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2ㅣ주간경향 1085호
[원희복의 인물탐구]7·30 재·보궐선거 동작을 출마한 노회찬, 진보의 입심이 ‘진보의 오리알’ 되나
‘노회찬’ 하면 진보의 아이콘과 함께 논리와 비유가 어우러진 특유의 입심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그가 시작한 팟캐스트 <노·유·진(노회찬·유시민·진중권)의 정치 카페>는 한 달여 만에 1~10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수백개의 팟캐스트가 매일 치열한 경쟁을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인기를 끄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노회찬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을 빨리 알리기 위해 우발적으로 시작했지만 반응이 좋아 한 번 더, 한 번 더 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걸로 했다”고 말했다.
진보후보 텃밭에서 ‘큰 연대’ 미지수
물론 이 팟캐스트가 최고 인기를 구가할 수 있는 것은 노회찬 외에도 유시민과 진중권이라는 걸출한 동반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 역시 모두 ‘말빨’ 특히 ‘글빨’로는 국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인물들이다. ‘어쩌면 저렇게 좋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하냐’는 말을 듣는 유시민과는 달리 노회찬은 ‘어쩌면 저렇게 재미있게 말을 잘하냐’는 평가를 듣는다. 실제 라디오격인 팟캐스트에서 단연 노회찬이 돋보인다.
그는 최근 동작을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오래 활동했던 노동당 김종철 후보와 인근에서 활동하던 통합진보당 유선희 최고위원이 ‘진보 단일후보’를 제안하며 출마를 선언한 상태이다. 그러니까 노회찬 후보는 노원구에서 멀리 떨어진 동작구에 있는 진보 후보 텃밭에 불쑥 뛰어든 형국이다. 결국 여당 후보 1명에 보수 제1야당 후보 1명, 그리고 진보 후보 3명이 난립하는 선거구도가 됐다.
물론 노회찬이 노리는 셈법은 따로 있다. 연대다. ‘군소 진보’ 후보 간 작은 연대가 아닌,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까지 포함하는 큰 연대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역시 극심한 공천파동을 거치며 기동민 후보를 결정한 상태라 야권 전체의 ‘큰 연대’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이상훈 선임기자
노회찬의 동작을 출마에서 단초가 드러났지만 본질적 문제는 그의 정치적 행보와 노선이다. 한때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그였지만 최근엔 ‘진보의 오리알’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기도 하다.(인터뷰 기사 참조) 아직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앞서 말한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 카페>만 해도 그렇다. 노회찬은 유시민·진중권과는 조금 엇박자가 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노회찬 본인은 부인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모색하는 방법, 해결책 등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정당은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이 팟캐스트를 하는 유시민(정치를 떠났지만 여전히 당원으로 활동하는), 진중권은 진보 행동가라기보다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 심지어 보수주의자로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정의당 대표인 천호선을 비롯해 유시민도 보수정당 권력의 핵심에 있던 인물이다. 이들은 언제라도 보수정당으로 말을 바꿔타도 놀라울 것이 없다. 그러나 노회찬은 다르다. 노회찬 스스로도 “이런 리버벌리스트와 선을 긋고 대립하며 살았다”고 말할 정도로 살아온 방식이 다르다.
그나마 심상정이라는 인물이 있지만, 그는 훨씬 ‘우클릭된’ 안철수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등 일찌감치 과거와 다른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다.
남들은 언제든지 오른쪽으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 같은데 그만 제자리에 서 있다. 이러다 다 떠나고 노회찬만 남는 것 아닌가. 이게 ‘노회찬, 진보의 오리알’론의 골자다.
무엇보다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정의당이라는 옷이 그렇다. 진보정의당에서 ‘진보’자를 떼어버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정의당이 진정한 진보정당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진보진영의 한 분석가는 “진보정당은 노동자, 농민, 통일운동단체가 바로 정당을 지탱하는 기층”이라며 “그러나 정의당은 이런 기층이 전무한 채 소수의 스타에 의지하는 외형만 진보정당”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진보진영의 가장 큰 기층조직인 민주노총은 2012년 경선 파동 이후 통합진보당에 대해 ‘배타적 지지’를 철회했지만, 전남본부는 여전히 진보당에 배타적 지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역시 정의당이 아닌 진보당 지지 입장이다. 전교조는 민주노총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학교비정규직노조 등은 여전히 진보당을 지지하고 있다. 게다가 통일운동단체 대부분도 진보당 지지가 공식 노선이다.
정의당은 개인적 취향이나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지지만 있을 뿐 노동자·농민·통일운동세력 어디에도 공식·조직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의당의 토대가 너무 허술할 뿐 아니라, 미래도 불투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는 말에서 노회찬의 고민이 묻어난다.
사실 진보진영은 이번 7·30 재·보궐선거 국면에서 새로운 차원의 그림을 그리려 했다고 한다. 진보진영의 한 인사는 “노회찬을 무소속 진보 단일 후보로 부산 해운대에 출마시키는 것을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당시 노회찬도 이런 구상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처럼 뿌리가 약한 정의당 옷으로는 ‘정치적 승산’이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정치의 후퇴, 그러나 희망은 있다”
결국 그의 역할과 활로는 보수야당을 포함하는 진보진영의 대통합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보의 재통합은 본인도 말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바탕에 있는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라는 파벌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노회찬은 동의하지 않았다. 지금 그런 파벌도 없고, 자신은 굳이 따지자면 둘을 합한 NLPD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북한 핵문제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비난할 것은 비난해야 한다”면서 “굳이 북의 2중대라는 오해를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과거 혁명을 꿈꿨던 투사 시절에 비하면 많이 보수쪽으로, 아니 현실쪽으로 ‘타협한’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그는 진보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진보정치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아마 그것은 노회찬의 정치적 탯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진보정치의 희망을 얘기했다.
“25년 전 진보정치가 뭔지도 몰랐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문제는 진보정치세력의 신뢰의 문제이다. 지금 진보정치의 답보·후퇴가 부끄럽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물론 저절로 되지 않는다. 통합의 리더십, 다르면서도 같게 하는 그 리더십이 부족했다. 아무리 좋은 정치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안 된다. 조급성을 버리고 인내심을 가지면 어떠한 자본주의 상황에서도 30% 정도의 진보정치 토대는 있다고 본다.”
2013년 광주 국립 5·18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가 일어서서 손을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노회찬 전 의원은 2012년 경선사태가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사건이었다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 이상훈 선임기자
“2012년 분당 파국은 이석기·김재연 두 사람이 직접 부정을 저질러서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경선에서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발견됐으니 비례대표 전체를 무효화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사퇴하지 않았다.”
나중에 대검 수사 결과 두 사람은 큰 문제가 없는 반면, 특정 계열 사람이 가장 심각한 부정경선을 한 것으로 나오지 않았나.
“허허….(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5장의 부정투표 용지가 섞였다면 투표함 전체가 무효가 되지 않겠나.”
부정에도 경중이 있지 않을까.
“부정에 경중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런 부정을 통해 이뤄진 전체 선거 결과를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그 결과를 인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나는 그 경선 부정의 경중이 밝혀지기 전에도 다수파(집권파)가 (부정을) 덜했다고 예감은 했다.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가장 조직적으로 큰 부정을 저질렀던 사람은 유시민 측근 아닌가.
“그렇다고 유시민씨 사주를 받아서 한 것이 아닌 이상, 유시민씨가 책임져야 하는가?”(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정치적으로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얘기이다.
“그 사람은 사법처리당했다. 그 경중은 법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시민이 정계를 은퇴했는지 모르지만, 정치적 책임을 얘기하는 것이다. 참여파가 경선부정이 가장 심했는데 집권파인 이석기·김재연을 부정선거의 최고 공적으로 몬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그렇다. 두 사람은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앞서 말한 대로)비례대표에서 사퇴하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다. 비례대표 1번이 사퇴했다. 그 사람은 무슨 죄가 있나. 나는 두 사람(이석기·김재연)이 부정 경선 주모자라고 애기한 바도 없다. 내가 낸 마지막 카드는 내가 지역에서 당선됐지만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도 했다. 그것도 안 받아져 당이 쪼개졌다.”
진보진영은 소통합을 거쳐 야권의 대연정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유럽 진보정당이 다 그렇게 정책에 참여하지 않나.
“그렇다. 우리는 연정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연정은 상대가 있는 문제이다. 진보진영 간에 대화를 다시 하고 있다. 한 테이블에 모인 것은 아니지만 연대를 강화하고 통합으로 가는 과정(분위기)이 있다. 그리고 제1야당과 연대하거나, 새정치연합의 진보적 인사들과 ‘빅텐트’, 즉 같이 하자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요즘 본인이 보수화돼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껄껄껄 웃으며)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잠시 말을 쉬더니) 모르겠다. 제3자가 봐야 기울었는지 아는데.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생물적으로 안정적으로 판단할 개연성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가치관과 관습·문화가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어서 내가 아무리 늙어도 진보일 수밖에 없다.”
정의당이 ‘진보’ 자를 뺐지만 천호선·유시민 등 원래 보수정치인은 제1야당과 합당하고, 노회찬만 ‘오리알’로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 아닌 우려가 있던데….
“허허허, 제가 달걀이든 오리알이든 그런 거 두려워할 사람은 아니고…. 보는 위치나 각도에 따라 그럴 수도 있는데, (사실) 그런 말 듣기도 한다. 하지만 대선, 지방선거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의견 차이가 없었다. 실제 우리당도 통합진보당과 공약에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런 범주에서 관념이나 습성, 신뢰에서 틀리는 점이 있는지 몰라도 국민에게 보이는 큰 차이는 없다.”
1956년 부산 출생. 경기고·고려대 정외과 졸업. 용접기능사 취득, 용접공.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결성, 중앙위원. <사회주의자> 편집위원,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진보정치연합 대표. 민주노동당 부대표. 진보신당 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변인.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17대(민주노동당) 19대(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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