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농촌의 아픈 현실…좌절 분노 투쟁 사실적으로 형상화 <기획> 하늘담은 전북, 하늘닮은 문학 <26> 윤정모의‘들’과 순창

참된 2014. 7. 5. 02:53

농촌의 아픈 현실…좌절 분노 투쟁 사실적으로 형상화
<기획> 하늘담은 전북, 하늘닮은 문학 <26> 윤정모의‘들’과 순창
2014년 05월 07일 (수) 이종근 기자 jk7409@hanmail.net     새전북신문

   
  ▲ 최근 윤정모의 소설‘들’이‘순창문학' 제17호에 자세히 소개되면서 주인공들이 출판 기념회에 초대됐다.  
 

‘형권네들은 맨 앞에 앉아 군수를 쳐다보고 있다. 키도 크지 않건만 규격이 찹힌 몸체, 저자도 예편,,, 저건 또 묀가 농민들이 내막을 알 수 없어 이리저리 돌아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소리친다. “민정당 지부장이다”’

윤정모의 소설 ‘들’은 작가가 10여년의 농촌생활경험을 구체화, 사실주의기법을 통해 농촌의 아픈 현실과 농민들의 좌절, 분노, 투쟁 등을 달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일제하 식민지시대, 미군정, 한국전쟁, 박정희집권, 새마을운동, 광주민중항쟁 등을 거쳐 작품의 중심사건이 되는 1989년 여의도 농민투쟁까지를 서사적 구도로 담아내면서 순창(구림면)과 임실 등의 전국 농촌의 아픔이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1990년 봄 순창농민회 식구들을 우연히 만나면서 작품은 시작됩니다. 특히 순창고추시위, 임실싸움, 그리고 여의도 대집회에 이르기까지의 투쟁사에 집중하면서 자료를 찾고 작품을 구성, 소설의 단락이 끝날 때마다 합평회를 하면서 원고를 차분하게 써 나갔습니다.

특히 산과 들과 짐승들의 의인화된 묘사, 여러 인물들이 엮어내는 다채로운 대사,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유연한 문체와 풍요한 어휘 구사 등은 작품의 재미와 문학성을 한층 높이고 있습니다.

‘민중은 노동현장에만 있는 게 아니지요. 어쩌면 활동가가 더 필요한 곳은 농촌일지도…….’(윤정모 ‘들’ 중)

   

 


이는 최형권 씨를 소재로 한 이 소설 ‘들’에 나오는 대화로, 그가 농사를 짓게 한 계기가 된 말입니다. 소설 속의 형권은 인천의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갔다가 노동운동을 하게 되고 죽을 고초를 다 겪다 우연찮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대학에서 운동을 하다 농촌으로 내려온 학생운동권 부부를 만납니다. 힘없는 농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것저것 새로운 농법으로 농사꾼이 되려고 노력하는 부부를 보며 형권은 농사꾼의 아들인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농촌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 씨는 농민운동을 하러 온 학생운동권 출신의 부부를 만나면서 농사를 선택했고, 마을 어른들과 함께 20대에 농민회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속한 순창군 농민회는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5년간의 준비 끝에 1987년 만들어진 농민회는 농민들이 자발적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문제점을 타파해 나가도록 하는 데 활동의 의의가 있다고 합미다. 하지만 요즘은 농촌이 붕괴되어가면서 농민회로 대표할 수 있는 농민운동 역시 침체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88년~1989년을 살아가는 형권, 선형, 재현, 완준, 애경, 찬숙 등은 모두 순창지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은 한 사람이 아니다. 작품의 서술도 중심 인물을 계속 바꿔가며 이루어집니다. 뛰어난 몇 사람에 의해 소설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던 농민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나서게 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해 낸 것이 바로 이 소설입니다.

작가는 순창의 농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한 계기들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며 변화하는지 생생하고 사실적인 관계 속에서 풀어나가면서 농촌 현실에 대한 천착을 바탕으로 씌여진 맛깔나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윤정모씨는 농촌 소설을 쓰기 위해 경기도 지역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인물군에 대해 쓸 수 있는 젊은이가 없어 실망하다가 1990년 봄 순창군 농민회 회원들을 만나서 어울리며 개개인 특출한 개성을 바탕으로 이들의 투쟁 경력과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화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순창문학 출판기념회가 열린 가운데 관계자들이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재현'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박재근 전 순창군농민회 초대회장은 일찍이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내려올 때는 자연만 바라보고 상대하며 상처받지 말자는 각오였는데, 농민회를 만들면서 사람들과 떨어져 살 수 없음을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당시 농민회에서 활동했던 이선형, 박찬숙씨 부부, 최형권, 오은미(전북도의원)씨 부부, 풍물패 상쇠 이완준씨, 여성농민회 교육부장인 윤애경씨 등 소설과 소설 밖 이야기들이 실렸다.

최근에는 '순창문학' 제17호에 자세히 소개되면서 주인공들이 출판기념회에 초대되기도 했다. 얼마 전 어떤 농민이 빚더미에 앉게 되자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멀리로는 6.25, 가까이로는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정부의 기만적인 농촌 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한(恨)과 좌절감에 젖어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작가가 계속되는 비극 속에서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은 까닭입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