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금잔디의 별명은 ‘고속도로 퀸’이다.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무려 100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려 붙여진 별명. 그러나 여왕, 다시 말해 1인자의 자리만큼 외로운 것이 없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말 못할 외로움, 고독함이 있었고 이는 금잔디를 병들게 했다. 공황장애. 금잔디는 긴 시간 어둠에 잠겨 있었다.
깊은 수렁을 벗어나기 위해, 금잔디는 자신을 내리 누르던 욕심을 벗어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을 알고 타인을 알고 세상을 알게 됐다. 어깨는 가벼워졌고, 앞날은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금잔디의 마음엔 마침내 행복이 깃들었다.
10. 지난 7일 열린 쇼케이스 때 보니, 말을 정말 잘 하더라.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금잔디 :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다. 사람은 좋아하는데 낯을 많이 가린다. 밖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척’이었던 것 같다. 쾌활한 척, 외향적인 척. 그런데 내 성격이 그렇지 않더라. 소심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겁도 많았다.
10. 힘들지 않나. 무대 위에서는 여러 사람을 한 번에 마주해야 하는데.
금잔디 : 삶을 제대로 알기 전까진 ‘무데뽀’였던 것 같다. ‘내가 소심한 건가’, ‘사람들과 어울리기 쉬운 성격인가’ 구분하지 못했다. 관중을 바라보기보다는, 내 노래를 전달하는 것에 급급했다. 그런데 세상을 알고 사람들을 알게 되니, 대중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올라가면 모든 사람의 표정이 다 읽힌다. 한 사람의 표정만 안 좋아도 긴장이 되고 생각이 많아진다. 다행인 건 과반수이상의 분들이 흐뭇한 미소로 지켜봐주신다는 것이다. 팬 믿고 움직인다고 하지 않나. 팬 분들을 보며 힘을 많이 얻는다.
10. 혹시 공백기때 앓았다던 공황장애도, 실제의 모습과 밖에서 보이는 모습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발생한 건가.
금잔디 : 그런 것 같다. 병을 앓으면서 세상을 알게 됐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배웠다. 예전에는 감정 표현에 솔직했는데, 이젠 매일 아침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 만난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할지, 얼마나 정을 줄지. 많이 바뀌었다.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10. 힘든 시기에 당신을 버티게 해준 것은 무엇인가.
금잔디 : 없었다. 그냥 ‘내일이면 괜찮겠지’ 하면서 버텼다. 나를 대신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와의 싸움이었다. 무언가에 기대고 의지하려 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똑같은 삶이 반복됐다.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지난 10여 년 간 나에게 모든 것을 걸었던 두 매니저 오빠들을 보게 됐다. 나 자신은 없어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오빠들은? 몇 년 동안 나를 위해 모든 걸 투자했던 오빠들에게, 내가 받은 만큼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지가 된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에 대한 마음만큼은 간절했다.
10. 혼자 이겨냈기 때문에, 앞으로 절대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겠다.
금잔디 : 맞다. 한 번 아파보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알았고,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도 알게 됐다. 이제 웬만한 일은 ‘이 정도쯤이야’ 하고 넘긴다. 예전에는 말(言)에도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이젠 거뜬하다. 마음에 돌이 앉은 것 같다. 단단해졌다. 아팠던 시간이 그래서 내겐 감사하다.
10. 쇼케이스 당시 아무렇지 않게 병력을 얘기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시간이 감사함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나.
금잔디 : 그 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온 기자 분들이라면, 내가 어떤 이야길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를 해코지하러 온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엔 나쁜 사람도 분명히 많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그래도 세상이 돌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실제 그 날 올라온 기사들을 전부 읽었는데, 다들 예쁘게 써주셨더라.
10.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렇게 쉽게 믿다니. 위험한 일 아닌가. (웃음)
금잔디 : 내가 대처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이젠 믿고 따라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좋았던 사람들이 더 많다. 상처를 줬던 몇 명만 기억에 꽂혀있던 거다. 내 주변에 100명이 있었다면 90명은 좋은 사람이었다. 10명 때문에 100명을 다 미워할 필요는 없는 거다.
10.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때는 언제였나.
금잔디 : 나를 향해서 끝없이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이 있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지 않나. 그런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나를 응원해주기 위해 전국 어디든 따라 오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마음으로 감사함을 알게 된다. ‘저 분이 정말 큰 에너지를 쏟고 계시는 구나. 저 한 분을 위해서라도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사실 그래서 힘든 것도 있었다. 완벽한 무대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 어느 날 임창정 오빠에게 “아프고 나서 노래하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고 말했더니, 관중들은 내가 완벽한지 아닌지 모른다고 하더라. 내가 전달하는, 즐거운 에너지만을 기억한다는 거다. 그 후론 그냥 즐긴다. 내가 힘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 됐다.
10. 반대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인가.
금잔디 :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그 때만큼 외롭고 고독할 때가 없다.
10. 당신의 외로움을 기댈 수 있는 안식처는 없었나.
금잔디 : 없었다. 아직까지도 못 찾고 있고.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무대가 끝난 뒤 극도로 쌓이는 외로움, 고독함을 그 다음 스케줄에서 풀었다. 그러다 몸이 지치면 쓰러져 잠자기 바빴고. 이게 수없이 반복되면서 병이 쌓인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삶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스트레스 왜 받아? 뭐가 외로워?” 긍정의 힘으로 스스로를 세뇌한다.
10. 외로움의 이유에는 사람들의 시선도 있을 것 같다. 워낙 많은 편견에 휩싸이는 직업인데다가, 트로트는 편견이 더욱 심한 음악 아닌가.
금잔디 : 트로트라는 음악 자체가 천대받는 음악이 됐다. 그런데 트로트가 됐건 발라드가 됐건 다 똑같은 음악이다. 예전에는 인터뷰마다 “트로트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가 애쓸 거예요”, “트로트가 무시 받는 게 싫어요”라는 얘기를 했는데, 이젠 아니다. 대중도 트로트를 이해하는 날이 분명 올 거다.
10. “트로트를 알리겠다”는 책임감을 내려놓으면서, 오히려 음악 자체에만 집중할 수도 있었겠다.
금잔디 : 이번에 임창정 오빠 노래(‘서울 가 살자’)로 컴백을 준비하면서 이 노래를 듣는 연령층이 어딜까 생각해봤다. 내 노래를 좋아해주던 50대부터 70~80대가 듣기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10~20대에겐 창법 자체가 ‘노땅’스러울 수 있고. 내가 섭렵할 수 있는 연령층이 거의 없더라. 어쩌면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단 임창정의 곡이라는 이슈 자체가 젊은 친구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그들에겐 ‘임창정이 쓴 발라드가 이렇게 소화될 수 있네?’라는 걸 보여주고 싶고, 어른들에게도 ‘트로트가 쿵짝쿵짝하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트로트가수도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픈 마음이다.
10. 쇼케이스 당시 국내 트로트계의 허리를 맡고 있단 얘기를 했다. “트로트가수도 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욕심도, 이와 관련이 있나.
금잔디 : 허리가 무너지면 전신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허리’라는 역할이 처음에는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이런 시도를 해보지 않으면 점점 겁은 더 많아질 거고 도전은 더 어려워질 거다. 대중이 트로트를 이해하기까지 기다리기보단 자꾸 던져서, 알게 해주는 매개가 되고 싶다.
10. 실제 트로트 시장 안에서 느꼈던 답답함도 있었을 것 같다.
금잔디 : 음악시장의 흐름이 빨라지다 보니, 젊은 친구들은 전 세계의 음악을 금방 흡수한다. 트로트 역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도전이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랩, 댄스, 인디 등 다양한 음악을 듣고 트로트에 접목해야 했었는데 기존 팬들이 좋아하던 스타일만 고집했던 게다.
그리고 사실, 트로트 가수들도 많은 변화를 시도한다. 다만 사람들이 인지 못할 뿐이다. 주현미 선배님, 태진아 선배님, 설운도 선배님… 정말 많은 도전을 하신다. 그런데 중장년층은 그 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젊은 층은 아예 트로트에 귀를 막고 있다. 그 점이 아쉽다.
10. 당신의 각오를 어떤가.
금잔디 : 아까도 말했듯, 내가 ‘허리’에 있다. 트로트와 대중음악의 경계를 깨기 위한 시도를 하고 싶다. 장윤정이나 홍진영 같은 친구들이 정말 잘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나 역시 트로트가 새로운 음악으로 들릴 수 있게, 중간다리 역할을 잘 하고 싶다. 나중에 후배들이 자신 있게 트로트 음악을 내놓을 수 있도록 말이다.
10. 어른들이 좋아하는 전통 트로트, 젊은 층이 좋아하는 세미트로트, 아주 명확하게 구분된 시장이다. 중간층을 파고들겠다는 시도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
금잔디 : 인기에 대한 욕심이 예전에는 정말 많았다. 트로트가수로서 정상 한 번 찍어봐야지. 아프고 나면서 깨달았다. 나만 잘난 게 아니더라.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이었는데, 나는 너무 나만 생각했다. 그 후론 욕심을 내려놨다. 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을 거고, 싫으면 싫은 거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해줄 수 는 없지 않나.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를 시도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다.
10. 이번 음반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내려놓음 덕분이었나.
금잔디 : 그렇다. 이렇게 좋은 곡을 선물 받았으니 “올인하자” 했다. 대박이건 쪽박이건, 결과론적으로 보면 안 된다. 하려고 했는데 안 된 건 탓하면 안 된다. 왜냐? 하려고 했으니까! 이런 분에게 노래를 받는 건 내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른다. 돈 있으면 뭐 할 거냐. 싸 짊어지고 살 수 없다. 좋은 곡에 ‘올인’하는 것보다 뿌듯한 일, 없다. 다시 나올 수 없는 앨범인지도 모른다. 이 한 곡 한 곡에 정말 많은 돈을 들였다. 후회 없는 도전이었다. 다 올인! 통장 마이너스!(웃음) 그래도 어디 가서 내밀 때 절대 부끄럽지 않은 음반이다.
10. 욕심을 내려놓은 지금은, 목표하는 바가 전과 달라졌을 것 같다.
금잔디 : 그냥 금잔디 자체만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금잔디가 최고야, 여신이야, 다 필요 없다. 나는 예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못할 거다. 그냥 내 환경 안에서 즐기려고 한다. “금잔디, 제대로 무대를 즐기더라.” 그 정도를 원할 뿐이다. (매니저 : 이야~ 연습한 멘트 아니야?) 연습 안 했다. 득도한 거다. (웃음)
10. 한 차례 고비도 겪었고 깨달음도 얻었다. 금잔디는 지금, 행복한가.
금잔디 : 어우~ 좋다. 아주 좋다! 예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멘트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내 사람으로 만들지?’, ‘옷이 안 맞아서 뚱뚱해보이면 어떡하지?’ 머리가 복잡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오늘은 무대에서 어떻게 놀아야지’ 생각한다.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니 정말 행복하다. 일에 있어서도 사람들에게 많이 맡기게 됐다. 예전에는 내가 다 해야 했는데, 이젠 내가 해야 할 일과 내 것이 아닌 일을 명확히 알겠다. 내 몫은 무대에서 즐기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올라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