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가수' 임정득의 노래와 인생 이야기
여러 생명과 사회 문제 비껴가지 않아... "사회 문제를 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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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왕자로 후쿠시마를 노래하다 후쿠시마사태로 핵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게 됐다. 전해지는 소식이 슬펐다. 그래서 만들었다. '어린왕자'라는 노래를. |
ⓒ 권미강 |
민중들의 마음을 노래로 풀어가는 가수
'참 작다. 다부지다. 당차다. 노래를 참 잘한다.'
노래하는 가수 임정득을 본다면 필경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리라. 그녀는 정말 다부지다. 어떻게 저 작은 체구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까 싶다. 예전에 <일곱색깔 무지개>로 잘 알려진 김수철이라는 가수를 사람들은 '작은 거인'으로 불렀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작곡과 작사를 직접 하는 진정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리라. 임정득도 그렇다.
소위 '민중가수'로 불리고 그렇게 활동하는 그녀는 사람들이 '노래하는 사람 임정득'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또 공연에서도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다. 일반적인 대중가수가 아니라 현장을 다니며 현장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민중 속에서 호흡하면서 노래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민중가수라고 불리길 주저한다. 일반인들은 민중가수를 집회현장에서 선동적인 노래를 하는 사람 정도, 강한 구호를 외치면서 가열한 목소리로 대중을 휘어잡는 가수쯤으로 알고 있지만, 그녀는 진정한 민중가수의 힘이 뭔지 알기에 스스로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민중가수는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나 쿠바의 실비오 로드리게스같이 대중의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민중들의 마음을 노래로 풀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집회현장에서 선동적인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지막하지만 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노래하는 사람. 밑바닥에서 나오는 울분 고통, 기쁨 등을 표현해주는 것이 민중가요라면 그 노래를 불러주고 노래를 듣는 분들이 뭔가를 해소하고 행복해 하고. 선동적인 투쟁가 일색이 아닌 사회적 편견, 삶에서부터 불편한 것들, 모순들을 노래하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노래를 직접 만든다. 자신의 얘기일수도 있고, 오빠 얘기일 수도 있고, 이웃의 얘기일 수도 있는 노래를 직접 만든다. 그렇게 만든 그녀의 노래 중 앨범에 수록된 곡 만 13곡이다.
▲ 노래하는 사람 임정득 노래는 그녀에게 진실을 찾아가는 통로다 | |
ⓒ 권미강 |
무대에 서니 박수를 받더라
그녀가 노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후인 24살 무렵이지만 영남대 경영학과를 다니며 활동했던 민중가요 동아리가 노래의 길로 접어든 시초였다. 시골에서 자란 터라 대중가요에 별 흥미가 없었던 그녀는 동아리에서 들은 민중가요의 가사가 좋아서 그저 따라 불렀다. 그러다 새내기 배움터 공연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관객들이 박수를 쳐줬고 스스로도 자신의 노래에 심취했다. 그 기분과 느낌이 참 좋았다. 그때부터 무대의 맛을 알았다고나 할까?
졸업할 즈음,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분이 나름 소문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집에 반항이라는 것을 했다. 당시에는 사회문제에 큰 고민이 없었지만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겠다고 했다. 집안의 반대는 상당했지만 시작했으니 끝까지 노래의 길을 가겠다는 각오를 꺾지는 못했다.
노심초사로 오랫동안 딸을 봐온 엄마는 처음엔 반대가 심했지만 이제는 마을 분들에게 은근히 자랑도 한단다. "우리 딸이 노래 공연 많이 다닌데이. 인기 많데이." 그러다 요즘에는 "집회시위현장에서 노래 많이 한데이"라며 자랑한단다. 딸을 인정하신 것이다. 개인 콘서트를 할 때는 꽤 긴 거리를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직접 오셔서 챙겨보셨다. 엄마한테 '노래하는 정득이'는 너무 행복해 보인단다.
▲ 세상의 진실을 노래하다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노래로 알리기 위해 불편한 곳에서라도 그녀는 기꺼이 노래 부른다 | |
ⓒ 서태영 |
현장 다니며 직접 쓰고, 곡 붙이고
대구지역 노래패인 '좋은 친구들'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집회현장을 다녔다. 하지만 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었다. 약 7년의 활동을 접고 2009년 말경, 음반을 내고 솔로로 활동을 시작했다. 1집 음반부터 자존심을 걸었다. 하고 싶은 내용을 다 담아내겠다는 욕심으로 리메이크 한 곡만 빼고는 거의 다 자작곡으로 채웠다. 전문적으로 배운 건 없었지만 가사를 쓰다보면 이미지가 떠올랐고 멜로디가 바로 나오기도 했다. 촉을 계속 세우다보면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곡이 나오곤 한단다.
노래를 만들 때는 현장을 가거나 영화를 본다. 현장에 가서 강렬한 인상 받았으면 얘기하고 싶은 거에 대해 생각하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과 영화, 책 등을 본 후 다시 현장에 가서 목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곡에서 멜로디까지 어느 순간 주르륵 써지고 그렇게 써진 곡은 스스로 생각할 때 완결도도 높고 괜찮단다.
만들고 싶은 내용을 머리에 넣어두었다가 음악의 신 같은 존재가 느껴지면 촉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예전같이 공연이 없으면 불안했는데 이제는 공연이 없을 때는 '영감을 채우라고 공연이 없나보다' 하고는 곡 만들기에 매진한다.
▲ 강정에서 구럼비를 위해 노래하는 임정득 구럼비바위가 폭파된다는 소식에 바로 강정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힘이 될 수 있는 한 노래를 불렀다. 강정의 평화를 위해 | |
ⓒ 임정득 |
누구나 직면해 있는 문제를 불러라
임정득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것도 무지무지.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단다. 부족한 것에 대한 자기 학대가 심했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현장을 다니면서 특히 자신에 대한 고민이 컸다. 그때 한 친구가 그녀에게 조언을 해줬다. "자신을 학대하지 마라.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라면서, 임정득은 자신을 너무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을 위해 하기 때문에 뭐든 긍정적일 수 있다'며 친구가 힘을 줬다.
누군가를 위해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따라 불러주면서 우리라는 공통점을 느끼는 거. 그런 사람이 진정한 민중가수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의 집회문화는 내가 겪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대상화된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 문제에 분명 맞닿아 있는데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외에는 전혀 그 문제와 상관없는 사람들 같다는 것이다. 실은 우리 모두가 그 문제 안에 놓여 있는데 말이다.
준비된 대오 말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고 그 사람들의 마음속 고리를 건드려 줄 수 있는 거. 거창하게 누구를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데요' 하고 생각하는 걸 노래해주는 거. 거창하지도 특별한 무엇도 아닌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노래를 통해서 맞닿아있는 것을 그 사람이 느꼈다는 점을 직면하게 될 때, 노래 부르는 희열을 느낀다. 간혹 거리공연을 하면 일반인들이 가사가 좋고 노래가 좋다고 얘기한다. 내가 가진 노래의 힘이 직면해있는 문제를 내 스스로도 겪고 있음이 전달되는 것이다.
▲ 강정 평화를 위한 1위 시위 구럼비파괴를 중단하고 강정의 평화를 위해 서귀포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임정득씨. | |
ⓒ 권미강 |
불편한 진실들을 노래하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면서 상당히 성장했다고 말한다. '나'라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 '나'라는 사람이 하는 말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커간 것이다. 끊임없이 노래할 대상, 상황과의 접점을 찾는다. 접점을 찾았을 때 스스로 대견하다.
싸움의 현장은 그 접점을 찾는 중요한 곳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 싸움의 현장이 곧 우리 모두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장을 찾아가면 조용히 상황들을 바라보다가 가서 노래 한 곡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면 처음엔 의아해한단다. 천막 쳐진 곳에서 그냥 그들의 모습, 결국 우리의 모습이 담긴 노래를 하면 많은 공감을 해준다.
한진중공업에 갔을 때, 높은 곳에서 미소 짓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모습을 보면서 에너지를 느꼈다. 그들에게 힘을 주러 갔다가 오히려 더 큰 에너지를 받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곡이 <소금꽃나무>다. 김 지도위원이 가진 긍정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노래다.
평택 쌍용자동차에 자주 발길을 옮긴 적이 있었다. 안 가면 마음이 불편했다. 그 힘든 시간 이후로 자살하고 아픈 상황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엄마에 이어 아빠마저 자살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일을 해도 하루 종일 눈물이 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사람들과 언론들은 이처럼 냉정하게 외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이 먼저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가하는 무서운 사회적 폭력에 분노를 느꼈다.
누군가의 죽음은 영웅이 되고 누군가의 죽음은 폭도가 되는 진실. 이 사회는 불편한 진실들이 너무 많았다. 그게 나였다면, 나는 어떻게 버틸 것인가 생각하니 슬프고 힘들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단다.
이때 쓴 곡이 <일흔일곱 날의 기억>이다. 하지만 현장에 가면 잘 부르지 않는다. 너무 아픈 노래라서, 그 아픔이 아물기 전에 자꾸 찌르는 것 같아서.
▲ 강을 자유롭게 하라 '강의 눈물'팀과 인터넷 방송 라디오인이 주관한 4대강반대 홍보부스에서 소원등을 만든 그녀는 모든 강의 자유를 기원했다. | |
ⓒ 권미강 |
노래로 분노를 푸는 것이 내 삶의 방식
현장에 다니면서 노래한 횟수가 대학졸업 후부터 지금까지 1천여 번 가까이 된다. 솔로로 참여한 것도 약 200여 회 정도 되는 거 같다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는 천막콘서트를 했다. 시간 나는 대로 천막농성을 하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는데 10회 정도 했다.
용산, 강정, 쌍용, 기륭전자. 유성기업, 재능교육, 현대사내 하청, 한진 등등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현장에 찾아갔었다. 가더라도 공연할 상황이 안 되면 그냥 얘기만 하고 온다. 그 얘기들이 노래로 쓰여지기도 한다. 강정에 갔을 때는 공연으로 결합하고 서귀포경찰서와 중문단지에서 1인시위를 하기도 했다는 그녀.
노래로 이 시대의 문제를 얘기하고 분노를 풀어내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정하고 노래의 길을 가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간혹 얘기한다. 이제 좀 더 큰 판에 가서 노래해도 되겠다고. 하지만 '큰 판은 나 말고 갈 사람도 많은데 이런 현장에서의 공연들이 자신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단다.
'함께 사는 세상'을 외치는 그녀가 아름답다
1집 앨범인 <자유로운 세계>는 음악적으로 모자란 것도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 뒤에 만들어진 것들은 음악적인 면에서 표현의 방법 등이 나아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소금꽃나무>는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좋아한다. 자신도 좋단다.
이번에 새로 만든 곡은 <어린 왕자>라는 곡인데 변홍철씨가 <녹색평론>에 쓴 시가 좋아서 곡을 붙였다. 탈핵에 대한 이야기다. 3박자 왈츠로 후쿠시마 문제를 담았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시골에서 살아서인지 에어컨 같은 것이 굉장히 불편하고 온난화문제에도 관심이 크다.
특히 핵은 어른들이 저지르는 범죄라고 생각한단다. 아이들에게 핵은 위협적인 존재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경제성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담보로 핵을 확장시키는 행위는 위험한 발상이기에 최근에는 환경 쪽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환경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래서 '동네음악회, 동네콘서트' 이름으로 마을에 들어가서 문제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모든 문제는 얽혀 있고 삶 속에서 문제의 고리를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사람들 속에 들어가 노래로 풀어낼 것이다. 4대강사업의 허구성을 알리는 '강의 눈물' 공연에 항상 참석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사회문제를 노래로 만들고 부르겠다는 그녀는 국가와 사회의 폭력으로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일이 없고 작은 것들, 개인의 것들이 무시되는 일 없기를 바란다. 정의가 어떻고 대의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명의 자유가 짓밟히는 것, 어떤 상황이든 그거에 직면하면 싫다고 말할 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노래와 함께 갈 것이다. 그런 그녀가 참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 * 노래하는 사람 임정득 카페 http://cafe.daum.net/JeongDeuk
* 이 글은 대구 대안미디어 '티엔티 뉴스'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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