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영 사무국장 삶과 죽음을 기리며,,,
임미영동지! 아름다운 사람이여! 그대 잘가시오!
삼성일반노조 초대 사무국장인 임미영 동지가 향년 55세로 2014년 6월 28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한달이 넘었으니 세월의 무상함만 더하고 있습니다.!
이에 임미영동지의 삶을 추모하고자 글을 남깁니다!
진즉부터 몸이 불편하여 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간혹 전화나 문자로 소식을 통하기는 했지만 이처럼 갑작스레 임미영동지의 부음 소식을 들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6월 28일 문상을 다녀오고 나서도 못내 임미영사무국장의 죽음이 와 닿지 못하는 것은, 내 몸이 아픈 것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고인의 부재를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다,
임미영 사무국장을 처음 만난 곳은 영등포교도소 면회실이다.
교도관의 면회 왔다는 연락에 면회실에 가니, 처음 보는 양심수후원회 두 명의 여성동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수인사를 나누고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 당시 양심수후원회사무국장으로 있었던 임미영사무국장은 대화 중 눈물을 보여 나를 무척 당황시켰다.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초면에 말 몇마디를 나누자마자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 낮설었지만, 출감 후 임미영동지를 만나며 어느 동지에게나 임미영사무국장은 순수하고 예민하며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동지임을 알게 되었다
2007년 12/31 영등포교도소를 출감하고 나서 용산학살현장에서 다시 만난 이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자라 온 환경 그리고 이 분단시대 노동자 민중의 삶과 아픔에 공감하며 근본적인 통일문제 노동문제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 시대에 임미영같은 여성동지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 반가워 너무 늦게 임미영동지를 만난 것을 아쉬워하였다.
임미영 사무국장은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로서 통일운동가였으며 노동해방을 위한 전사로 자그마한 몸에서 뿜어나오는 열정으로 살아왔지만, 결국 지병으로 죽음을 맞았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삶인가!
선천적인 건강문제로 자신의 삶의 가치관으로 부모 형제들을 힘들게하는 천덕꾸러기임을 자책하기도 하고 건강문제로 주위 동지들에게 정성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안타까워하던 임미영 사무국장이였지만 동지들에게는 임미영 사무국장과의 만남 그 자체가 기쁨이였다
동년배이고 분단된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나와 임미영 사무국장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땅 역사에 대한 정서적인 일치감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뻣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임미영 사무국장은 비록 몸은 약해 정상적인 거동마저 힘들었지만 조그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은 보기드문 박식하고 훌륭한 여성동지였다.
그러나 뉘 알았으리, 임미영 사무국장은 지난 55년의 삶의 보람을 가져보기도 전에 병마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니 내 삶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아! 나의 삶과 투쟁을 받아들인 여성동지를 영원히 내 곁에서 보내야 했다!
임미영 사무국장은 삼성일반노조에서 1년간 함께 일하면서 전국순회투쟁을 하고 삼성자본에 맞서 싸우고 조직활동과 투쟁을 물러섬없이 하였다. 그 약한 몸으로 삼성본관 경비들과 굴하지 않고 대적하던 모습과 전국삼성계열사 순회투쟁을 하면서 보여준 은은한 힘든 미소를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대가 못다 이룬 꿈을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을!!!
하늘에서라도 굽이 살펴주시오!
[故 임미영사무국장 약력]
1958년 9월 15일 부산 출생 1986년 결혼1987년 4월 10일 득남(김필상) 1999년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원 가입 이후 편집위원으로 활동 2005년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 가입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 2007년 구속노동자후원회 회원 가입 후 2009년 구속노동자후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2009년 7월 사월혁명회 가입 후 2010년 여성위원장 역임 2010년 범민련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 2011년 삼성일반노조 사무국장으로 활동 2012년 전태일노동대학 졸업 2014년 6월 28일 영면(55세)
(부고) 민주 통일애국 인사 임미영 선생 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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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으로 28일 운명, 서울 보라매 병원에 안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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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섭 기자 |
기사입력: 2014/06/28 [22:07] 최종편집: ⓒ 자주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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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 양심수 들의 인권을 위해 한생을 헌신했던 양심수 후원회 전 사무국장인 임미영 선생이 28일 오전 11시에 5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임미영 양심수후원회 전사무국장은 1958년 9월 15일 부산에서 출생하여 양심수 후원회 사무국장과 범민련 후원회 사무국장, 삼성일반노동조합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전태일노동대학을 졸업하는 등 민족, 민주, 민중운동에 투신하여 사회민주화와 조국통일 민중의 인간 다운 삶을 위해 생을 마감 할 때까지 헌신해 왔다.
임미영 선생은 4년전 부터 지병을 얻어 투병하다 6월 28일 오전 11시 폐기능 저하로 운명했다.
빈소는 보라매공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 되었으며, 장례식은 오는 30일 오전 9시 발인할 예정이며 서울 서초동 추모공원에서 화장 후 성남시 분당 메모리얼 파크 납골달에 안치 될 예정이다.
양심수후원회 임미영 전사무국장 약력
1958년 9월 15일 부산 출생 1986년 김동휘님과 결혼 1987년 4월 10일 득남(김필상) 1999년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원 가입 이후 편집위원으로 활동 2005년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 가입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 2007년 구속노동자후원회 회원 가입 후 2009년 구속노동자후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2009년 7월 사월혁명회 가입 후 2010년 여성위원장 역임 2011년 삼성일반노조 사무국장으로 활동
2012년 범민련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 2012년 전태일노동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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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
봄호수 |
14/06/29 [0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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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하실 나이에 타계하셨음을 애통해 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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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입니까 |
이창기 |
14/06/29 [0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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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은 나이에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말입니까. 아 절통합니다. 그 열열한 애국의 눈빛을 어찌 이리 쉽게 영면의 눈꺼풀 속으로 영영 묻을 수 있단말입니까. 아아 애통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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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미영 열사의 부음을 듣고 |
장만호 |
14/06/29 [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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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고인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슬픔과 안타까움에 이 편지를 씁니다. 구속 당시 제 가족들과 함께 구치소에 찾아오셔서 두 주먹 불끈 쥐고 격려하여 주시던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출소 후엔 반드시 고인을 직접 찾아뵙고 7 년에 걸친 동지적 배려에 감사드리고저 했는데 청주 외국인 보호소에서 전화로 인사드리고 추방되어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추방지 미국에서 이렇게 고인의 부음을 듣게되니 슬픔과 안타까움이 더욱 크기만 합니다. 수 많은 양심수들의 마음 속에 고인의 의로운 모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임미영 열사의 명복을 빌며 가족과 동지들께 심심한 위로 인사 드립니다. 2013.6.28 장민호 올림
임미영 선생 넋으로 통일 세상 맞이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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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인사 임미영 선생을 추모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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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섭 기자 |
기사입력: 2014/06/29 [15:3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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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미영선생은 갔어도 그의 혼은 우리 가슴에 살아 조국통일의 길로 나서게 하리라!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
통일세상 넋으로 맞이하소서
어머니는 한 번도 거짓 없는 분이셨습니다.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는 말씀도
회초리도 들지 않고, 큰 야단도 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자율을 주셨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바른 세상을 원하셨던 어머니를
필상이가 슬픔으로 통곡하네요.
01% 자본가들의 배부름을 위해
99.9%의 노동자들이 피 땀을 바쳐서는 안 된다며
외세의 이익을 위해 8천만이
분단의 피고름을 흘려서는 안된다며
인간해방 세상을 절절히 외치던 당신
조국의 통일을 애타게 그리던 당신
동지들이 안타깝게 울부짖네요.
민족의 하나됨을 위해
분단 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독재와 제국에 맞서다
감옥에 갇힌 동지들을 위해
가쁜 숨 몰아 쉬며
몇일 밤을 세워서라도
경상도로 전라도로 충청도로수도권으로
달려가 울고 웃던 당신의 순수함
미치게 그리워 동지들 몸부림치네요
명예도 공명심도 물질적 욕심이란
찾아 볼 수 없었던 당신
이제 바람 되어 분단의 가시철망 넘어
새가 되어 155마일 분단 장벽 넘어
지뢰밭 대검과 총구의 공포를 넘어
당신이 그 토록 보고자 했던 북녘땅을
구석구석 돌아 보고
당신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던 북녘 동포 만나
개성인삼주, 들쭉술 따라 밤새도록 회포를 나누고
신명나는 노래와 춤으로 통일을 맞이하소서.
외세를 반대해도, 반자본 반제를 외쳐도
국가보안법의 수갑이 채워지지 않는 해방세상을
그토록 희망했던 세상 기다리기 지쳐
먼저 당신이 해방세상 여행을 떠나시려
가쁜 숨 내려 놓으셨으니
우리도 웃음으로 보내고 당신이 바라던
참세상 위해 투쟁의 신발 끈을 묶겠습니다.
▲ 늘 긍적적으로 웃음으로 동지들을 대하며 통일세상 그날 까지 함께 자자던 임미영 선생이 우리보다 먼저 통일세상을 맞이하러 갔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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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가협 조순덕 상임의장이 고인의 영정에 국화꽃을 놓으며 고인을 추모했다.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
▲ 평소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던 지인이 향을 피우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
▲ 평소 임미영선생과 함께 했던 지인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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