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욱 감독[사진=양문숙 기자]
영화 ‘비단꽃 길’의 김정욱 감독. 영화의 첫 인상과 그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하지만 영화도 그도 시간이 지나니 한없이 맑고 투명했다. 그는 영화감독이자 촬영감독이자 또 인천에서 ‘영화공간 주안’이라는 예술영화관을 운영하는 관장이기도 하다.
그의 첫 장편 영화 ‘비단꽃 길’은 만신 김금화의 굿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김금화는 그냥 무당이 아닌 인간문화재이고 한국 무용가이다. 영국 런던에서 영화공부를 한 그가 첫 영화로 지극히 한국적인 만신의 굿을 다큐멘터리로 다루어 개봉을 하기까지 그 긴 시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김정욱 감독[사진=양문숙 기자]
-이 자리에 오기까지 성장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서강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어요. 사실 영화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영화과가 지금같이 다양하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고,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그 당시 코스타 가브라스의 정치적인 영화가 유행을 할 때였어요. 저 또한 정치적인 영화를 좋아하기에 대학을 정치학이나 사회학, 철학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정치학을 공부했죠. 그 후 영화를 본격적으로 배워야겠다 생각을 해서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현재 영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는데 영화감독이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렇게 유학을 가 런던예술대학에서 영화공부를 했어요. 전공이 영화연출은 아니었고 영화촬영이었어요, 석사를 영화 촬영으로 전공을 한 다음에 한국에 들어와서는 광고촬영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2007년에 인천시 남구에서 ‘영화공간 주안’을 만들 것이라며 지자체가 처음으로 설립하는 예술영화관을 한 번 같이 운영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프로그래머로 먼저 시작을 하게 됐죠.”
“그렇게 광고촬영하고 예술영화관을 운영하는 중에 4년 전인 2009년 영화 제작 제의를 받았어요. 그 당시 저는 극영화연출 또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영화사 마운틴 픽쳐스 대표께서 다큐멘터리를 같이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주셨어요. 한국 전통에 관한 것을 다루어 보자고 하셨죠. 제가 또 촬영을 하니까 아름답게 촬영할 수 있는 한국 전통의 미를 다루어보자 해서 그런 것을 여러 가지 찾았어요. 그러다 끝내 어떤 문제에 봉착을 했냐면 정말 한국적인 것을 찾기가 매우 어렵더라고요. 결국은 파헤치고 들어가면 중국 아님 일본이 다 엮여 있었어요. 정말로 한국의 전통적이고 또 뛰어나게 독창적인 것을 찾았는데 딱 두 개가 나왔어요. 그게 바로 자개랑 굿이에요. 그런데 자개는 영화적으로 들어가기에 약간 지루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굿을 선택했죠. 사실 제가 정치학을 공부하던 시기에 무당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 굿 하는 것을 찾아 촬영을 다녔어요. 경기도 당굿을 찍은 것으로 포트폴리오를 제출에 유학을 가기도 했고요. 그래서 김금화 선생님을 알고 있었고 또 많이 뵈러 다녔었죠.”
“사실 굿이라는 것을 주제로 생각하기 전에 영화사 대표와 다큐멘터리 주제로 자개를 할까 전통 음식을 할까 음식을 하면 어떤 음식을 할까 하며 한참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대표가 책을 한 권 갖고 계신 것을 봤죠. 그 책이 바로 김금화의 ‘비단꽃 넘세’ 라는 책이였어요. 저는 예전에 다 읽었던 책이었지만 대표는 전혀 그쪽에 관심이 없으신 분이셨기에 신기했죠. 그래서 어떻게 그 책을 갖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책방을 가셨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서 읽었는데 확 끌려서 사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얘기 끝에 김금화에 대해서 다큐를 찍자고 정했죠. ‘가장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것 중에 하나가 무당이고 굿이다. 그러니까 찍자. 내가 가서 김금화 선생님을 만나 뵙고 허락을 받겠다’해서 찾아 가 허락을 받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죠.”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영화 촬영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무당을 이북에서는 만신이라고 불러요. 여기서는 무당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죠. 또 제주도에서는 또 심방이라고 불려요. 만신, 무당, 심방. 이렇게 불리는 것도 다 다르고 또 그 만신들이 각자 굿을 하는 스타일도 다 다르죠. 김금화 선생님은 풍어제를 하세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굿을 하는 거에요. 대동굿이라고 해서 마을에서 하시는 것도 있고 바다에서 하시는 풍어제도 있는데 촬영 당시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원래하시던 서해안 풍어제를 못하고 소규모로 작은 배에서 하시는 것을 찍었어요. 그렇게 2010년에 영화촬영이 다 끝났었어요. 촬영을 다 마치고 1차 편집도 다 끝났을 무렵 김금화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그 장면을 추가로 촬영해 영화 속에 담을 수 있었죠.”
▲ 김정욱 감독[사진=양문숙 기자]
-유럽에서 유학을 하시던 시기에 어떠한 영향들을 많이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런던예술대학에 있다 보니 주변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다 예술을 하는 친구들이었어요. 학교 전체가 예술 하는 친구들로 가득하니까 그 친구들한테 받는 영향이 굉장히 컸죠. 작업을 할 때에도 다른 분야의 친구들과 접목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패션 전공인 친구들과 패션과 영화를 접목시켜 작업을 하기도 하고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 많았어요. 그 전에는 영화가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짠 후 촬영감독과 배우와 같이 찍는 것이 전부다’라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다가 그 친구들과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다양한 방법의 접근성이 있다는 것을 배웠죠. 그렇게 되면서 본 모든 영화들이 그 전에는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의 영화들, 실험영화들도 굉장히 많이 봤어요.”
“이런 얘기가 있어요. ‘파리는 결국 프랑스고 베를린은 결국 독일인데 런던은 유럽이다” 정말 런던에는 모든 유럽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영국인이 많은 것이 아니라 정말 유럽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섞여 있으니 다양한 문화, 생각들을 많이 느끼고 배웠죠.“
-유럽에서 촬영감독으로 활동을 하셨는데 어떤 작업들을 하셨나요
“영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페인으로가 촬영 일을 몇 개 했어요. 방송 다큐멘터리였는데 아프리카의 전통 음악을 하는 무당같은 친구들이 있어요. 그것을 ‘그나와’라고 해요. 모로코의 에싸웨라 지역에서 세계민속음악축제를 하는데 그 친구들이 모여서 했어요. 그 다큐를 제가 촬영 했어요. 그 사람들은 무당 같은 사람들이고 또 우리나라 무당들과 굉장히 흡사해요. 캐스터네츠를 치며 춤을 추며 타령 같은 것을 해요. 음악가이자 무용가이자 정신적인 치유도 해주는 그런 존재에요.”
“그 다음에 스페인 방송다큐를 또 촬영을 했어요. 파리에 있는 젊은 의사들이 몇 년에 한 번씩 여름동안 한 달 가까이를 모로코의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주 시골인 산간지역 친구들을 찾아다니면서 색연필이나 연필 공책을 나눠줘요. 그 나라는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한 나라에요. 시골지역은 여자들을 절대 학교도 안 보내고 첫 월경을 하면 옆집 남자한테 염소 한 마리랑 바꾼대요. 말이 좋아 시집이지 거의 파는 거거든요. 그게 2004년에 촬영을 한 거에요. 30대 40대 남자들이 12살 정도 여자애들을 염소를 주고 사는 행위가 계속 되니까 이것을 막기 위해 젊은 의사들이 그 지역에 가서 학용품을 나눠주고 그 지역의 높은 사람들 군수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교육을 하는 거에요. 그 과정을 담은 작업이었죠.”
“그렇게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정말 사고가 많이 바뀌었어요. 새로운 문화를 보고 접하며 많은 생각을 했고. 내가 지금까지 한 곳에 있거나 한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옳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생각이 계속 바뀌게 되고 내가 알고 또 생각하던 것들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었구나 라는 엄청난 것을 깨닫게 됐죠.”
▲ 김정욱 감독[사진=양문숙 기자]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계시나요?
“사실 작품이 완성이 되고 개봉을 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들 다음 작품을 물어보시는데 이미 다음 작품까지 완성이 다 돼있는 상태에요. ‘어떤 여행’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요. 대학로에서 빨래라는 소극장 뮤지컬로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의 감독이 추민주 감독이에요. 추민주 감독이 소극장 뮤지컬 감독으로는 거의 한국의 최고죠. 그런 추 감독이 일반 시민들을 데리고 두 달 동안 저녁시간과 주말을 이용해서 10주 동안 연습을 한 다음에 인천종합문화회관에서 대형뮤지컬을 했어요.”
“추 감독이 일반인들을 데리고 거의 주말만을 이용해 10주 동안 연습을 한 후 처음으로 대형뮤지컬을 만들었는데 그 공연이 완전 매진돼서 대박이났어요. 그 뮤지컬 제목이 ‘어떤 여행’인데 그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아 영화제목도 ‘어떤여행’이라고 지어졌어요. 금년 말에 개봉을 해요. 개봉만 연타로 하네요.(웃음)”
-계속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시는데 앞으로도 다큐멘터리만을 하실건가요?
“영화공간 주안을 운영하기 전에는 다큐멘터리에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물론 영국 유학을 갈 때 굿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포트폴리오로 해서 유학을 갔지만 그 때에는 다큐멘터리에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라 굿에 매력을 느껴서 그 작업을 한 것이었어요. 그런 정도의 관심이었는데 워낭소리 이후에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어요. 그러면서 또 ‘영화공간 주안’의 프로그래머로써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며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졌죠. 지금은 극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다큐로 시작을 한 것이지 다큐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영화공간 주안’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영화공간 주안은 예술영화관이에요. 예술영화만을 상영을 해요. 지금현재 예술영화는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예술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인정을 해줘요. 그 작품을 주로 틀어요. 그리고 특히 한국 다큐멘터리는 꼭 상영을 해요. 얼마 전에도 멀티플랙스에서 개봉을 했다가 또 바로 내린 문제로 계속 언급이 되던 ‘천안함 프로젝트’도 저희 영화관에서는 장기상영을 했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가요.
“좀 더 많은 작업들을 하고 싶어요. 또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박사과정을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계획은 없지만 공부를 계속 하고싶다는 생각은 늘 해요.”
-최종 꿈은?
“‘영화공간 주안’을 인천시 남구에서 소유하고 있고 저는 운영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제 손으로 예술영화관을 운영하면서 꾸준하게 제 작품을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지금 그 꿈을 이루고 살고 있죠. 그래서 그것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제 꿈이에요.”
[박수연 기자 soopark@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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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서
글쓴이 : 연-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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