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21세기판 <파업전야>' 부산영화제 달궜다(2014.10.10)

참된 2014. 11. 6.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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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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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일하던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어느 날 용역업체 계약직으로 전환된다는 공지가 나붙는다. 경영상 차원에서 결정됐다는 일방적 공지였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정규직 채용을 약속받은 선희(염정아 역)나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싱글맘 혜미(문정희 역), 오랜 기간 청소를 담당해 온 순례 여사(김영애 역) 등 마트 직원들에게는 날벼락같은 소식이다.

갑작스레 고용환경이 바뀐다는 것에 다들 우왕좌왕하지만 혜미의 노력으로 노조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런데 회사의 대응이 참 너무하다. 자신들이 부려먹는 사람들을 '반찬값 벌이 하러 나온 아줌마들'이라고 폄하하고 무시하면서 협상도 거부한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협상장에 나오지 않는 회사 사람들을 기다리는 아줌마들의 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결국 매장을 점거하는 본격적인 파업 투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공권력은 철저히 자본의 편이다. 회사 측의 불법은 묵인한 채 매장 점거한 사람들만 죄인 취급한다. 방관하던 정규직들은 이후 자신들도 고용 불안이 커지면서 노조에 동참한다. 인사팀에서 비정규직을 관리했던 정규직 직원 동준이(김강우 역) 노조위원장으로 나서게 되면서 이들의 투쟁은 탄력을 받는다.

회사 측은 파업 참가자들을 모두 해고하고, 복귀자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않겠다며 노동자들을 이간질한다. 용역을 동원한 폭력도 서슴치 않는다. 이 과정에서 이탈자가 늘어나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 사람도 생겨나면서 투쟁의 동력은 많이 약화된다.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싸워온 이들에게 적당한 타협은 불가능하다.

애처롭기만 한 이들의 투쟁. 부당 해고에 맞서 싸우는 마트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성공할 수 있을까?

"비정규직 문제는 지금도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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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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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첫 공개된 영화 <카트>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2007년 이랜드 계열사에서 벌어졌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 해고 투쟁을 모티브로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영화에 투영시켰다. 

부지영 감독은 "과거에 국한하기 보다는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데 의미를 뒀다"며 "특정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 지켜봤던 비정규직 사례를 다양하게 조사했고,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매체 통해 검색하고 자료를 조사해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카트>는 마트 노동자들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문제도 선희의 아들인 태영을 통해 짚고 있다. 노동자들의 고용을 함부로 생각하는 회사와, 아르바이트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편의점 사장 등을 통해 일터에서 가해지는 여러 횡포들을 고발한다.

하지만 <카트>의 바탕에 깔린 것은 투쟁보다는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다. 무능한 남편 대신 생업전선에 나가야 하는 엄마와 어려운 형편 탓에 급식비를 못내 부끄러워하는 아들,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살며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는 여고생 등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우리의 모습이다. 맡길 데가 없어 파업 현장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 엄마의 모습도 해고가 이들의 삶을 붕괴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전체적으로 따뜻한 기운을 느껴지는 건 이처럼 고단한 서민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회사의 이간질 속에 내부적인 반목과 갈등이 있지만 서로 이해하는 가운데 화해하고 연대의 손을 잡는 장면은 영화를 통해 전달되는 잔잔한 감동이다.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고 벼랑 끝에 몰린 상태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민까지 아우른 것은 영화에 배어 있는 인간미다. 아이를 키우는 모정의 선택을 보는 영화의 시선은 너그럽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올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현실은 영화에서 중요하게 강조되는 부분이다.

<카트>는 1990년대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파업전야>를 연상케 한다. 노동문제를 소재로 한 탓도 있지만 제작사가 명필름인 이유도 있다. <파업전야>는 당시 영화운동단체인 '장산곶매'가 만들었고 제작자가 명필름 이은 공동대표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파업전야>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제2의 파업전야로 인식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카트>는 촬영과정에서도 비정규직들과 해고노동자들을 참여시키며 의미를 더했다. 촛불집회 장면이 대표적인데, 대형마트 노조원들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굴뚝 농성을 진행했던 유성기업 노동자, 여러 현장에서 농성 중인 시민사회단체 인사 등이 보조 출연자로 함께했다. 

<다이빙벨> 이어 부산영화제 화제작 부상한 <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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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후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영화 <카트>의 감독과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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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는 지난 7일 첫 상영에서 5000석 규모의 야외상영이 매진된 데 이어 8일에도 가장 좌석이 많은 영화의전당 대극장(하늘연극장) 상영까지 매진되며 인기몰이를 했다. 올해 부산영화제 초반을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이 달궜다면, 후반부는 비정규직 투쟁을 담은 <카트>가 담당한 셈이다.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천우희, 지우 등 많은 여배우들이 출연하고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도경수가 배우로 나선 것도 인기몰이의 한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염정아의 몰입도 높은 연기와 함께 많은 배우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드라마적 구성이 돋보인다.

지난 8일 상영 후에는 남동철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부지영 감독을 비롯해 배우 염정아, 천우희, 지우, 이중수 등이 참여했다. <한공주> 이후 부각되고 있는 천우희는 열성팬에게 선물을 증정받기도 하는 등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부지영 감독은 등장하는 배우들이 많은 것에 대해 "예전 영화보다 많은 배우가 등장하는데 저에게는 새로운 시도였고,  배우들과 소통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서로 간 연대와 우애가 좋았다"고 말했다.

부 감독은 또 영화에 시민단체 등의 연대가 묘사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노동단체들이 주를 이루면 영화가 산만하게 될 수 있어 가족을 중심으로 집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상영 때도 당시 함께 연대했던 단체들이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허구적인 이야기라 기본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마트 청소부로 나오는 순례 여사가 울산대 청소노동자 김순자씨를 참고로 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으나 부 감독은 "그렇지는 않다"며 "허구의 캐릭터일 뿐이다"라고 답했다.

염정아 "영화가 사회에 좋은 영향 미치면 기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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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트>의 주연을 맡은 배우 염정아 씨가 8일 상영 후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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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염정아씨는 <카트>가  비정규직 등 사회문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영화가 사회에 좋은 쪽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나 많은 감동을 했고, 제 연기를 통해서 다른 분들께 이런 현실을 전달해 드릴 수 있을까 싶어 용기를 갖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염정아씨는 또한 "야외상영 때도 보고 오늘도 봤는데, 영화를 보고 울었다"면서 "몰입을 많이 하고 있었던 탓에 진짜 힘들게 촬영했다. 저는 영화 보면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여러분들이 눈치 못 채고 봐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마트 직원으로 나오는 배우 천우희씨는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관객 분들이 제가 느꼈던 것과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시나리오 보고 지금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일단 많은 여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흔치 않은데 그런 일원에 한 명이었다는 게 뜻 깊었다"고 영화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부지영 감독은 영화의 결말에 대해 "해피엔딩이든 어떻든 현실과는 다른 영화적 결말을 넣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계속 진행 중인 문제들이라 처음 생각대로 갔다"고 말했다. 

<카트>는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제작사나 배급사가 대기업 계열사가 아니라는 점도 눈에 띈다. 제작사인 명필름은 대기업 제작사의 틈바구니 속에서 <건축학개론>, <화장> 등 의미 있는 작품을 내놓고 있고,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는 대기업의 영화시장 장악에 맞서 영화사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다. <카트>는 영화 내용뿐 아니라 제작과 배급에서도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