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태윤 감독, 가시밭길에서 느낀 ‘또 하나의 가족’의 의미 ①
- 신소원 기자 idsoft3@reviewstar.net 리뷰스타
- 입력시간 : 2014-02-04 14:04:12 수정시간 : 2014-02-04 14:06:47
2009년 영화 ‘인사동 스캔들’의 원안, 2012년 ‘용의자X'의 각본을 쓴 김태윤 작가가 올해에는 ’감독‘으로 오랜만에 선보인다. 하지만 그는 쉽게 가지 않았다. 제작 두레를 통해 100% 영화 기금을 마련해야 했고, 대기업을 상대로 맞서 싸운 한 아버지의 모습을 담담한 시선으로 따라간 모습은 김태윤 감독의 묵직한 성격과 닮아있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대기업의 반도체 회사에서 2년 간 근무하던 윤미(박희정 분)가 백혈병을 앓고 사망, 이후 딸을 잃은 아버지 상구(박철민 분)가 목숨을 건 재판을 통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실제 사연으로, ‘꼭 알아야 한다’는 많은 이들의 노력 속에 영화로 탄생했다. 일반 영화 제작보다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또 하나의 약속’의 연출자, 김태윤 감독을 만났다.
◆ ‘또 하나의 가족’에서 ‘또 하나의 약속’이 된 사연
쉽지 않았던, 꿈만 같았던 개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시사회를 갖고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영화에 투자를 하겠다고 연락이 이어진 것은 영화계에서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심경을 묻자 “어려운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와서, 정말 두근거리고 설레요.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3만 시사회’를 했거든요.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에요”라고 전했다.
이 작품의 가장 대표적인 논란거리로는 제목 수정이었다. 초반에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으나 특정 회사를 연상케 한다는 논란 등으로 결국 ‘또 하나의 약속’으로 바뀌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었다. 김태윤 감독은 “맨 처음에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는데 마케팅, 배급 시점에서, 제목에서 주는 선입견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특정한 기업을 비판하는 의도가 아니냐’, ‘불편할 것 같다’는 우려였죠. 그래서 마케팅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오해하고 오는 분들이 있겠다고 생각한 끝에 제목을 수정하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한 기업을 비방하거나 실체를 까발리는 사회고발영화라는 성격보다, ‘진실’을 바로보자는 메시지가 더욱 깔려있는 작품이다. 또한 딸을 잃은 부모의 애절한 사연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김태윤 감독은 “실제인물인 황상기 아버지를 취재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따라다녔는데 딸을 잃으셨지만 다른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서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제목을 떠올렸던 거였고, 그 이상의 의미는 사실 없었어요”라며 오해의 소지에 대해 분명히 말했다.
이 영화가 더욱 눈길을 끄는 까닭은, 배우들 모두 ‘노개런티’, 즉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임했다는 데에 있다. 어려웠을 캐스팅 작업에 대해 묻자, 김 감독은 의외로 “캐스팅 과정은 어렵지 않았어요”라고 전했다. “노개런티라고 해서 어려운 과정이 되진 않았어요. 일반적인 영화의 캐스팅 과정처럼, 시나리오를 전달했고 흔쾌히 그 뜻에 동의하셔서 임하게 됐어요”라고 전했다.
‘또 하나의 약속’에서 박철민, 윤유선 등 부모들의 절절한 연기도 눈에 띄지만 특히 눈길이 가는 사람은 백혈병에 걸려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딸 윤미 역할의 신인배우 박희정이다. 박희정은 백혈병 환자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삭발까지 감행해야 했다.
신인 여배우 박희정에 대해 “신인배우 입장에서는 이번 역할이 어떻게 보면 욕심이 났을 것 같아요. 사실, 원래하기로 했던 배우가 있었는데 첫 촬영을 일주일 남기고 그만둬야 했어요. 그 배우도 정말 하고 싶어 했는데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됐어요”라며 “그러던 중 박희정 배우를 만났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들어온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첫 촬영이 죽는 장면이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연기를 잘 하더라고요. 그 때 울컥해서, 현장에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라며 신인배우 박희정의 연기력을 극찬했다.
김태윤 감독에게,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뭐냐고 묻자 “외압에 대한 거죠”라며 실소를 지었다. 이어 김 감독은 “만나자고 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정식 요청도 아니었고 아는 분을 통해서 자리를 만들려고 했었는데, 우리는 할 얘기가 없다, 라고 말했어요”라며 “극영화잖아요. 영화를 내세워서 삼성을 비판하거나 불매 운동을 한 것도 없으니까요”라고 말하면서도‘ ’팩트‘(fact)라는 점을 강조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어디까지가 실화일까?”라고 궁금증을 갖기도 할 터. ‘팩트’의 경계에 대해 김태윤 감독은 “없었던 일은 없었어요”라며 극중 등장했던 충격적인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취재로 나온 ‘사실’이었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영화라서,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니까 여러 가지 팩트를 조합할 수밖에 없었죠. 시간적인 순서도 바꿨고 등장인물을 가감하기도 했어요. 극중 김규리 씨가 연기했던 노무사님도 진짜 있는 분이세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라고 표현했다.
김태윤 감독은 실화의 아버지인 황상기 아버지를 여전히 만나고 있다. 가려진 상황에 맞서 싸워나간 작은 영웅 황상기 씨, 그리고 묻힌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려 용기 있게 그에게 다가간 김태윤 감독은 이미 작품을 넘어선 끈끈한 동지애로 엮여있는 사이다. “황상기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오세요. 재판이 있거나 회의가 있어서요. 그 때마다 뵙곤 해요. 노무사 님도 있고요”라며 영화 속 모습과 실제 모습의 높은 싱크로율을 전했다.
김태윤 감독이 생각하는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정도일까. 예비 관객들 혹은 이미 시사회를 통해 작품을 본 관객들은 포털 사이트에 평점 9.9점이라는 최고치의 점수를 주며 작품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다. 김태윤 감독이 바라는 스코어는 전국 70만 명. 이는 최소한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관객수다. 또한 그 나머지의 수익금에 대해서는 후원금으로 기부를 할 뜻을 밝혔다.
힘들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진실을 바라보길 원하고 있으며 한 작품을 통해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사진=이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