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자신이 수십 년 다니던 회사에서 스스로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당겨 목숨을 끊은 늙은 노동자가 있습니다.
배달호.
두산자본의 악랄한 노조탄압에 목숨으로 저항한 그의 외침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낳았고 손배가압류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와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면을 뚜렷하게 응시하는 사진 속 늙은 노동자의 퀭한 눈과,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로 시작해서 "미안합니다"로 끝나는 유서는 내 삶에도 큰 자국을 남겼습니다.
지난 8월 27일(목) 창원 한서병원 앞 문화마당에서 제1회 경남지역 열사추모문화제가 열렸습니다. 각각의 열사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직접 노래도 부르고, 시도 낭송하고, 하모니카 연주도 한 소박한 문화제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도 배달호 열사 정신계승사업회 운영위원들과 함께 '배달호 열사의 노래'와 '호각' 두 곡의 노래를 같이 불렀습니다.
'배달호 열사의 노래'는 진주 큰들문화예술센타에서 만들어 2003년 열사 투쟁 당시에도 널리 불리워진 노래인데, 저도 무척 좋아해서 가끔씩 부르곤 하는 노랩니다.
반면 노래패 꽃다지가 만든 '호각'은 이번에 처음 배운 노랩니다. 아니 이전에 여러 번 꽃다지가 부르는 것을 들었지만, 노래 제목이 '호각'인 줄도, 배달호 열사를 추모하는 노래인지도 몰랐습니다.
배달호 열사 추모곡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 노래를 배우며 부르며 가사를 곱씹어보니 느낌이 짠했습니다. 다른 추모곡들과 달리 슬프고 비장하기보다는 록 그룹 'U2'의 음악을 떠올릴 만큼 힘 차면서도 그 밑바닥으로는 출렁대는 감정이 담겨있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한 며칠 '호각'을 흥얼거리며 지냈습니다. 그 노래를, 가사를, 늙은 노동자의 삶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 *
호 각
새벽 흐린 광장에 그대 홀로 서 있네
오십 평생 일해 온 지난 시절의 기억
한 번도 놓지 않은 호각을 입에 물고
다시 한 번 부르네 새벽 어둠을 넘어
숨막히는 작업장 아무 대답도 없네
싸움은 지쳐가고 분노마저 사라져
무너진 현장 위론 조여오는 칼날 뿐
닫힌 나의 가슴은 숨을 쉴 수가 없네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
검게 물든 깃발은 내 가슴을 흔드네
천둥 같던 그대의 호각 소리 들리네
세상은 그대론데 주저할 게 무언가
그대 호각을 이제 내가 입에 물고서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
(그림=손문상 화백)
(조성일 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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