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시간 2014-11-18 23:22:14
최종수정 2014-11-19 09:38:11 민중의 소리
평생을 홀로 살아온 70대 노인이 5평 남짓한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만나는 사람이라곤 사회복지사나 주민센터 관계자밖에 없었던 그는 시신을 수습할 가족조차 없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시 중구 신당동의 한 다가구주택 2층에 살던 정모(72)씨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그를 발견했던 것은
공익근무요원 신모(21)씨였다. 인근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신씨는 평소 일주일에 다섯 번씩 정씨의 집을 주기적으로 방문, 도시락을
배달해왔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였던 정씨가 평소 고혈압과 당뇨합병증 등을 앓고 있었고 자신의 신병을 비관해 왔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 수사는 점차 자살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씨는 발견 당시 자신이 입고 있던 내복을 위로 걷은 채 복부를 한차례 흉기로 찔린 상태로 발견됐지만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다는 점과 흉기 사용을 주저한 흔적 등을 들며 정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7일 사망한 70대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집ⓒ민중의소리
고아로 살다 마흔 살에 호적 취적, 이후에도 결혼 안 하고 홀로 살아
정씨의 죽음 이후 그가 살아온 과정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고아로 살아온 정씨는 자신의 나이 마흔이 되던 83년도가 돼서야 호적을 취적했다. 이후에도 결혼을 하지 않은 정씨는 죽기 전까지 평생을 홀로 살아왔다.
취재 과정에서도 정씨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주민센터 담당자나 사회복지사도 정씨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되기 전 무슨 일을 했는지 정도만 알고 있는 정도였다.
정씨는 2003년 기초수급대상자가 되기 이전 공원관리, 하수도 청소 등 공공근로직(공공부문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해결해
왔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정씨의 경우 이웃 주민들과 거의 왕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려운 환경의 노인들 중 주변
이웃과 어울릴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증언 등에 따르면 정씨가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순간은 주민센터나 복지관 관계자 방문이 사실상 유일했다. 정씨는 2년전
지금의 보금자리에 정착했지만 그를 알고 있는 이웃은 없었다. 정씨와 같은 다가구주택에서 거주하는 이웃 주민은 "정씨와 실제로
마주친 건 두세 번 남짓일 뿐"이라며 "평소 사적인 대화도 나눠본 적 없다"고 밝혔다. 또다른 이웃 주민도 정씨와 마주쳤던 것은
복지관에서 도시락 배달을 위해 방문하거나 주민센터에서 후원 물품인 쌀을 가져다줄 때 뿐이었다고 했다.
정씨는 기초생활수급으로 지원받는 50여만원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지만,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월세 25만원은 꼬박 납부했다. 해당
다가구주택을 관리하는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정씨가 체납한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없는 살림 속에서도 아끼면서 생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보통 점심 한끼 정도를 배달하는데 밥 양이 많은 편이어서 어르신들은 두끼에
나눠드시곤 했다"며 "얼마 전에도 후원 들어온 쌀이 있어 가져다드렸는데 '햅쌀'이라고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같은 하늘아래에서 방치된 사람들…담당 공무원도 부족
신당2동 주민센터는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기초수급자들의 주거 실태를 관리해오고 있지만 체계적인 관리는 어려웠다고 한다. 신당2동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는 187가구, 총 263명에 달하지만 담당하는 공무원은 1명뿐이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기초수급대상자 숫자에 비해 해당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 부족해 일정한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분기별
1회 방문을 기준으로 몸이 아프거나 홀로 계신 독거노인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씨의 경우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혼자 살고 있어 주 1회에서 2주 1회 정도 방문해 왔다"며 "지난 10일 얼굴을 봤는데 그때가
마지막일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씨는 죽은 뒤에도 외로운 길을 가고 있다. 경찰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정씨의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지만, 부검 이후 시신을 양도할 유가족이 없어 무연고자 처리를 준비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의 경우 일체 가족이 없는 경우로 무연고자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무연고자 처리가 받아들여지면 해당
구청에서 시신과 고인의 재산을 회수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청에서 시신을 화장한 뒤 정씨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