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 “‘또 하나의 약속’… 제작 과정도 기적이었다”글 : 송경원 | 사진 : 오계옥 | 한겨레 |
작고 가는 물방울이 모여 바위에 구멍을 낸다. 삼성반도체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씨와 딸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투쟁 중인 아버지 황상기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2월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기업에 얽힌 민감한 소재 탓에 어느 투자제작사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이 영화는 뜻 있는 사람들의 힘을 모아 완성한 또 하나의 기적이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1만명이 넘는 제작두레 참여자, 개인투자자는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준 무수한 손길이 함께했다. 보통 사람들의 운명 같은 인연이 어떻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는지, 수많은 선의가 한편의 영화를 꽃피우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했는지, 김태윤 감독과 박철민 배우의 입을 빌려 <또 하나의 약속>이 지나온 길을 되짚어봤다.
만나는 투자제작사들마다 거절하는 이야기
주변에서 하나같이 만류한 프로젝트. 다들 투자부터 개봉 여부, 심지어 캐스팅도 어려울 거라 입을 모았다. 하지만 지레짐작했던 고민과 현실의 차이는 컸다. 불가능할 거라고 판단했지만 쉽게 풀린 것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어떤 영화든 의기투합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부터 시작한다. 김태윤 감독과 박철민 배우가 만난 그 순간부터 영화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제작비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아준 성원은 이 영화를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생기는 에너지, 꼭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지들이 모여 만들어진 영화다.
김태윤_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건 2011년 6월 <한겨레>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소송에서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승소한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구나 싶어 좀 알아봤는데 과정 자체가 감동이더라. 맨날 하는 일이 그거니 시나리오로 써봐야겠다 싶어 공부를 했다. 당시만 해도 반도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행정소송은 어떻게 하는 건지 전혀 몰라서 황상기 아버님도 찾아뵙고 이종란 노무사님도 만나면서 8개월 정도 취재해 썼다. 1년 정도 지났을 때 철민이 형을 만났다.
박철민_내가 처음은 아니었지?
김태윤_당연하죠. (웃음) 지금 와서 보면 거절한 분들은 거절해준 게 다행이다. 제작과정이 순조롭진 않아 영화가 계속 미뤄졌는데 그분들은 아마 기다려주지 못했을 것 같다. 영화에 대한 지지를 계속 보내주지도 못했을 것 같고. 하도 거절을 당해서 어느 분께 드려야 하나 고민중에 프로듀서가 철민이 형 이야기를 하는데 아차 싶더라.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황상기 아버님과도 무척 닮았다. 팔자 주름부터 항상 웃으시는 거 하며. 거기에 페이소스가 있다. 민중극 도 하셔서 그런지 소재에 대한 이해도 뛰어나시고. 왜, 시나리오는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하잖나.
박철민_2012년 8월 중순쯤에 연락받았을 때 마침 부산에서의 촬영이 끝날 무렵이라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PD가 전화 와서 형한테 대본 보여줄 게 있다 그러더라고. 우리는 그때가 제일 설레고 신나고 고맙거든. 누가 나를 찾아줄 때. 시나리오 보내보라니까 일단 만나서 길게 이야기하자고 하더라. 그때 직감이 왔다. 아, 이건 저쪽이 뭔가 아쉬운 게 있구나. 저예산이거나 엄청 고생스럽거나. (웃음)
김태윤_많은 분들 예상과는 달리 캐스팅은 잘됐다. 보면 알겠지만 면면이 떨어지는 배우들도 아니고 시나리오 보곤 의외로 다들 흔쾌히 하겠다고 하셨다.
박철민_서울로 올라와 대강 이야기만 들은 상태에서 진하게 한잔하고 집에 들어갔다. 마침 딸이 있길래 “아빠한테 이런 이야기가 들어왔는데 니가 한번 볼래” 하고 던져줬다. 그러곤 아침에 숙취로 헤매고 있는데 딸내미가 불쑥 다가와 그러는 거야. “아빠 이거 꼭 했으면 좋겠어.” 이제까지 수많은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말한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물어봤다. “좋아?” “아니 너무 아파.” “재밌냐.” “쑥 읽히더라.” 그때 출연하기로 마음먹었다. 나한테 이렇게 절실하게 부탁할 정도면 젊은 친구들한테도 먹히겠구나 싶어서. 남자배우가 살면서 이런 역할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영광스러운 기회잖나. 영화 전체의 호흡을 책임져야 하니 두렵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앞으로 어떤 힘든 과정이 닥쳐올지 그때는 상상 못했다. (웃음)
김태윤_문제는 돈이었다. 한국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투자제작사들한테 다 거절당한 것 같다. 이해는 한다. 소재도 민감한데 감독이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배우는 주연은 해본 적 없는 사람이고. (일동 폭소) 주변에서는 그런 기우들에 끊임없이 말렸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자신있었다.
박철민_무식한 감독이야. 자기한테 계속 최면을 걸면서 작업했지.
김태윤_그런 확신 없이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요.
박철민_사실 영화 만들면서 이렇게 믿지 못할 일들이 많이 일어난 현장도 드물었다. 돈 필요할 때 딱 맞춰서 돈이 생겼다. 오늘도 홈페이지 가서 읽었는데 없는 돈에 아끼고 아껴서 작지만 소중한 금액들을 기부하셨더라. 거기서 또 울컥했다. 맞아. 우리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었지 하고. 형편 안 되는 분들이 쌈짓돈 모아서 보내거나 여행 가려고 일년 내 모아둔 돈을 선뜻 맡겨주시기도 하고 이민을 가기 전에 조국에 선물을 하고 싶다고 1천만원을 내준 분도 있다. 슈퍼하는 분들이 현물을 가득 싣고 온 적도 있고. 기적이 뭐 별다른 게 있나. 이런 작은 기적들이 모여 큰 기적을 만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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