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의 위치를 들키지 않는 게 가장 어려웠다”
심지현 기자 씨네 21 200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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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와 산 자의 화해’라는 부제를 단 <영매>가 상영되는 동안 장내는 내내 웃음과 울음이 교차했다. 구수한 진도 사투리에 실린 등장 인물들의 솔직한 대화에 웃음이 터지는가 하면, 죽은 자의 넋을 씻기는 무당의 구슬픈 한풀이에는 그만 함께 눈시울을 붉히는 광경은 두 시간 내내 이어졌다.
유난히 40대 관객이 많이 눈에 띄는 것도 특이한 점 중 하나. 박기복 감독의 우스개처럼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인간극장을 합쳐놓은 분위기”의 영화 형식은 그간 많이 쏟아져 나온 비슷한 형식의 TV 다큐에 친숙해진 관객들에게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고, “시선이 복잡해 자칫 흐름을 잃을까 걱정된다”는 감독의 우려도 쉽게 불식됐다.
이날 함께 참석한 강신무 박미정 보살은 “무당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한 사람일 뿐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3년이라는 제작 기간 동안의 어려움과 내레이션을 쓰지 않은 특별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감독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려고 했기에 마이크의 위치를 들키지 않는 게 가장 어려웠다. 내레이션을 쓰지 않은 것은 현장의 소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무당이 죽은 자의 언어를 특별히 통역(?)하는 방식이 있냐”는 특이한 질문에 박 보살은 “죽은 자를 받아들이는 빙의 혹은 강신의 과정은 말 그대로 내 몸을 빌려주는 것이므로, 죽은 자들이 단지 몸짓으로 얘기를 하는 경우든,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든 그들이 택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연출하거나 덧붙여 설명하는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서울대 인류학과 학생들과 진도를 방문했다는 한 학생은 “영화 전체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묻어있는 것 같다. 그것이 교양 다큐 같던 영화 속에서 감독의 시선이 드러나는 유일한 순간”이라고 지적하자, “맞다. 굿이든, 장인이든 이 세대를 끝으로 단종될 것을 생각하며 많이 아쉬웠고, 그런 개인적 감정이 후반으로 갈수록 깊게 묻어난다”고 동의했다.
“극영화에 대한 유혹은 없었냐”는 물음에는 “현장이 통제가 안될 때는 그랬다. 하지만, 교양 다큐는 꼭 찍어보고 싶었던 것이기에 흔들림 없이 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신들린 무당의 신산한 삶에 대한 박기복 감독의 보고서는 20일 오후 8시 대영 6관에서 또 한번 볼 수 있다.
심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