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승 열사

[박점규의 노동여지도]전주 시내버스의 아슬아슬한 질주

참된 2014. 6. 3. 23:42

 

[박점규의 노동여지도]전주 시내버스의 아슬아슬한 질주

 

전주시내버스대책위의 조사에 따르면 5월 22일 현재 시내버스 401대 중 법정 차령 제한인 9년을 넘긴 노후차량이 105대로 26%였다. 100만㎞ 이상을 운행한 버스들이 시내를 질주하고 있다.

무궁화호 열차가 만원이다. 열차 카페는 값싼 통학권을 끊은 학생들이 점령했다. 기차표를 확인하는 승무원이 안쓰럽게 승객들을 비집고 지나간다. 5월 폭염으로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긴다는 예보다. 아침부터 푹푹 찐다.

열차가 좌우로 흔들린다. 세월호 이후 지하철, 터미널, 병원에서 잇따라 터진 사고들 때문일까? 괜한 잡념이 스멀거린다. 한여름에는 탈선에 대비해 철로에 물을 뿌린다는데 갑작스런 폭염에 괜찮을까? 열차에 불이 나면 어떻게 불을 끌 수 있을까?

천안을 지나자 조금 한산해진 열차 카페에서 음료를 사며 판매원에게 슬쩍 물어본다. “글쎄요. 여기는 소화기가 없어요. 저는 무전기도 없어서 열차 전무님들에게 알려줄 방법도 없는데.”

신성여객 | 박점규


9량의 무궁화호 열차에 기관사와 승무원 두 명이 탄다. 이들은 코레일 직원이다. 열차의 식음료 판매는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이 하고 있다. KTX 여승무원들은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인데 판매원들은 아니다. 판매업무를 대구백화점에 하청을 줬고, 대구백화점은 엠서비스에 재하청을 줬다. 무궁화·새마을호 4호차에 있는 열차 카페 판매원들은 모두 엠서비스 소속이다.

열차 카페 판매원 이씨는 아침 9시 서울역을 출발해 오후 2시11분 여수에 도착한다. 점심을 먹고 오후 4시 열차에 올라 밤 10시 서울에 도착한다. 다음날 새벽 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숙소에서 잔다. 5월 한 달 동안 집에 들어간 날이 8일뿐인데 월급은 130만원이 안 된다. 젊은이들이 한두 달 버티다가 그만두는 이유다.

이씨가 열차 시간표를 보여준다. 승객들이 승무원인 줄 알고 시간을 물어보기 때문에 코레일에서 나눠준 것이다. 그는 하루 종일 승객들을 안내하고, 항의를 받는다. 사고가 나면 문을 열어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소화기를 찾아 불을 끌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코레일도, 코레일관광개발 소속도 아니기 때문에 그의 업무는 모두 불법이다. 승객을 구조하는 업무가 불법인 열차를 타고 가고 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버스 기사
어느새 열차는 전주에 닿았다. 젊은 여행객들이 한옥마을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지난해 한옥마을 방문객이 500만명을 넘었다. 전주시내 5개 버스회사들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시민의 발 버스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

전주시 팔복동 신성여객에서 일하던 진기승씨는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한 달 전인 4월 30일 밤 동료에게 “이용만 당한 것 같아 너무 억울하네요. 신성 동지 여러분, 사측 놈들의 농간에 나같이 놀아나지 마십시오”라는 문자를 남기고 회사 현관 국기봉에 목을 맸다. 고등학생 두 딸을 책임져야 했던 그는 민주노총을 탈퇴하면 복직시켜준다는 회유에 넘어가 회장 앞에 무릎까지 꿇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자존심 버리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쳤는데 나를 이용만 하네요”라는 글을 남겼다.

다음날인 5월 1일 법원은 진씨의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그는 이 소식을 들을 수 없다.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누가 죽으라고 했냐?”고 말한다. 화가 난 동료들이 버스 운행을 거부하고 농성을 벌이자 회사에서 나가라는 소송을 냈다. 노사가 성의 있게 합의점을 찾으라는 판사의 제안마저 거부하자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무기한 연기했다.

신성여객 노조 사무실, 한낮의 기온이 32도를 넘었다. 554번 시내버스를 몰던 김승춘씨는 엔진이 과열돼 운행을 멈추고 차고지로 돌아왔다. 예비차량이 없기 때문에 텅 비어 있어야 할 회사에 6대의 차가 정비를 기다린다. 엔진 이상이 많고, 행선지 표지판(LED)이 고장 난 차도 있다. 승춘씨 버스는 2005년식으로 10년 된 노후차량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자동차 차령 제한은 9년이지만 2년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운행되고 있다. 회사는 라디에이터를 뜯어야 한다며 오늘은 물만 뿌리고 운행하란다. 주말에 고치면 다행이지만 승춘씨 버스보다 심한 차가 생기면 수리는 또 미뤄진다.

전주시내버스대책위의 조사에 따르면 5월 22일 현재 시내버스 401대 중 법정 차령 제한인 9년을 넘긴 노후차량이 105대로 26%였다. 신성여객은 전체 95대 중 31대로 가장 많았다. 100만㎞ 이상을 운행한 버스들이 시내를 질주하고 있다.

승춘씨의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신성여객 버스 6대가 고장으로 운행을 중단했으니 시민들은 이유도 모른 채 버스를 기다렸을 것이다. 전북대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오른다. 구멍 난 버스 바닥 곳곳을 철판으로 때웠지만 승객들은 모른다. 승춘씨는 오늘도 자신과 승객들의 생명을 10년 된 노후버스에 맡기고 거리를 달린다.

10년 넘은 고물 버스들 시내 돌아다녀
고풍스런 전주시청 앞에 천막 한 동이 서 있다. 하나둘 모여든 버스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선다. 불볕더위에 달궈진 도로에서 3보1배를 하며 걷는다. 연대하러 온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한다. 24년 동안 호남고속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 한인수씨는 서울에서 버스를 모는 친구가 부럽다고 말한다. 자신보다 한참 늦게 운전을 시작했지만 서울은 준공영제 때문에 일자리도 안정되어 있고, 월급도 훨씬 많다. 그가 일하는 호남고속은 800원과 52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노조원을 해고하고, 비정규직 기사를 대거 사용한다.

그래도 그는 2010년 전주 5개 버스회사에서 민주노조가 생기고 나서 많이 좋아졌단다. 민주노조가 없었다면 지금도 11년이 넘은 불법 고물버스가 시내를 활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회사가 보조금을 횡령하고 세금을 떼어먹는 일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6·4 지방선거에서 버스공영제를 화두로 만든 것도 민주노조다.

버스노동자들이 15일째 전주시청에서 전주상공회의소를 왕복하는 이유는 전주시, 전라북도와 버스회사의 민·관유착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시민의 세금으로 버스회사들에 보조금을 퍼주면서 관리·감독을 소홀히하고, 회계법인의 보고서마저 공개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전주시와 버스회사는 해경과 청해진해운 사이라고 말한다.

호남고속 김택수 회장은 전주상공회의소와 지역신문 회장, 택시조합 이사장 등 9개 직종의 대표다. 2011년 1월 12일 송하진 전주시장의 중재로 마련된 노사 교섭 자리에서 김택수 회장이 “어이 송 시장”이라고 불렀는데, 얼굴이 붉어진 송 시장이 아무 대꾸도 못했다는 일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금 송하진 시장은 새정치연합 전북도지사로 나섰고, 송 시장의 14년 비서는 전주시장에 출마했다. 5월 28일 은수미 의원을 비롯해 새정치연합 국회의원들이 내려와 사업주들을 만났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시의회에서 ‘시내버스 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문제를 파헤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던 오현숙 전주시의원은 “사용자들과 오랜 유착관계에 있는 호남의 새정치연합은 영남의 새누리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호남고속 한인수씨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물 안 먹은 사람을 찍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저녁 무렵 신성여객 조합원이 어디선가 버스에서 불이 났다는 얘기를 전해준다. 급히 수소문해 확인했더니 시민여객 이상문 기사였다. 그는 아침 7시35분 완주군 봉동 하이트맥주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버스 뒤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차를 세웠다. 엔진 쪽 에어드라이기가 새고 있었다. 곧이어 엔진이 꺼지더니 시커먼 연기가 오르면서 불이 났다. 그는 20여명의 승객을 긴급 대피시키고, 소화기로 불을 껐다. 2005년 제작된 낡은 버스였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옥마을에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타요버스’가 아니라 ‘불타요버스’라는 걸 알리자고 제안한다. 술잔을 부딪치며 마음을 모은다. 전주의 밤이 깊어간다. 새벽 5시 출발해 고단한 하루의 운행을 마친 버스들이 차고지로 들어오는 시각, 이들은 언제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안전한 버스를 운행할 수 있을까?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