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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 노금노 동지를 그리워 하며(2012.8.30)

참된 2014. 9. 6. 19:15

[추도사] 노금노 동지를 그리워 하며
2012년 08월 30일 (목) 14:19:44   광주인  나상기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지도위원 skna73@hanmail.net

나상기 전 전농대의원대회의장의 추도사 [전문] 

노금노 동지를 그리워 하며..

농민의 벗, 땅의 아들 함평 노금노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어려운 농촌을 지키며 농민의 권익실현을 위해 헌신해 온 농민운동 지도자 노금노 동지가 병마와 싸우다가 29일 새벽5시 향년 63세로 영면 하였습니다.

몇일 전 배종렬, 최병상 동지와 함께 병문안 갔을 때 기운은 없어도 또박 또박 “농민운동사를 정리하기 위해 자료를 정리 하던 중 통증이 심해서 조대병원에 입원하여 열치료 중이라”고 말을 했었는데..
무엇이 급해서 왜 이리 빨리 하늘나라에 가신건 가요.

   
▲ 고 노금노 전 동학농민혁명 함평군기념사업회 회장.

 

1970년대 암울했던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노금노 동지는 농민의식화와 농민권익을 위해 가톨릭농민회에 참여하면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유신독재 치하에서 정보당국의 감시와 때로는 연행되고 구금 되면서도 농민운동의 선봉에 서서 농민권익 실현을 위해 투쟁 하셨습니다.

농협민주화, 쌀생산비보장 및 농산물 제값받기, 부당농지세 시정, 경지정리피해보상, 농가부채 해결, 강제농정 철폐, 외국농축산물 수입반대 등 농민들의 일상적인 경제적인 요구와 권익을 실현하기 위해 농민운동의 선봉에 서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동지였습니다.

특히 노금노동지가 이끈 1976~78년의 함평고구마피해보상 투쟁은 농민들의 경제적요구를 실현하면서 정치의식을 고취시킨 투쟁으로서 70년대 대표적인 농민운동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투쟁과 함께 이론적 토대를 갖춘 노금노 동지의 농민운동에 대한 열정은 모든 농민운동가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항상 농촌현장의 이해와 요구에 바탕을 두고 조사하고 학습하면서 일반농민들을 교육시키고 조직하고 현장 농민들과 함께 투쟁하는 대중투쟁의 모범적인 농민운동가 였습니다.

   
▲ 고 노금노 회장.
그는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사회의 발전과 변혁적 농민운동을 모색하면서 농민대중 스스로의 자주적 농민운동을 역설하고 가농, 기농의 종교적 외피를 벗어 “함평농우회”를 조직하고 “전국농민협회”를 만들어 가농, 기농과 함께 전국단일조직인 전농을 건설하게 되는데 크게 기여 하였습니다.

이제 노금노 동지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모든 민주진보개혁세력이 정권교체를 열망하고 있는 이 시기에 동지의 지혜가 아쉽습니다.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과 식량을 국민과 함께 소중하게 인식하고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해 농업계의 노력이 한층 필요로 할 때에 동지의 떠남은 정말 아쉽습니다.



노금노 동지!
그대의 열정을 살아남은자의 몫으로 남기고 편히 쉬쉽시오.
짧지 않으나 길지도 않은 동지의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함평고을에 평안히 영면 하십시오.

2012년 8월 30일

동지의 벗 나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