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대표 연예인’ `거침없는 사투리로 시사를 풍자하는 아짐’ `신얼씨구학당의 이효리’. 놀이패 신명의 배우이자, MBC 신얼씨구학당·말바우 아짐의 진행을 맡고 있는 지정남(36) 씨에게 붙는 수식어다.
지난 17일 그가 진행하고 있는 `말바우 아짐’이 1000회를 맞았다. 햇수로 3년이다. 출근길 라디오를 통해 시민들에게 3년 동안 꾸준히 감칠맛 나는 사투리로 속 시원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일요일이면 안방극장 TV를 통해, 마당극 무대에서는 배우로, 시위가 펼쳐지는 현장에서는 1인 시위자로 나서 서민들의 아픈 심정을 대변했다. 그런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16일 오후 `말바우 아짐’의 1001번째 녹음 현장을 찾았다.
편안한 `아짐’·동네 `이모’
“어야~ 파장시! 주먹밥 한댕이 잡사볼라우. 아따 내가 비싼 참지름 안애끼고 들들들 부서갖고 손으로 또작또작 해가꼬 맹글어왔네. 요고 잡수믄 입에서 기냥 살살 녹아부러. 아이~ 찐빵에 팥고물 빠지믄 서운하고 말바우장에 와가꼬 나 안보믄 서운하데끼 인자 오일팔 때 주먹밥 안 잡수믄 서운하제. 으짜요? 맛나제?”
장영주 PD·김인정 작가와 함께 17일 분 말바우 아짐 1001번째 이야기 녹음이 한창이다. 이날의 주제는 5·18 주먹밥이다. 리허설을 마친 후 단번에 녹음이 들어간다. 방송은 5분이지만 대본수정, 리허설, 녹음 등으로 제작은 1~2시간 정도 걸렸다.
`말바우 아짐’은 지난 해 한국방송대상에서 지역생활정보 라디오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방송에서 들어보기 힘든 전라도 사투리로 따끈따끈한 지역 현안을 풍자하고 웃음 속 뼈있는 지적을 해오며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말바우 아짐의 인기에 대해 지정남 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말바우 아짐이 편안한 이미지예요. 딱딱하니 입바른 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 구수한 사투리로 가려운 등을 빡빡 긁어주며 시원하게 속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른신들이나 많은 분들이 편안하게 생각하시더라구요. 얼씨구 촬영을 가거나 마당극 무대에 서면 `말바우아짐!’하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런저런 이야기 해달라고 제보도 하시고 격려도 해주시죠. 그만큼 가슴에 쌓인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니 말바우 아짐이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나 봐요.”
또랑또랑 이야기 하는 그의 말에 힘이 느껴진다. 전라도 말로 `깡’이요, 다부짐이다. 자칫 드세 보일수도 있지만 정이 묻어난다. 특유의 걸쭉한 입담은 된장뚝배기처럼 구수하며 맛깔스럽다. 말바우 아짐을 통해 그가 하는 이야기는 말 자체가 벌거벗은 듯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솔직했다. 꾸미거나 친절을 가장하는 행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디를 가나 편안한 `아짐’이자 동네 `이모’이다.
지금의 그를 만든 노동운동
놀이패 신명의 마당극 배우가 되기 이전 그는 무등양말공장의 노동자였다.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이곳 저곳의 중소기업을 다니다 무등양말공장에 들어갔고 노조를 결성해 싸움을 했다. 결국 해고를 당해 살벌한 노동현실을 온 몸으로 체득한 해고자가 됐다.
“아버지가 아프고 돌아가신 후 집안 사정이 정말 가난했어요.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빈농이었기에 어머니가 인문계를 못 보내셨죠. 그런거에 대한 불만 아닌 불만이 있었어요. 열심히 살았는데, 진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게 이게 맞나? 이런 생각들이 노동운동을 하게 만들었어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그에게 세상은 제도와 돈으로 인간을 짓밟고, 강자가 권세를 부리며 약자를 억누르는 모순투성이였다.
무등양말 해고자가 되면서 지 씨는 신명을 만났다. 신명이 해고자 대책위였다. “대책위인 신명이 공연을 할 때 무대 아래 앉아서 공연을 보는데 그거밖에 안보이는 거예요. `앗! 저거 진짜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하여튼 그때 저것이 내 길이다 싶드라고요.”
그렇게 해고노동자로 싸움을 하던 지 씨에게 놀이패 신명은 새로운 인생이 되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그의 내재된 끼와 결합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그가 해고노동자였던 15여 년 전과 시청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이 계속되는 지금의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은 고도로 발달하지만 없는 사람들이 당하는 것은 더 험해지고 있다”며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안쓰러워했다. 시청비정규직 윤옥주 씨는 15여 년 전 지 씨가 외쳤던 말을 지금도 똑같이 외치고 있다.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내가 죄라면 없이 살아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죄밖에 없습니다”라고.
건강하게 진화하는 배우
그렇게 그는 14년 동안 놀이패 신명의 마당극 배우로 잔뼈가 굵게 활동했다. 토큰 몇 장이 다인 월급을 받으면서도 농민들 노동자들 해고자들의 시위현장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지난 2003년과 2005년부터는 신얼씨구학당과 말바우 아짐의 진행을 맡았다.
“`배우’는 제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천직이라면 말바우 아짐은 시민들의 마이크이자 확성기죠. 얼씨구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서 끌어내는 끌개고요. 판단력보다는 가슴으로 눈높이를 맞추는 게 필요했죠.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었어요. 공부를 하게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했죠.”
그는 현재 늦깎이 대학생이다. 2년 전 동신대 문화기획학과에 입학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건강한 배우로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기 위해서다. 사투리 공부를 위해 조정래 선생의 책을 즐긴다. 또 평소 속담사전과 수첩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틈틈이 살핀다.
얼마전 그는 영화판에도 뛰어들었다.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숙경 감독의 독립영화 `어느 개인 날’을 통해서다. 한 이혼녀의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내용의 영화에서 지 씨는 이혼녀에게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해주는 계기를 준 전라도 아줌마 `지정남’으로 출연했다.
현재 그는 말바우 아짐, 신얼씨구학당, 신명의 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어찌보면 마당극 무대와 말바우 아짐, 얼씨구 학당이 `지정남’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꼭 필요한 자리에서 뵙고 싶다”
텅빈 겨울 들판처럼 조금은 쓸쓸하기도 한 얘기들을 토해낼 때 그의 눈동자에는 물기가 촉촉이 고이기도 했다. TV와 잡지 등 매체를 통해서보던 이미지와 달랐다. 참 여리고 소녀다운 여인이었다. 이런 모습에 대해 그는 자신이 배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배우라면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자리에 설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죠. 서라는 대로 서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하겠다, 어떤 역할을 해내야겠다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봐요.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말바우 아짐은 저와 김인정 작가가 만들어 낸 새로운 인물이고 지정남은 그런 캐릭터를 소화해 내야 하는 배우인 것이죠.”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거침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두려워지는 때가 있다. 바로 관객 앞에 섰을 때다. “마당극 배우는 얄짤 없어요. 판에 딱 섰을 때 관객들은 알아요. 특히 어르신들은 이 사람의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 어떻게 사는 사람인지 대번에 알아채시죠.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제가 사심이 있거나 무지하면 제가 하는 이야기는 이상하게 들리게 되죠. 제 자신 스스로를 건강하게 지키고 있어야 어떤 문제를 이야기 하더라도 제대로 발현되고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을 이 시대의 무당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일을 대신해서 풀어내주는 무당.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단다.
앞으로 많은 곳에서 자주 뵙기를 바란다는 마지막 인사에 그는 “듣기 좋은 육자배기도 한 두 번”이라며 “많은 자리보다는 꼭 필요한 자리에서 뵙자”고 답했다.
따뜻한 눈으로 사람들의 속내를 풀어내는 자리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울고 웃는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강련경 기자 vovo@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광주드림
광주드림
한겨레
[드림이만난사람]`말바우 아짐’ 지정남 씨 | ||||||||||||||
서민들 맺힌 가슴 풀어주는 이 시대의 무당 | ||||||||||||||
강련경 vovo@gjdream.com 광주드림 | ||||||||||||||
기사 게재일 : 2008-05-21 00: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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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1천회 맞은 지역 라디오프로 진행 지정남씨 | |
사회에 ‘똥침’…광주는 ‘아짐 중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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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말바우 아짐’ 3년 훌쩍
시민 “아침 굶어도 방송없인 못살아” 지역성·현장성 더해 시사 풍자 작렬
광주문화방송은 16일 아침 8시35분 시사풍자 프로그램 <말바우 아짐>(피디 장영주, 작가 김인정)의 1천회 특집 방송을 내보낸다. 거침없는 전라도 사투리로 출근길 도시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장수’ 프로의 진행자는 마당극 배우 지정남(37·사진)씨다. 미리 제작된 특집에서 택시기사와 시장 상인 등 애청자들은 이 프로에 대해 “저렇게 방송하다 다음 개편 때 없이지는 거 아냐’라거나 “아침은 안 먹어도 아짐 얘기는 꼭 듣는다”며 열띤 반응을 보였다. 이 프로의 백미로 꼽히는 ‘말바우 아짐’은 북구 두암동의 전통시장인 말바우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가 정책과 현안을 풍자하고 훈수하는 5분짜리 일인극이다. 2005년 3월2일 시작해 오는 5월17일 1천회를 맞는다. 진행자인 지씨는 ‘호랭이 물어가네’ ‘예말이요, 글믄 쓰것소’ ‘뭣 낀 놈이 성난다드니’ 등등 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유행시키며 직격탄을 쏘기보다 돌려치는 해학으로 서민과 농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광주의 현안인 인화학교 성폭력, 광주시청 비정규직 등을 다루면서 서민들의 사투리로 서민들의 심정을 여과 없이 전달해 ‘지역성’과 ‘현장성’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덕분에 지난해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지역생활정보 라디오부문 작품상을 받는 영예도 안았다. 지씨는 “거리에서 만나는 분들이 이런 이야기도 해달라고 ‘제보’ 겸 ‘격려’를 해주세요”라며 “그만큼 우리들 가슴에 쌓인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니 <말바우 아짐>이 아직 해야 할 말이 많지요”라고 말했다.
전남 곡성 출신인 지씨는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무등양말에서 노조를 결성하려다 입사 3년 만에 해고를 당했다. 해고 투쟁을 하다 놀이패 신명을 만나 마당극 배우와 소리꾼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방송이 현장을 놓치면 생명력을 잃는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와 광주시청 비정규직 복직 거리시위 등에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미는 근성을 보여왔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기사등록 : 2008-05-15 오후 07: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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