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케미칼 해복투의 투쟁

[박점규의 노동여지도]민주노조 무너진 구미, 웃음꽃 다시 필까

참된 2014. 7. 10. 04:57
[박점규의 노동여지도]민주노조 무너진 구미, 웃음꽃 다시 필까

 

 

 2000년대 초반까지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이 구미공단 전체 노동자의 20%에 육박했다. 그러나 지금은 1만2000명이던 민주노총 구미공단 조합원은 400명만 남았다.

밤새 쏟아지던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차창 너머로 햇살이 비친다. “세월호를 기억하라”며 청와대로 행진하던 이들이 흠뻑 젖은 채로 끌려가고, 밀양의 할매들이 서럽게 짓밟혔지만 세상의 관심은 축구공으로 옮겨간 듯 무심하다. 

일제 치하 조선총독부 총감에 어울리는 자가 국무총리, 자유당 시절 3·15 부정선거의 장본인 이기붕에 버금가는 자가 국정원장에 임명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며 울먹이던 정부·여당은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다. 구미역을 나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분주한 중앙시장이다. 새누리당 남유진 구미시장의 3선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나붙어 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 77.7%, 새누리당 정당투표 75.2%, 기초의원 1-가 전원 당선. 허수아비도 빨간 옷만 입혀 놓으면 당선된다는 동네답다. 대세인 진보교육감도 없다. 세월호 304명의 목숨보다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준 도시다.

차광호씨가 올라간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 | 박점규

 


박정희가 만들고 친박이 키운 구미공단
구미역을 벗어나자 도로표지판이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안내한다. 구미시 박정희로 107 경상북도 지정 기념물 86호. 백발의 노부부가 박정희 부부의 모형사진 옆에 선다. “사진촬영 시 주의사항. 내외분 어깨에 손을 올리지 마세요.” ‘헐’이다.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장기 집권한 독재자를 추앙하는 나라가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구미에서 박정희는 ‘반신반인’이다.

공장으로 향하는 길을 수출탑이 맞이한다. 강변을 따라 들어선 광활한 공단. 1969년 낙동강 뻘밭을 메워 만들기 시작한 구미국가공단은 박정희 유신독재가 개막한 1972년부터 본격 가동됐다. 16개 회사에서 출발해 1월 말 현재 1994개 회사, 9만8896명이 일한다. 원사를 생산하는 섬유산업과 LG, 삼성을 중심으로 한 전기전자산업이 주축이다.

구미시는 2006년부터 ‘기업사랑본부’를 만들어 기업사랑 도우미, 기업인 예우, 이달의 기업 사기 게양, 기업인의 날 등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쏟아부었다. 구미시 김홍태 투자통상과장은 “구미시의 기업사랑본부 출범과 기업하기 좋은 도시 정책으로 기업체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박정희가 만들고 ‘친박’ 정치인들이 키운 구미공단의 노동자들은 행복하게 일하고 있을까? 노동부의 2010년 사내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구미공단에 위치한 LG전자, LG디스플레이, 이노텍에 30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효성, 코오롱, 아사히초자, 도레이첨단소재 등 화학섬유업체에는 400~700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과 함께 근무한다. 구미시는 국가공단에서 일하는 10만여명의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 비율, 최저임금을 받는 하청노동자의 규모에 대해 한 번도 조사한 적이 없다. 구미시 기업사랑본부 남희성 주무관은 “최저임금을 받는 하청노동자가 많다면 내년부터는 반영해서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출탑을 지나자 구미공단 1호 사업장인 KEC가 보인다. KEC의 옛 이름은 한국전자. 일본에서 돈을 번 곽태석 사장이 고향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 1969년 ‘한국도시바’를 만들었다. 1965년 설립한 대우그룹 오리온전기는 완전평면 TV 브라운관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삼성, LG와 더불어 구미공단 전자산업의 핵심이었다. KEC 맞은편에 위치한 코오롱은 1971년 단일공장 국내 최대 규모였던 한국포리에스텔 구미공장에서 출발했다. 한국합섬, 동국합섬, 금강화섬은 코오롱과 함께 구미공단 섬유산업의 자랑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오리온전기를 비롯해 6개 회사는 모두 민주노총 소속이었고, 노조원만 1만2000명이 넘었다. 공단 전체 노동자의 20%에 육박했다. 노동자들은 구미를 ‘들었다 놨다’ 했다.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임금이 오르고 노동조건이 개선되자 구미공단 곳곳에서 노조 결성 움직임이 일어났다. 민주노총 구미지부 배태선 사무국장은 “당시 사용자들은 요구를 다 들어줄 테니 민주노총에만 가지 말라고 매달려 한국노총으로 간 회사도 많았다”고 전했다. 공단에는 투쟁과 웃음이 흘러넘쳤다. 대우그룹 해체를 시작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오리온전기는 2003년 5월 부도처리됐다. 경쟁력 있는 특수섬유 개발을 소홀히하고 원사의 대량생산에만 매달렸던 섬유회사들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2004년 금강화섬, 2007년 한국합섬이 폐업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적 연대의식은 사라졌고, 노동조합은 무력했다. 하나둘 민주노총을 떠나갔다. 코오롱노조는 2005년 2월 508명의 희망퇴직과 해고, 임금 15% 삭감에 도장을 찍어줬고 한국노총으로 넘어갔다. 해고자들은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싸우기 시작했고, 코오롱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지내던 금속노조 KEC지회는 회사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와 복수노조에 맞서 5년째 힘겹게 싸우고 있다. 1만2000명이던 민주노총 구미공단 조합원은 400명만 남았다. 코오롱 정투위 최일배 위원장은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해 민주노조가 얼마나 소중한지 교육하고 실천하는 경험과 훈련을 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45m 공장 굴뚝에 올라간 해고노동자
빗방울이 흩날리고 먹구름이 몰려온다.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차광호씨(44)가 5월 27일 새벽 올라갔다. 45m 높이, 손을 흔드는 그의 얼굴 윤곽이 흐릿하다. 이틀 내내 퍼부었던 소나기와 돌풍을 천막 쪼가리로 버텼단다. 구미에서 태어나 스물다섯에 한국합섬에 입사한 그의 청춘이 고스란히 새겨진 공장이다. 헐값에 인수해 1년6개월 동안 공장을 돌리던 새 사장이 지난해 1월 3일 회사를 폐업해 162명을 내쫓고 공장을 분할매각하겠다고 했다. 금속노조 스타케미칼지회는 위로금 520만원에 도장을 찍어줬다. 차광호씨를 비롯해 12명이 이를 거부하고 싸우고 있다. 20대에는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백골단에 맞서 싸웠고, 30대에는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용역깡패와 싸웠는데, 40대에는 민주노조 ‘정신’을 지키기 위해 어용노조와 싸우고 있다.

45m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공단의 풍경은 어떨까? “굴뚝 주변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사업장인데 주야 맞교대를 해요.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해 밤 9시 넘어 퇴근하고 토요일 일요일도 나와요. 월급이야 최저임금 받겠죠. 젊은 친구들 얼굴에 웃음이 없어요.”

광호씨가 굴뚝에 오른 지 17일, 2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찾아왔다. 쌍용차, 기륭전자, 재능교육 등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다.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들은 파업을 하고 굴뚝으로 달려왔다. 김성훈 지회장은 “지난 5년의 시간, 힘든 순간순간마다 함께해준 동지들”이라며 “연대투쟁이 아니라 우리의 투쟁이라는 생각으로 왔다”고 말했다.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들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민주노조가 무너진 구미공단은 하청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현대차처럼 제조업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일 확률이 높지만 일자리를 알선하는 파견업체가 천지다. 월급은 법정최저임금, 상여금도 한푼 없다. 젊은 노동자들은 전망이 안 보이니까 얼마 있다가 떠난다. 어느 화학섬유회사에서 5년 넘게 일하고 있는 하청노동자가 들려준 이야기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김밥과 컵라면을 들고 천막 안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핀다. 청춘을 바친 일터를 지켜내고 구미의 젊은 하청노동자들과 제2의 민주노조 시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차광호씨의 말이 맴돈다. 구미공단에서 웃음꽃이 피는 날은 언제 다시 올까?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