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타리(Documentary)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 혹은 개인을 ‘기억’과 ‘재현’이라는 방식을 통해 재구성하는 기록물이다. 다큐는 그 자체로 기록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건의 증언 혹은 고발이 되기도 하며, 때때로 회고의 성격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록, 증언, 고발, 회고의 과정에서 대상이나 주체, 혹은 관객들을 때때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지난 19일(수) 홍대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래교육준비단 AT클리닉 워크숍 ‘힐링 히스토리 : 다큐, 역사와 치유’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한 감독들이 촬영 과정 혹은 이후에 경험한 ‘치유’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치유’에 대한 다큐 감독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지난 14일(금) 개봉한 <과거는 낯선 나라다>를 연출한 김응수 감독은 영화에서 대상이 되는 두 사람(故 김세진, 이재후)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과거의 일을 현재 속으로 재현해 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감독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방식 대해 “카메라와 인터뷰이와의 감정적 밀착보다는 냉정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택했다”며 “증언하는 사람은 상흔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친구를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가해자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또 감독은 “주변 사람들과 인터뷰 하는 동안 인터뷰이들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며 과거가 결코 과거로 존재할 수 없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송환>의 김동원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간절하고 그 이야기가 남에게 감동을 주고, 내 생각을 공감하는 관객이 있다면 그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며 그것이 다큐가 가진 희망이다”고 말하며 다큐가 가진 가능성에 긍정했다. 그러면서 “다큐를 통해 내가 바뀌었고, 나 자신이 세상을 배워가는 것, 또 작품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경험했고 이런 것들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며 다큐라는 작업이 주는 여러 가지 변화의 지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낮은 목소리> 3부작을 연출한 변영주 감독 역시 “작업을 하면서 나의 다큐멘터리 작업이 여성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이 할머니들에겐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고 나에게도 치유의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변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우린 올바른 사람을 찍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찍을 뿐인데, 역사의 피해자를 찍을 때는 자꾸 그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며 다큐작업에 있어 고민의 지점을 던졌다.
1987년 대통령 부정 선거의 피해자를 다룬 <돌 속에 갇힌 말>의 감독 나루는 “부정선거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구로구청에서 농성을 했던 사람들이 가진 상처를 돌아보자는 것 이었다”고 작품을 소개하면서, 그는 다큐작업에 대해 “같이 한숨 쉬고 같이 기억을 더듬으며 같이 눈물 흘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인터뷰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 보고 상처를 공감하게 되었다면, 상영을 마치고 나눈 대화는 치유의 다음 단계였다”고 말했다.
여성영상집단 ‘움’은 “<우리는 정의파다>, <거북이 시스터즈>를 촬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은 대상 스스로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며 “실제로 <거북이 시스터즈>의 한 명은 제작과정에 참여를 했으며 일반 매체에서는 보여 주지 않았던 ‘장애’와 ‘여성’이라는 측면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참여적 촬영’ 방식으로 정의하면서 “과거 다큐멘터리의 대상이었던 ‘객체’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촬영자 혹은 제작자의 개인적인 성찰이 사회적 성찰로 확대 되면서 개인의 문제가 실상은 사회와 큰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것이 치유의 시작이 된 것 같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