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형 열사

고 윤주형 조합원, “노조도, 동지도 차갑더라”...사라져간 복직의 꿈

참된 2013. 1. 29. 22:18

 

 

고 윤주형 조합원, “노조도, 동지도 차갑더라”...사라져간 복직의 꿈

기아차 사내하청 입사 후 3년간 해고생활, 복직 기대했지만 끝내...

 

기아차사내하청분회 해고자 고 윤주형 씨가 남긴 유서에는 해고 후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투쟁 과정에서의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그는 “조직도, 노조도, 친구도, 동지도 차갑더라”며 “허기진 마음을 채울 수가 없어 너무 힘이 들었다. 버티는 일조차 힘이 들더라”고 전했다. 이어서 “세상에 낳는 건 누구나 평등해도 사는 일은 그렇지 않았는데, 참 다행인 것은 그 누구나 죽음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외로움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절박한 심정을 표현했다.

윤주형 조합원의 사망 후 노조 측은 고 윤주형 조합원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며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고 나섰다. 금속노조도 “3년 동안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투쟁했지만 사측은 지금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며 “고 윤주형 동지 죽음은 명백히 기아차 원, 하청에 의한 타살이며, 기아차는 더 이상의 죽음인 해고를 멈추고 해고자를 복직시켜야 한다”고 뒤늦은 주장을 이어갔다.

[출처: 금속노조]

고 윤주형 조합원은 2007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도장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후 2010년 4월 징계해고 됐다. 이후 ‘기아차 해고자복직 투쟁위원회’를 결성해 해고자 복직과 사내하청 정규직화 투쟁을 이어 왔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희망뚜벅이, 희망광장, 공동투쟁단, 쌍용차 대한문 농성 등에도 연대해 왔다.

하지만 2012년 노사 교섭에서 3명의 해고자 중 윤주형 조합원을 비롯한 2명의 복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실망감과 고통스러움을 겪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윤주형 조합원은 28일 밤 10시 50분 경, 자택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관계자는 “지부와 회사가 윤주형 동지 등 2명에 대해서는 ‘취업알선’이라는 구두합의만 이끌어 내 마음이 많이 상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차례의 대의원대회에서도 그들은 조합원으로 인정받지 못해 자연스럽게 교섭요구안이 차 순위로 밀렸고, 이에 따라 좌절감이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아자동차 해고자복직 투쟁위원회(해복투)는 29일, 추모글을 발표하고 “윤주형 동지가 4년 동안 일하던 공장에서 쫒겨나고, 기아자동차와 하청업체의 온갖 모함에 시달려 힘들어 할 때도 우리는 그와 함께 하지 못했다”며 “금속노조와 기아자동차지부 회의에서 윤주형 조합원의 부당한 해고에 대해 부끄러운 결정을 내리고 신분보장을 외면할 때도 우리는 그에게 힘이 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2012년 노사간의 교섭에서 해고자 전원 복직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취업알선’이라는 기약 없는 구두약속으로 인해 그가 절망했을 때도 우리는 함께 싸우지 못했다”며 “절망스런 합의 이후 지난 6개월 동안 환한 웃음을 짓던 윤주형 동지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그가 힘들어 할 때 우리는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지지 못했다”고 전했다.

때문에 해복투는 “윤주형 동지를 공장 밖으로 쫒아내고, 복직 요구를 외면했던 기아자동차 원하청 사측이 그의 죽음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고 윤주형 동지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한다”며 “윤주형 동지가 걸어온 삶과 온 몸을 다했던 투쟁이 헛되지 않도록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고 윤주형 조합원의 빈소는 화성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현재 지회, 분회, 해복투 3단위가 장례 세부일정에 관한 협의를 진행중이다.

[출처: 금속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