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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8일 목을 매 숨진 기아차 비정규직 해고자 고 윤주형 씨의 장례가 7일 오전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 속에 거행됐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기 위해 모인 200여 명의 참가자들은 고인의 넋을 위로하며 명복을 빌었다. 경기도 화성시 화성중앙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되어 있던 고인의 시신은 7일 오전 7시 간단한 발인을 거친 뒤 고인이 생전에 근무했던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으로 옮겨져 오전 8시부터 노제를 진행했다.
![]() ▲생전의 일터였던 공장으로 들어오는 고인의 관
![]() ▲노제를 진행하기 위해 화성공장 노조 사무실 앞 민중광장에 모인 참가자들
장례대책위원장을 맡고있는 송광영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장은 이날
송사에서 “저 때문에 상처받은 분들에게 미안하다. 주형아 미안하다. 돌이켜보면 추억 하나 만들지 못했구나... 갈 곳이 여기밖에
없다고 했는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모이고 말았다.
이후 배재정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과 양경수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장의 송사가 이어졌으며 진혼굿과 참가자들의 분향과 함께 노제는 마무리됐다.
![]() ![]() ▲영정사진을 든 채 눈물 흘리는 해복투 이동우 씨
노제가 끝난 뒤 고인의 시신은 오전 11시 경 장지인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지에 도착했다. 고인을 둘러싼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안타까움 속에 하관식이 진행되었고 12시 경 장례식이 마무리됐다.
고인과 함께 복직투쟁을 벌여온 김수억 해고자복직투쟁위원(해복투)장은
장례식에 함께한 이들에게 “윤주형 동지의 마지막 길에 외롭지 않도록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윤주형 동지를 잊지 않겠다.
그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있는 한 끝까지 투쟁하겠다”며 심경을 전했다.
장례가 진행되는 내내 참가자들은 눈물과 흐느낌 속에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으며, 그렇게 그들은 고인을 가슴에 묻었다.
지난 2007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고 윤주형
씨는 2010년 4월 잔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를 당했으며 이후 해복투를 결성해 사측을 상대로 복직과 사내하청 정규직화
투쟁을 벌여오던 중 1월 28일 밤 그동안의 외로움과 힘겨운 심경을 담은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을 매고 말았다.
이후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원직복직’을 두고 해복투 측과 노조, 사측 간에 갈등을 빚으며 장례가 일주일이나 미뤄지기도 했지만 결국 고인의 원직복직 안이 받아들여져 이날 장례가 거행됐다.
3년의 힘겨운 싸움에도 불구하고 고인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와 쌍용차
대한문 농성, 희망뚜벅이, 희망광장, 공동투쟁단 등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의 연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그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장례를 마친 7일 저녁 8시 서울 대한문 앞에선 생전에 함께 싸워왔던 연대단위들과 함께 고인을 뜻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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