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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한 네명의 형제, 전생에 도반이었나봐요” |
화순/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한겨레 등록 : 2013.05.16 21:26 수정 : 2013.05.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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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능(왼쪽)스님과 선용(오른쪽) 스님 |
범능·선용·영산·선관 스님
“중생 위한 수행이 참다운 효”
“인연이지요. 전생에 다들 도반이었나봐요. 불교적 분위기에 익숙했어요.”
부처님 오신 날(17일)을 앞두고 지난 8일 전남 화순군 북면 옥리 산중의 불지사에서 만난 범능(53·왼쪽) 스님은 5남1녀 가운데 4형제가 출가한 남다른 내력을 이렇게 소개했다. “동생 선용 스님이 두 달 전부터 불지사에서 함께 수행중”이라는 그의 얘기를 듣고 찾아간 자리였다.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로 시작되는 ‘광주출전가’의 작곡자인 그는 1980년대 ‘정세현’이라는 예명(속명은 문성인)으로 활동한 민중가수였다. 전남대 국악학과를 졸업한 그는 노래 운동에 열정을 쏟다가 93년 가을 홀연히 출가했다.
세살 터울인 선용(50·오른쪽) 스님은 중국의 관정 스님이 주창한 ‘정토선’(염불선) 수행법을 수년 동안 각지를 돌며 포교한 뒤 불지사에 정착했다. 그는 “부친이 내장사에서 3년간 사미승(수행중인 어린 남자 승려)으로 지냈다는 사실을 출가 이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부친이 막내 동생을 재우며 읊조렸던 노래도 자장가가 아니라 ‘천수경’이었다.
출가는 막내인 선관(44) 스님이 가장 일렀다. 선관 스님은 91년 군 제대하자마자 모친이 장에서 사다준 회색 바지를 입고는 사촌 형님이 수행중이던 절을 찾아가 불문에 들었다. 뒤이어 92년 셋째 선용 스님이 같은 절의 토굴 암자에서 21일 동안 기도한 뒤 마음을 굳혔다. 그 반년쯤 뒤에는 둘째 범능 스님이 계를 받았고, 95년 넷째 영산(47) 스님도 구도의 길로 들었다.
“홀로 계신 노모를 두고 네 아들이 출가한 것은 효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선용 스님의 대답은 간명했다. “일체 중생이 내 부모가 아닌 존재가 없지요. 한 생, 두 생 윤회를 거듭하니까요. 한 부모가 아닌 모든 중생을 위해 수행하는 것이 참다운 효가 아닐까요?” 장남의 출가만은 강하게 말린 노모는 3년 전 세상을 뜨기 전까지 매일 새벽 절을 찾아 불공을 드렸다.
불지사에는 여느 절집과 달리 1층엔 범능 스님의 음악작업 공간이 있다. “음악도 수행”이라고 여기는 그는 명상·염불 음반과 노래 음반을 꾸준히 내왔다. 2007년부터 소아암환자돕기 음악회를 열어온 그는 오는 7월 광주에서 이주노동자 쉼터 마련을 위한 공연에도 참여한다.
“형제가 아니라 함께 수행하는 도반일 뿐”이라는 두 스님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범능 스님의 음반에 실린 노래의 한 구절이 마음에 깃들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딩동댕/ 나는 어디로 가는가 딩동댕/ 새여 꽃이여 나무여 딩동댕.”
화순/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