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

다시 굴뚝에 오른 날, 해고노동자가 또 숨졌다

참된 2014. 12. 16. 10:46

다시 굴뚝에 오른 날, 해고노동자가 또 숨졌다

등록 : 2014.12.14 20:21     한겨레


‘쌍용차 정리해고는 유효’ 판결뒤
2명 고공농성 돌입…26명째 희생
“회사쪽서 복직 등 해결책 찾아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왼쪽)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1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안 70m 높이의 굴뚝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다, 찾아온 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평택/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의 실낱같던 ‘마지막 희망’은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11월13일)로 꺾였다. 그 이틀 뒤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린 ‘투쟁 2000일 집회’에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의 아내 이자영(42)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대법원 판결의 여파는 저에겐 이렇게 나타납니다. 남편 얼굴은 다시 타들어갈 것이고 남편이 지금보다 더 집에 못 들어오게 될 것이며, 남편과 조합원들은 더 극단적인 투쟁에 몸을 맡길 수도 있겠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창근 실장은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과 함께 13일 새벽 4시15분께 평택공장 안 70m 높이의 굴뚝에 올랐다. 14일 오후 이자영씨는 남편을 보려고 굴뚝이 보이는 공장 앞에 섰다. 자영씨가 낀 빨간 장갑을 알아보고 이창근 실장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자영씨는 “‘우리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걸 알리기 위해 올라왔다’는 남편의 말이 와 닿는다”며 “힘싸움을 하려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러 올라간 거다”라고 말했다. 이창근 실장과 함께 오른 김정욱 국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사법부도 등을 돌렸고, 국정조사를 해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부와 의회도 등을 돌려 공장 안 동료들 말고는 기댈 곳도 갈 곳도 없었다”고 ‘공장 안 굴뚝’에 오른 이유를 설명했다. 두 사람이 오른 굴뚝은 2009년 ‘정리해고 반대’ 77일 공장 점거 파업 때 서맹섭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장 등 3명이 86일간 농성한 곳이다. 2012년엔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 등 3명이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 올랐다 건강 악화로 171일 만에 내려왔다. 서맹섭 지회장은 “오죽하면 이 추위에 또다시 굴뚝에 올라갔겠나. 6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내년이면 신차도 나오는데 회사가 이제는 해고자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굴뚝을 올려다보며 착잡해했다. 두 해고노동자가 하늘에 오른 날, 땅에서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박아무개(47)씨가 간암으로 스러졌다. 대량 정리해고 이후 목숨을 잃은 쌍용차 노동자·가족이 26명째다. 1996년 쌍용차에 입사한 박씨는 2009년 해고 통보를 받았다. 허리디스크를 앓던 박씨는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다 지난 9월 판정받은 간암을 이기지 못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불규칙한 생활에 경제적·정신적 고통이 덮쳐 건강한 사람도 안 아픈 데가 없다. 사법부도 회사도 해고노동자를 벼랑 끝에 내모는 상황에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이겨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로 ‘법적 구제’의 희망이 사라졌다고, 멀쩡히 살아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로 살아남으려고, 공장 안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우리를 잊지말라’고 세상에 호소하려고, 두 노동자가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70m 공장 굴뚝에 올랐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쌍용차,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싸움에서 사회적 교훈을 얻어야 했는데 법제도 개선 등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대안이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제라도 사회적 고민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노 소장은 “회사가 단계적으로라도 해고자 복직 방안을 내놓는 등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평택/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