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은 뼛속까지 진보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운은 지독히 안 따랐다. 그는 7.30 재보선 서울 동작을에 노동당 기호 5번으로 3번째 출마했지만, 그가 평생 진보정치의 길로 선택한 동작을은 진보든 보수든 모두 거물들이 당 전략을 위해 거쳐가는 곳이 됐다. 특히 새누리당이 MB시대를 대표하는 나경원 후보를 내고, 새정치연합이 공천파동을 겪으면서 동작을은 격전지가 됐고, 진보정치의 스타인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와 유선희 통합진보당 최고위원까지 출마하면서 진보정치의 미래를 가늠할 지역이 됐다.
7.30 최대의 격전지가 됐지만 김종철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모두 자신과 동작과의 인연을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 18일 오전 11시 동작구 흑석동 동부센트레빌 경로당 현판식 풍경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는 자신을 “흑석동의 외손녀”라고 소개했다. 나경원 후보는 “저희 외할아버님이 흑석동에서 태어나셨고 외가가 흑석동이다. 저는 노량진동(동작갑)에서 태어나 상도시장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었다”며 “외할아버님께서 ‘너 태어난 곳에 와서 봉사하라’고 불러들이신 것 같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기동민 후보의 부인도 “남편이 처음 동작구를 접하고 온 게 아니라 정무 부시장으로 있던 3년 동안 동작구에 대해 고민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 많이 있었다. 그 부분들을 믿어 달라”고 호소했다.
유선희 후보의 남편은 “사당 5동에 처갓집이 있을 때 처음 인사를 갔다”며 동작에 살았던 유선희 후보와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노회찬 후보도 “20대 초반 상도1동에서 누나, 동생과 함께 3년간 산적이 있었다”며 “20대 초반에 살다 나중에 국회의원 후보가 돼서 다시 찾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종철 후보는 “동작을에 두 번 출마했는데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며 “이번에 출마한 후보 중 유일하게 동작을에 살아온 후보가 저밖에 없다”고 말했다.
▲ 동작을에 출마한 여야 후보들. 왼쪽부터 김종철, 유선희, 노회찬, 나경원 후보 |
어쩌면 5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동작 주민이라 김종철 후보에게 유리할 수도 있는 선거였지만 진보후보가 3명이라는 사실은 뼈아픈 대목이었다.
김종철 후보는 “그동안 웬만한 보수나 민주당의 스타플레이어 급과 붙어왔는데, 노회찬과 붙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진보정치의 동지였던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와 유선희 통합진보당 최고위원까지 동작을에 후보로 나오자 그에게는 제3세력으로서 차별화할 수단도 없어졌다. 그래도 그는 잠시 거쳐간 후보들이 떠난 자리를 지키다 보면 다음 총선에선 자신이 당선될 거란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때문에 김종철 후보는 선거 후 동작을 떠날지 모르는 후보들과 야권연대나 선 진보후보 단일화에 응할 수 없었다.
그를 뼛속까지 진보정치인이라고 하는 이유는 김종철 후보가 진보단일화나 야권연대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 때문이다. 진보정치의 진정한 재편 가능성을 위해 나머지 진보정당들이 실질적인 혁신을 보여 주거나, 제1야당이 진보정치 전체가 날개를 펼 수 있는 강력한 정책을 받아들인다면 그때는 논의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김종철은 다음 총선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밝혔다.
참세상은 지난 18일(금) 김종철 후보를 선거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종철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선거 이후 진보정치 재편을 위한 모색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 자신이 2008년 7년여 동안 자리 잡았던 용산을 떠나 동작에 터를 잡은 것도 진보정치 재편 가능성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민주노동당 후보와 경쟁하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노동당 중앙당이 노회찬 후보 출마 선언 후 정의당 등과 함께 진보정치 재편을 논의하는 진보전략회의(준) 참가를 재검토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도 그 정도의 항의는 할 수 있지만 실제 진보전략회의를 깨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김종철 후보는 더는 진보정치가 대중의 관심 대상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니 진보단일화도 전혀 대중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선 단일화보다는 선거 이후 세 정당이 어떻게 연합하고 통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다만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의 진보단일화와 야권연대 공식엔 상당한 우려를 드러냈다. 통합진보당의 진보단일화나 정의당의 야권연대 제안 모두 새정치연합과의 관계만 염두에 둔 것이라고 봤다.
또 진보정치 세력의 통합을 위해선 2011년 진보대통합 같은 묻지마 통합 방식이 아닌 상대 정당에 대한 변화 요구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해선 패권주의의 바탕이 북한 문제에서 나온다고 보고 이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를 강조했다. 정의당에 대해선 새정치연합과의 관계보다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보정당 후보가 3명이 아니었다면 이번 7.30 선거에서 어느 정도 득표율의 성과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진보후보가 3인인 상황에선 지난 총선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길게 보고 간다고 말했다.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 총선에서 당선되는 것이 목표라고도 했다. 지독히 운이 없었지만 자기 길을 꾸준히 가다보면 우연하게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김종철 후보와 인터뷰 전문이다.
- 동작을은 어떤 지역인가
전형적인 서울의 중간 정도 되는 동네다. 강남 쪽에 인접해 있어 주민 중 강남지향성이 꽤 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일부는 강남 쪽에 주소를 이전해 놓고 강남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그런 동네라고 보면 된다.
- 세대별 인구비율은 어떤가
여기가 20대와 50대가 많다. 50대가 많다보니 당연히 자식들은 20대가 많은 거다. 세대별로 쫓아가는 거랄까. 10년 전에는 40대가 많은 동네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들이 나이가 들었다. 또 호남 분들이 많고 결론적으로 야권성향이 꽤 있다. 그런데 정몽준 씨가 2008년에 오면서 여당이 조직력을 꽤 많이 회복했다.
- 동작을의 핵심 사안 같은 게 있나
몇 가지 있다. 흑석동 뉴타운이 옛날처럼 뜨거운 이슈는 아닌데 계속 갈등요소로 작용하는 실정이다. 또 하나는 교육문제인데 학교가 없다. 대표적으로 고등학교가 없다. 딱 두 개 뿐인데 그나마 하나가 자사고라 일반고는 하나밖에 없다. 흑석동 지역은 고립돼 있는데 거기는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사당동 쪽이나 서초동 쪽으로 가거나 거꾸로 영등포쪽으로 가는 친구도 있다. 흑석동에는 고등학교가 들어오는 게 상당히 중요한 이슈긴 하다.
- 동작에는 어떻게 터를 잡게 됐나
원래 용산에서 7년 정도 지역 활동을 했었다.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됐을 때 진보신당을 살리기 위해 총선 출마 계획 중이었다. 당시 용산구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있었고 아무리 분당을 했다고 해도 바로 경선을 해서 감정을 상하고 이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분당할 때부터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없는 지역으로 옮긴 것이다. 그렇게 찾은 게 동작을이었고 이 지역에서 나는 지역 활동을 계속하겠다 결심하고 온 것이다.
- 유일하게 동작 주민이라 나름 주민들이 많이 알아봐 주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지난번에 출마했고 계속 나오는 사람인데 매번 떨어져서 안 됐다’ 그런 정도 여론이 있다. 이번에 다른 곳에서 온 후보들이 중량감이 없었다면 동작을이 이 정도 이슈가 안 됐을 것이다. 그러면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봤는데 하필 새누리당의 아이콘인 나경원 씨가 오고, 새정치연합은 그냥 오면 되는데 온갖 파동을 일으키면서 왔기 때문에 관심의 중심이 됐다. 게다가 노회찬 전 대표에 유선희 후보까지 오면서 진보진영에서 세 명이나 나왔다. 굉장히 제 입지가 좁아졌다.
- 그래도 유일하게 동작을 주민이고, 오래 있었는데 그렇게 암울한가
진보 후보라는 것을 차별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차별화가 가장 중심이다. 그걸로 지지를 모은 다음 자기활동과 선거운동을 활발히 해 기본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과정으로 가야 하는데 차별화가 잘 안 된다. 유일한 진보후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없게 됐다. 차별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 ‘동작을 지켜온 사람, 나머지는 낙하산 철새’ 이렇게 되는데, 전통적인 우리의 차별화 전략과는 안 맞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 용산에서 그렇게 나왔는데, 정치 인생으로 보면 굉장히 불운해 보인다
제가 곧잘 하는 얘기가, 이명박, 박근혜 빼고 소위 보수진영에 싸울 만한 사람은 다 싸워봤다고 했다. 오세훈, 강금실, 정몽준, 정동영, 이계안 이런 스타플레이어 급과 다 붙어 봤기 때문에 앞으로 특별하게 더 붙을 만한 사람이 있겠냐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회찬하고도 붙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마치 권영길과 붙는 느낌이다.(웃음) 그런 황당한 시추에이션이긴 하지만 지금은 정서적으로 잘 정리가 됐다.
- 정서적인 정리란 무슨 뜻인가
쿨해졌다고나 할까.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 선거를 계속 나가다 보면 성과가 좀 남아야 하는데, 이번이 동작을에서만 세 번째다. 개인적으로 도만 닦는 상황이 되는 것 아닌가
이번엔 성과가 어느 정도 나올 것이라고 봤다. 정몽준 사퇴로 인해 갑자기 시작된 선거긴 하지만 지역 활동을 해온 것도 있고 제3세력으로서의 입지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성은 봤는데 현재는 다 흐트러져 버렸다.
- 이번 선거는 2012년 총선보다 대단히 어려운 조건이 됐다고 할 수 있는데 지난 총선보다 득표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보나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주민들이 좋아해준다. 물론 그게 정치적으로는 좀 달라도 친근해서 그럴 수 있지만, 격려도 많이 해주신다. 물론 지난 총선 때도 막판에 가니까 분위가 정말 좋았다. 3자 구도에서 제3세력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예상보다는 득표가 덜 나오기는 했다. 지금은 초기분위기가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워낙 언론에서 빅3만 중심으로 보도를 하고, 진보진영 표가 노회찬, 유선희로 갈라져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성과는 있을 것이라고 본다.
- 나머지 후보들은 다 딴 동네에서 왔기 때문에 그 점은 유리하다고 볼 수 없나
지역에 기반을 닦고 살아가는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나 주부들 중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다른 곳에서 오는 후보를 별로라고 생각하시기는 한다. 하지만 그분들은 대부분 양대 정당의 입김아래 있는 분들이 많다. 다른 곳에서 오는 후보는 문제가 있다고 발언은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 반면 일반 유권자들은 동네에 연연하지 않고 동네 현안을 잘 모르기 때문에 중량감 있는 후보들이나 스타 정치인들이 온 구도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 노회찬 후보의 출마도 출마지만 진보후보가 셋이라는 것이 큰 부담일 것 같다
이전엔 3자 구도라는 상태가 늘 유지됐다. 물론 2008년에는 후보가 7명이나 됐지만, 크게 보면 항상 양대 정당과 다른 제3세력을 누가 대표할 것인가 이런 구도였는데, 이번에는 제3세력 자체가 3명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진보라는 같은 색깔로 나왔다. 유일한 진보 후보라는 표현도 쓸 수 없게 됐다. 그때와 단순 비교를 해보면 굉장히 많이 바뀐 거다. 예전에는 저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이제는 노회찬이나 유선희, 특히 노회찬을 지지하는 분들 많이 있을 거고 또 더 늘어나야할 표들이 막혀 있을 수밖에 없다.
-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전반적 평가는 이번 선거가 대단히 어렵다는 판단인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번 선거의 목표가 있다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을 떠나지 않는 진보의 입지를 보여주고 싶다. 동정론이 늘고 있다. 안됐다. 저 사람 계속 나오는데 이번에 또 꼬여 버렸네라는 반응이 많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해 오면서 진보의 가치나 노동당의 가치를 확장했다거나 하는 성과가 어느 정도 있나
개인적으로 성과가 그렇게 많다고 보지는 않는다. 성과가 없지는 않은데 6년이라는 시간만큼 뭔가 크게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다만 저 자신이 주민에게 알려지고 뿌리내려졌고 네트워크망이 크게 늘었다. 그리고 동작구 주민단체들 속에서 신망을 많이 얻었다. 그 정도가 성과라면 성과다. 다만 보수 체제에 맞서는 진지를 구축하거나 이런 것은 아쉬운 면이 있다.
- 기동민은 서울시정과의 연계성, 나경원은 힘 있는 여당 3선 정치인으로 지역 예산을 강조한다. 노회찬은 머슴이 되겠다. 김종철이 내세울 건 무엇인가
동작지킴이?(웃음) 동작을 지켜온 사람 지켜갈 사람 정도. 기존 진보적 정책을 쓰고 있는데 그것 자체가 차별화가 안 된다. 비슷한 내용인데 약간 더 세가 있는 노회찬을 찍지 이 내용으로 뭐가 다르냐는 그런 반론들이 있다.
- 정서적으로 정리가 됐다고 했는데 노회찬 후보에게 할 말은 없나
지금은 다른 말을 할 건 없다. 제가 유선희 후보에게도 얘기했다. 저한테 양보나 단일화를 요구하는 것은 별로 명분이 없다는 거다. 두 분은 낙선하면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낙선해도 이 동네 살 사람이다. 지역에서 계속 정치활동을 할 사람이, 떠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평가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계속 평가를 받으면서 지지세를 만들고 그 다음으로 늘려나가야 한다.
노회찬 대표의 출마에 대해선 아쉽긴 하지만, 진보진영 재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갈등구조를 부각시키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 선거 이후에 진보 재편이나 이런 부분에서 잘 됐으면 좋겠다. 이건 노회찬, 유선희 후보 두 분께 마찬가지다.
- 노동당 중앙당에선 노회찬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을 때 진보재편을 논의하던 진보전략회의(준) 논의 틀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제 지론은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함께 모여서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그 정도의 어필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노회찬 후보의 지역이었던 노원에서 보궐선거가 있었다면 노동당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거꾸로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우리당에서 그런 얘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진보정치 재편을 위해 진보전략회의를 진짜로 깨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 지난 지방선거 때 울산 같은 경우 진보정치 몰락이다 이런 얘기도 나오고 했는데, 이번 동작을도 울산과 비슷해 보인다. 정의당은 새정치연합과 야권연대를 주요 쟁점으로 삼았고, 통합진보당은 계속 단일화를 강조하고 있다. 원내 진보정당들이 각자의 입장을 가지고 진보정치를 주도하려하는 상황에서 노동당만 진보양당 사이에 갇혀 당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은 없나
저는 진보진영 재편은 할 때까지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본다.
- 질문을 바꿔 보겠다. 이후 재편 논의를 위한다면 오히려 진보가 단일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것 아닌가
진보 쪽 단일화는 가치판단을 떠나 두 가지 어려운 지점이 있다. 첫째는 정의당이 후보단일화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일단 새정치연합이다. 모든 목표가 새정치연합과 단일화 압박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런 입장이라면 통합진보당까지 낀 단일화를 받을 수가 없다. 통합진보당과 단일화를 하면 새정치연합은 그걸 빌미로 안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의당은 진보단일화에 무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진보단일화를 주장하는 유일한 당은 통합진보당인데 그 기자회견문을 보면 너무 모순됐다. 진보단일화의 목적이 나경원을 막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고, 진보진영 단결을 위해서 단일화를 하자고 하는데 서로 양립 불가능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느낌이다. 나경원을 저지하자는 통합진보당의 주장은, 자신들이 여전히 반 새누리당 연대의 진정성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전혀 관심도 없거나 거리두기를 하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매달리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든 우회적으로 새정치연합과의 관계를 복원해 보려고 한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진보단일화를 하자고 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진보단일화나 새정치연합 두개를 잡고 싶었으면 통합진보당은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는 게 맞다. 단일화라는 게 구도가 단순하다.
진보진영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지 풍토 등에 비춰 봐도 그렇다. 이런 식이면 지역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 있는데 느닷없이 아무데나 가서 당 대 당 단일화를 하자고 하게 된다. 그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중앙당 차원에서 협의해 가지고 하는 게 맞다.
- 진보 후보가 3명이라는 상황이 주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나
이제는 진보정치가 대중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진보단일화는 대중의 관심이 전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서 단일화해서 뭔가를 보여주자는 것은 지금으로선 무의미한 것 같다. 선거 이후에 어떻게 각 세력이 연합을 해서 통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무작정 통합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또 깨진다. 통합진보당을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일단 무조건 통합하자 이런 건 안 된다. 상대에게 원하는 게 뭔지 이런 게 서로 받아들여지면 큰 대의에서 갈 수 있다. 저는 통합진보당이 북한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정의당에 대해서는 새정치연합과의 관계에 목을 매지 말고 좀 더 오래 진보정당을 할 각오를 하고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스탠스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세 당이 통합을 하자는 것인데 2011년 진보대통합 논의 당시 통합을 반대하는 독자파였다. 그때와 고민이 달라진 것인가
아니다. 그때도 제가 계속 주장한 것은 통합진보당의 패권성이 가장 문제가 될 텐데 그 뿌리라는 것이 사상으로부터 나온다고 봤다. 남들은 잘 이해를 못하는데 나는 그게 북한에 대한 추종성과 관련 됐다고 본다. 늘 얘기했다. 통합진보당은 굉장히 헌신적이고 대중적이다. 동지에 대해 애정도 많다는 집단이 비이성적인 것을 그렇게 쉽게 하기는 어렵다.
지역 활동가들끼리 동네에서 얘기할 때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 하던 것이 중앙에서 지침이 내려오면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린다. 그건 합리성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기가 지켜야 할 가치나 노선이 있는 거다. 조직이 수행하는 역할이 지향하는 바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 부분이 정리가 돼야 좀 더 자유롭게 논의를 할 수가 있다.
- 그런 얘기면 통합진보당과는 못한다는 얘기 아닌가. 노선을 바꿀 것 같았으면 2011년에 바꿨을 것 아닌가. 통합진보당이 내란음모 사건까지 겪고 난 마당에 진보 재편을 위해 기존 노선을 바꿀 수 있다고 보나
안 변하면 거기도 망하게 된다. 실제 내부적으로 그 문제를 굉장히 고민한다고 하고, 만나보면 자기들은 그런 문제에서 상당히 탈피했는데 꼭 그런 부분을 밝혀야하나 이런 고민도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다 그런 의구심을 갖고 있는데 안 밝히는 게 정치세력으로서 더 문제가 있는 거다.
- 정의당 쪽에선 유선희 후보 측 진보단일화 제안을 김종철 후보 쪽에서 먼저 거부해 자신들도 더 논의할게 없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정의당은 입장이 곤란하니까 그냥 진보단일화를 무시한 거다. 솔직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거부해서 진보단일화를 안 하는 건가 묻고 싶다. 정치는 솔직하게 해야 한다. 어차피 진보단일화를 할 생각도 없었는데 입장이 곤란했을 거다. 드러내놓고 거부하기는 어렵고 내심은 새정치연합과 야권연대에 더 가 있었다. 솔직하지 않은 거다.
우리는 차라리 솔직하게 이유를 들어서 얘기했다. 저는 그게 정의당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걱정이다. 마음은 계속 새정치연합과 할 거냐에 가있다. 진보재편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말을 아껴야 하지만, 정의당이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 쭉 들어보니 진보단일화나 야권단일화 모두 거부하고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라는 것은 생물이라 입장을 계속 결정해야 하는데, 진보단일화든 야권단일화든 요구의 주체들이 그에 상응하는 것을 얘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진보단일화를 제가 받아들이려면 진보재편에 대한 입장을 크게 선언하고 이후 진보정치의 전망을 공유한다는 그런 게 있어야 한다.
야권단일화도 새정치연합이 급해지면 나중에 요구할지 모른다. 늘 양보하라는 식이 되는데 그럴거면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나서서 정책이나 당론 등 진보가 요구하는 것을 꼭 받겠다거나 하면 그 다음에는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새누리당이 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하면 저는 완주를 할 것이다.
- 2010년부터 야권연대를 해왔는데 야권연대가 가져온 가장 치명적인 것은 진보정당끼리의 차별화뿐만 아니라 새정치연합과의 차별화도 많이 어려워진 것 아닌가
기본적인 차이는 정책이다. 대학교육 문제가 심각한데 통합국공립대 건립을 통한 서울대 폐지 같은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교육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정책을 얘기한다던가 해야 한다. 지금은 다들 황당해할지라도 나중에 상당히 어필할 수 있다고 본다. 건강보험 하나로를 통한 의료보장 95%를 실현하자던지, 부유층에 파격적인 증세를 실시하자 등 정책으로 충분히 차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나중에 야권연대를 한다 하더라도 그런 내용을 주장하고 실력을 늘려가면서 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내용을 꾸준히 주장하고 세를 만들어 가면서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 것만 있으면 야권연대도 달라질 수 있다. 언젠가는 새정치연합이 여당이 될 수 있다. 그때는 우리 내용을 가지고 싸울 수 있다. 정치는 언제나 변한다고 본다.
- 지역정치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보정치의 지역 공약은 서로 비슷하다. 다만 진보정치는 어떤 지역에서 짧은 시간에 승부를 볼 수 없고 그 지역에서 길게 승부를 봐야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그런 면에서 보면 차근차근 지역에서 쌓아 승부를 볼 수 있는 사례를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두 후보의 전략보다 제가 하고 있는 게 훨씬 가치 있다고 본다.
- 이미 많은 공직 선거에 출마했지만 아직 10%대 득표율도 못 가봤다. 진보신당을 버리고 새정치연합으로 간 사람도 있는데 이대로 가도 안 될 거라는 두려움은 없나
나에게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전혀 그런 건 없다. 내 철학이 돼 버렸다.
- 계속 출마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인지도가 임계를 넘어서고 당선이라는 꿈도 꿀 텐데, 혹시 로드맵 같은 게 있나
저는 길게 보고는 가지만 길게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이번에 떨어지면 차기 총선에서 당선이 목표다. 사실 수도권에서는 야권연대가 아니면 당선되기가 쉽지 않다. 야권연대가 하겠다고 선언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웃겨지기만 한다. 자기 길을 꾸준히 가다보면 우연하게라도 길은 열리게 돼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