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외출

[단독] 靑 "블랙리스트 영화 못막아" 공무원 징계

참된 2017. 2. 6. 12:34



[단독] 靑 "블랙리스트 영화 못막아" 공무원 징계

`다이빙벨` 등 상영 책임물어 문체부 과장에 경고 지시
휴직후 암투병 사망…특검 "청와대 압력 증거 확보"


  • 이현정 기자   매일경제
  • 입력 : 2017.02.06 04:01:02   수정 : 2017.02.06 11:51:47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으로서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과 세계 각국의 한글교육기관 확대 등에 기여했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2016년 2월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공무원상 시상식. 이날 고(故) 김혜선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의 어머니가 딸을 대신해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5개월 전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업무능력을 인정받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그런 그가 암 치료를 위해 1년 반 전 문체부를 떠날 당시 '경위서'를 두 번이나 썼다는 사실을 아는 동료는 거의 없었다. 문화정책국 국어정책과장으로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김 과장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영화산업 정책개발과 지원 등을 맡고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발전기금 운용을 관리하는 것도 주 업무 중 하나였다. 그는 2014년 10월 15일 주변에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휴직하면서 휴직계와 함께 두 건의 경위서를 제출했다. 이는 청와대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직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와 정부 비판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이 상영된 것을 막지 못한 경위를 설명한 내용이었다. 국가보안법 문제를 다룬 영화 '불안한 외출'이 그대로 상영된 것도 문책 대상에 올랐다.

해당 영화 관계자들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정부 지원 배제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는 사흘 뒤 청와대에 '김 과장을 성실의무위반으로 서면주의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청와대 지시는 '더 세게 징계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문체부는 같은 달 21일 김 과장에게 서면주의보다 한 단계 높은 징계인 서면경고 조치를 내렸다. 청와대가 직접 현역 공무원의 경위서 작성과 징계를 지시한 만큼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듬해 9월 암 투병 끝에 결국 세상을 떴다. 촉망받던 젊은 공무원의 죽음에 대해 당시 언론은 "그가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매달리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 과장이 블랙리스트 영화인들에게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주변에서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고인과 일했던 문체부 동료들은 "평소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혼자 짊어지는 편이라 경위서를 썼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며 "고인의 성품을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도 최근 "블랙리스트를 담당하던 직원들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울며 호소한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청와대가 이처럼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공무원들에게 경위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문체부에 징계를 요구했다는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청와대 지시로 이뤄졌다는 문체부 관계자들 진술도 확보했다. 특검팀은 청와대가 블랙리스트 대상 선정과 운영, 사후관리까지 모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이번주 후반 박 대통령을 대면조사하면서 이 같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또 이번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고등고시 12회·구속)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51·사법연수원 23기·구속)을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대통령을 제외한 정·관계 최고위급 인사인 이들은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다. 한편 고인의 유가족은 공무원연금공단에 과로사로 인한 유족 보상금을 청구했지만 지난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재심 청구도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