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밥먹다 용서빌던 모습, 현실속 나와 똑같아”

참된 2014. 11. 6. 22:32

“밥먹다 용서빌던 모습, 현실속 나와 똑같아”

등록 : 2014.10.22 21:20 수정 : 2014.10.23 15:12    한겨레

 

 

홈플러스 노조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애환을 다룬 영화 <카트>의 시사회가 끝난 뒤 영화와 현실의 작업 현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숙·정미화·김효선·최상미·오경복 조합원.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영화 ‘카트’ 본 마트 노동자의 소회

스크린 밖 노동자들이 영화 속 노동자들과 함께 울었다. “어쩌면 이렇게 한 편의 영화가 내 삶을 고스란히 얘기할 수 있을까요.” 대형마트 9년차 계산원 김효선(35)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22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카트> 시사회를 찾은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물을 펑펑 쏟는 이들을 지나쳐 갔다.

‘오늘 나는 해고되었다’라는 카피를 단 영화 <카트>는 ‘더(the)마트’에서 일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과 노동조합 설립 과정을 담았다. 2007년 이랜드그룹으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했던 홈에버 노동자들의 510일 장기파업이 시나리오의 뿌리다. 지난해 3월 노조를 만든 뒤 1년6개월여 만인 이달 초 임금인상안 잠정합의를 이끌어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노조 조합원 5명에게 영화는 현실 그 자체였다.

영화 속 노동자들은 일방적 정리해고 통보 뒤 노조를 만든다. 김씨 등이 속한 홈플러스노조는 서울 영등포점 사내 영화동아리에서 만난 ‘피티’(PT·파트타임 비정규직)들이 모여 서로의 애환을 나누다 시작됐다. 인격적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인 환경은 이들을 더욱 끈끈하게 묶었다. 영화 속 대사처럼 단순노동을 하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만 해가 바뀌어야만 100~150원 오르는 시급이 이들이 기대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한다.

홈에버 노동자 해고 다룬 영화
현실과 똑같은 모습에 눈물 흘려

7년차 노조 지부장 정씨
“아들뻘 관리직이 반성문 쓰게 해”

10년차 노조 지부장 오씨
“노조 설립 때 정말 두려웠어요”

7년차 노조 지부장 최씨
“인간적 대우 받으며 일하고 싶어”

영화 ‘카트’
7년째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노조 영등포지부장 정미화(53)씨는 “아들뻘인 젊은 관리직들이 아줌마들을 군대 식으로 다뤘다. 말 한마디면 해고되기도 했는데 요즘에도 이런 세상이 있나 싶었다”며 처음 마트 일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영화 속에서도 더마트의 30대 정규직 남성 관리직들은 실수를 한 40~50대 여성 피티들을 복도 한가운데에 놓인 ‘생각 의자’에 앉혀놓고 반성문을 쓰게 한다. 더마트 직원들이 쉬는 공간 곳곳에는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들은 립스틱 색깔도, 머리 색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4년차 계산원인 노조 서울지역본부장 김진숙(35)씨는 “고객이 화를 내면 잘못한 게 없어도 무조건 사과해야 했다. 밥 먹다 불려나와 ‘죄송하다’고 했다. 너무 굴욕적이었다”고 했다. 영화 속 ‘혜미’도 직원 휴게실까지 찾아온 ‘상진이 엄마’(‘진상 고객’을 이르는 마트 직원들의 은어)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빈다.

김진숙씨는 “이러다 그냥 잘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동료 9명과 노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길고 어려운 싸움의 시작이었다. 연장근로수당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 법에 따라 단체교섭을 요구해도 무시당했다. 돌아오는 건 징계였다. 점포마다 돌아가며 파업을 벌였다. 그렇게 싸우고 싸워 지금은 홈플러스 전체 노동자 1만2000여명 가운데 2500여명이 조합원이 됐다.

10년차 계산원 오경복(49·인천 간석지부장)씨는 더마트의 정규직 출신 노조위원장이 파업 87일째에 던진 말이 절절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낙숫물이 과연 바위를 뚫을 수 있을까.’ 이 대사처럼 지난해 처음 노조를 설립했을 때 그 큰 회사를 상대로 우리가 잘할 수 있을지 정말 두려웠어요.”

영화 ‘카트’의 한장면. 사진 씨네21
영등포지점의 정 지부장은 올해 1월 첫 파업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파업에 부담을 많이 갖고 있었어요. 매장을 돌면서 ‘언니들 파업 시작됐어요. 나오세요’라고 했는데 다들 망설이고 나오지를 않아요. 그러다 한 언니가 ‘계산대 막으라’며 뛰어나오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나온 거예요. 매장 밖으로 나와서 껴안고 울었죠.” 회사의 탄압을 우려해 노조 가입 사실을 숨겨야 했던 조합원들이 서로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7년 경력의 계산원으로 7월에 노조 수원영통지부장이 된 최상미(49)씨는 “택시에서 내릴 때, 집에서 전화를 끊을 때도 습관적으로 ‘고객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다”고 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