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승 열사

“자결 전주 버스노동자 사측, 회장 찾아가 무릎 꿇으라 했다” 전주신성여객, 故 진기승 조합원에 노조파괴 회유, 인격모독 논란

참된 2014. 6. 4. 21:34

“자결 전주 버스노동자 사측, 회장 찾아가 무릎 꿇으라 했다”

전주신성여객, 故 진기승 조합원에 노조파괴 회유, 인격모독 논란

지난 4월 30일 회사 옥상 국기봉에 목을 매 자결을 시도한 후 6월 2일 끝내 운명을 달리한 전주신성여객 버스노동자 고 진기승 씨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 사측으로부터 갖은 회유와 협박, 인격모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회사 측 관리자가 민주노총 소속인 진기승 조합원의 복직 문제를 미끼로 “회장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해 무릎까지 꿇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종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3일 저녁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측이 ( 진기승 조합원을) 계속 불러 ‘이제는 (부당해고 소송을)이길 수 없다. 진다. 그러니까 포기해라’ 이렇게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었다”며 “중간관리자들이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다니면서 회유하고 협박도 하고, 심지어 ‘회장한테 가서 무릎을 꿇으면 복직시켜주겠다’고 해서 두 번이나 회장한테 가서 무릎도 꿇었으며,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종인 부위원장은 이어 사측이 진기승 조합원에게 일종의 노조파괴 공작을 하라고 했다고도 했다. 김 부위원장은 “결정적으로 진기승 조합원이 자결까지 결심한 계기가 있다”며 “마지막에 사측이 제안을 했는데. ‘원직인 운전직에는 복직시킬 수 없다. 운전직에는 복직시킬 수 없고 관리자로 들어오면 월급 250만원 맞춰주고 민주노조 깨는 역할을 해라. 그러면 복직시켜주겠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김 부위원장은 “진기승 조합원은 자존심까지 다 버리고 무릎까지 꿇었는데. ‘영혼까지 내놓으라고 하느냐. 그래서 차라리 그렇게 비겁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 이런 결심을 했던 것”이라며 “그게 본인이 썼던 유서나 이런 데에 다 남아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 진기승 조합원은 자결을 선택하기 직전 동료 조합원에게 “내가 자존심 버리고 살아나려고 발버둥 쳤는데 (사측이) 나를 이용하네요. 용서하지 마세요”란 문자를 보내 인격모독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진기승 조합원은 유서에도 “버스파업이 시작된지 벌써 몇 해인가. 나는 열심히 투쟁했고 그 과정에 너무 과격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간 가정이 파괴되고 내 생활은 엉망이 되어버렸네요. 가정파괴는 안되려구 노력했지만 결국 이용만 당한 것 같아 너무 억울하네요. 신성 동지여러분 사측 놈들의 농간에 나같이 놀아나지 마십시오. 그동안 형님 동생들 고맙구 고맙습니다. 또다시 나 같이 억울한 해고 당하는 일이 없도록 똘똘 뭉쳐 투쟁해서 여러분의 권리 행사하세요. 그동안 동지들의 따뜻한 위로 고맙습니다”라고 써 사측의 비인간적인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문제는 사측의 이런 태도가 진 조합원 자결 시도 후에도 이어졌다. 김종인 부위원장은 “회장이라는 분이 (자결 시도 후) 격앙돼 있는 조합원들한테 와서 ‘내가 죽으라고 했느냐.’ 이렇게 막말을 했다”며 “뇌사상태의 진기승 조합원을 간호하고 있는 가족들에게까지 찾아가서도 ‘내가 죽으라고 했느냐. 왜 회사에 와서 난리냐’ 이렇게 막말을 했다”고 전했다.

김종인 부위원장에 따르면 전라북도 버스회사들은 민주노총 소속 민주노조가 들어서기 전에 임금체불이나 노동탄압이 극심했다. 그러다 2010년에 민주노조가 건설되고 고 진기승 조합원도 공공운수노조에 가입 했다. 하지만 노조의 교섭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가피하게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파업을 진행하고 파업을 마치면서 민형사상 책임이나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썼다. 그러나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진기승 조합원을 해고했다. 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에 해고무효 소송을 내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승소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판정이 번복돼 행정법원에서 해고 무효를 다퉜다.

김종인 부위원장은 “행정법원에서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다시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진기승 조합원이 목을 매고 난 다음날 열 시간 정도 뒤에 나왔다”며 “그때는 이미 진기승 동지는 (해고무효 판결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