 피곤해 지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세구 기자>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최근 비정규직법을 손보려고 작심한 듯 나오고 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국회와 언론에서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것. “정규직 한 자리가 늘어나는 것보다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 두 개가 늘어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지만 비정규직 남용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려는 반노동적인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14일 밤 이랜드 일반노조는 그들이 처음 투쟁을 시작한 서울 상암동 홈플러스(옛 홈에버)에서 마지막 투쟁문화제를 열었다. 그토록 그립던 일터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는데, 마지막 문화제에서 ‘아줌마’들은 자꾸만 울었다. 돈이 없어 전기도 끊기고 아이들 급식비도 내지 못했던 그 지겨운 날들이 새삼 서러웠기 때문이고, 함께 돌아가지 못하는 노조 지도부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연대의 희망을 담아 현수막에 장미 한 송이씩을 꽂아 만든 문구는 “잡은 손 놓지 맙시다”.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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