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
ⓒ 권우성 |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는 19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매경 세계지식포럼 사전행사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자신의 연구와 책 내용에 대해 발표했다. 아래는 이날 발표 내용 전문이다.
초청해줘서 감사하다. 한국에 와서 책 소개 하게 돼서 좋다. 제 영어가 아마 불어처럼 들릴 텐데 죄송하다. 그리고 책 너무 길게 써서 죄송하다.
한국이 유럽이나 일본보다 많은 성장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수백 년에 걸쳐 5%씩 성장을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의 불평등 문제가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주요한 화젯거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게) 시의적절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과거 역사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뤄져있다. 1, 2, 3번은 과거에 대한 해석이고 4번째 부분에서 나름 미래에 대한 전망을 말하고 있다. 책 전반에서 주로 했던 건 과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내 책에 있는 방대한 자료를 보길 바란다. 나는 소득과 부와 불평등에 대해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자료를 수집했고 나 말고도 20명 이상의 학자들이 도와준 덕분에 책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자본과 소득 비율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바뀌었고 어떻게 부의 집중을 만들었느냐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들어있는 자료는 크게 2가지. 하나는 소득의 분배, 또 다른 건 부의 분배와 관련된 실증적인 데이터다.
나는 책을 통해서 소득 집중 현상에서 부의 집중 현상으로 관심을 바꾸려고 했다. 물론 두 가지가 전혀 별개의 내용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내가 책을 쓸 때는 한국 데이터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요즘 한국의 자산상태, 부에 대한 데이터들도 수집하고 있어서 다음 판이 나오면 거기에 한국 데이터를 포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증적인 소득 자료는 각국의 소득세 자료에서 얻었다. 우리는 여러 나라의 소득과 소득세 통계를 가지고 데이터 분석을 했다. 미국 경제학자인 사이먼 쿠즈네즈가 미국 자료를 가지고 1955년에 시도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이다. 다만 우리는 분석 대상기간을 좀 늘리고 대상 국가도 더 많이 넣었다. 자료 해석면에서 보면 그냥 쿠즈네즈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소득불균형 추이를 보자. 이 차트는 미국 상위 10%의 세전소득이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급작스럽게 많이 내려간 시점이 있다(1940년부터 뚝 떨어짐). 1950년대 들어서는 30%대까지 떨어졌다가 1980년대부터 갑자기 급작스럽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2000년대에는 50%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이 데이터는 2010년까지밖에 없는데 이후 데이터를 보면 지금은 미국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어선 상태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 1910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의 소득 불평등 정도 | |
ⓒ 토마 피케티 |
쿠즈네즈는 상위 10%의 세전소득이 갑자기 뚝 떨어졌을 때까지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낙관적인 결론을 내렸다. 소득의 불평등이 경제발전이 진행되면서 감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70년대까지는 소득 불평등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의 사회 구성원들이 경제발전의 혜택을 나눠가졌다는 얘기다. 나라 경제가 3~4% 증가하면 국민 모두가 소득이 3~4% 정도 증가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2000년 이후를 보면) 상위 10%의 소득비율이 50%까지 치솟았다. 이는 경제가 성장해도 상위 10%가 많은 부분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상위 10%가 전체의 70%를 가져가고 있다.
(상위 10%가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 해도) 경제가 계속 잘 성장했다면 나머지 30%를 가지고 하위 90%가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2000년대 가계부채가 급증했는데 이 역시도 하위 90%의 경제 상황이 취약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급격히 증가한 불평등은 경제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긴 했지만 미국만큼 심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1:1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통계 자료만 놓고 보면 한국 역시 불평등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보다는 약하지만 유럽·일본보다는 심각한 수준이다.
▲ 토마 피케티 교수가 정리한 '1870년부터 2010년까지 유럽의 자본/소득 비율' | |
ⓒ 토마 피케티 |
왜 이런 소득 불평등이 생겼을까. 기본적으로는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 상황이 달라지면서 임금의 차이가 생긴 측면이 있다. 가령 IT업계는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수요보다 적었다. 그래서 임금이 올랐다.
미국 같은 경우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갖춘 노동력이 공급되는 속도가 유럽에 비해 느렸다. 어떤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소득이 적은 사람이 하버드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잡기는 어렵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 계층에 대한 교육 기회가 보장되면 소득의 불평등은 감소한다. 나는 소득이 낮은 하위계층이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갖춰진다면 소득불평등을 줄이는 데는 가장 효율적인 제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소수만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구조라면 소득 불평등은 더 증가할 수 있다. .
다시 미국 소득 불평등 심화 얘기로 돌아가자. 불공평한 교육이 소득불평등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소득 최상위 1%나 초상위 0.1%가 정당한 이유없이 많은 부를 가져가는 것도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유력한 이유 중 하나다.
이건 정치경제사회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 미국 CEO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매우 높은 봉급을 받는데 명확한 이유가 없다. 가령 어떤 CEO가 100만 불을 받다가 1000만 불을 받게 되면 그에 맞는 성과를 내야 소득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그런 걸 충분하게 설명해주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책 내용을 전부 이 자리에서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세 가지로 요약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세습자본주의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세습자본주의 회귀는 생산성, 인구증가율 등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던 유럽·일본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저성장 시대에는 과거에 축적했던 부(상속되는 재산을 의미)가 큰 의미를 가진다(상속재산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소득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의미).
한국도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선진국들보다는 성장을 잘 하고 있지만 영원히 그런 성장률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최근 인구도 줄고 있다.
두번째는 부의 집중이다. 나는 책에서 자본수익률 r과 성장률 g의 격차가 커질수록 부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차트를 띄우며) 지금 보는 게 8대 선진국(미국·독일·영국·캐나다·일본·프랑스·이탈리아·호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적 자본가치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사이에 사적 자본이 500%에서 700%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급격하게 사적 자본이 증가한 비결은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피케티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소개한 선진 8개국의 국민총생산 대비 민간자본과 공적자본 비율 | |
ⓒ 토마 피케티 |
그래프를 보면 8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초기에는 민간 자본이 GDP의 200~300%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제는 400%에서 700% 정도다. 이게 이렇게 꾸준히 증가하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공적자본이 사적자본으로 이동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같은 기간 공적자본의 추이를 보자. 8대 선진국의 공적자본들은 꾸준히 하락했고 지금은 거의 0에 가까운 수준이다. 공공부채가 GDP 크기와 같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같은 국가는 현재 모든 자산을 다 처분해도 빚을 못 갚는 수준이다.
노동소득의 불평등보다 자본소득의 불평등은 더 높다. (다른 자료를 띄우며) 이 자료는 미 경제지인 포브스(잡지)에 가져온 것이다. 포브스는 1987년부터 억만장자 명단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2013년까지의 기록을 분석한 것이다.
일단 세계 경제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억만장자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새로 억만장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빠지기도 하는데 이걸 감안해서 이들의 연간 평균 자산 성장률을 계산했더니 6.8%가 나왔다. 이 기간 세계의 부는 3.3% 늘었다. 부자들이 돈도 많고 수익률도 더 좋다는 얘기다.
3.3% 성장에서 그나마 절반 정도는 인구 증가효과다. 세계 인구가 늘면서 자연적으로 증가한 부라는 얘기다. 자산 증가율은 소득의 증가보다 더 높았다. 성인 1인당 연간 평균 자산 성장률은 2.1%였지만 소득 성장률은 1.4%에 그쳤다.
▲ 피케티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소개한 세계 상위 부유층들의 성장률 | |
ⓒ 토마 피케티 |
물론 이 격차가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언제 이 격차가 벌어지는 게 멈출지도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이 격차가 합리적인 수준 이상으로 벌어지는 것은 (사회에)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의 최상위층으로만 부가 편중되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극단적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는 전체 부 중 중산층이 갖고 있는 몫이 22~23% 정도밖에 안된다. 한 세대 전만해도 이 비율은 30% 대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각국이 누진적인 부유세 도입에 대해 고려하면서 시장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빈부 격차가 발생하는 어느 시점에는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서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조세제도 도입 등의) 해법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만약 누진적인 부유세를 도입해서 불평등 상황이 반전되고 최상위층 부의 성장률이 평균 수준으로 떨어졌다면 그때는 불평등이 해소됐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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