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은 누가 지켜주나요?
입력 2012-03-12 12:38:27l수정 2013-06-05 17:46:23
"김천석 동지 부음을 듣고 겁이 나서 울었다. 나도 그렇게 죽지 않을까? 왜 그가 만들었던 영상은 죽음을 미루는 핑계가 되지 않았을까?"
이상욱 독립영화 프로듀서가 故 김천석을 떠올리며 뱉은 말이다. 2008년 4월 기륭전자 투쟁 현장에서 3년간 영상 촬영을 해오던 김천석 씨는 4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유흥희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10일 "생을 달리한 그는 언제나 부르면 오는 자판기와 같았다"고 김 씨를 회상했다. 유 분회장은 김씨를 처음 만난 날을 기륭전자 해고자 복직투쟁을 시작하던 2005년쯤으로 기억한다. 김씨의 카메라가 있을 때는 대치 중이던 용역과 경찰들도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 했다. 유 분회장은 "그는 시녀살이 하듯이 3년간을 살았다"며 "그도 밤새워 일하는 노동자였고 동지였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에는 '숲속 홍길동'이란 이름으로 현장 영상을 제작했던 이상현 영상활동가가 48세의 나이로 반지하방에서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쳤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씨가 생활고로 목숨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씨는 죽기 얼마 전 "당장 먹을 쌀이 없는 상황"이라는 글을 한 게시판에 남겼고 마지막 순간에는 캠코더와 노트북을 모두 잃어버렸다. 당시 투쟁현장에서 그와 함께 했던 영상활동가들 모두 충격에 빠졌다.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태준식 감독은 "숲홍 형님은 어려운 가운데에도 늘 사람들을 잘 챙겼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시고 난후 우리 편을 챙기지 않았다는 생각에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최근 두 활동가의 죽음으로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하 현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유 분회장은 "이제껏 영상활동가들로부터 받은 수혜를 되돌려주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9월 10여명이 모였다. 이런 과정에서 '카메라 등 장비를 사주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후반작업까지 도울 수 있는 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카메라를 들었던 영상활동가와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시민들의 관심 밖에서 고군분투 해왔다. 현카를 만들자고 나선 사람들은 말한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덕분에 '한 대라도 덜 맞을 수' 있었고 '현실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카메라들은 누가 지키나"
사실 현장에서 '영상활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일은 드물다. 지엠(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수년간 카메라에 담아온 김수목 영상활동가 또한 자신을 '영상활동가'라고 떳떳히 소개해본 적이 없다. 김수목 활동가는 "영상활동가는 투쟁가들의 일정에 같이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주체가 되지 못하는 점이 많다"며 "흐름을 같이 하지만 주체가 되지 못해 소외된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이런 점에서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나비 활동가는 "현카가 의도하는 것은 전운동네트워크로서 귀속까지는 아니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물리적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장 영상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한미FTA 반대나 4대강 사업 반대 프로젝트를 위해서 반짝 모이는 것이 전부였다"며 "일상적으로 챙겨줄 수 있는 네트워크, 즉 일상을 공유하고 생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것이 '현카'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1인 미디어나 다름 없는 영상활동가들은 농성장 등을 다니며 카메라에 투쟁현장을 담고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게시물로 등록하는 작업들을 해오고 있다. "감독이 '자신의 욕망'을 담아 영상을 제작한다면 영상활동가들은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독립영화 진영에 발을 걸치고 있을 뿐"이다.
이상욱 프로듀서는 "체제나 제도는 영상활동이라는 시각의 창을 저평가 해오고 사회적 산물이 아니라고 말한다"며 "비주류 영상의 활동이 안정적으로 보장돼야 영화계 또한 지속가능한 다양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카는 이에 따라 현장 영상활동가들에게 영상 제작 및 영상장비 대여 지원을 해줄 계획이다. 지원비용은 소액후원을 받아 마련한다. 이 모임은 앞으로 후원금을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상영회나 간담회, 엔딩크레딧 운동 등 영상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을 생각이다.
10일 이제껏 현장 카메라의 보호를 받아왔던 당사자 유 분회장과 나비, 태준식 감독 등 독립영화인, 미디어 활동가 및 시민단체 10여명이 모여 현카의 발족식을 가지고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날 첫번째 만남의 자리에서는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와 '9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현장 영상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상영회'가 열렸다.
노동자뉴스단이 제작한 '노동자 뉴스 6호'를 시작으로 故 김천석의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 기륭투쟁영상', '2008년 비정규 투쟁'(최은정 감독), '죽지 않았다'(김성만 감독), '연영석 뮤직 비디오'(숲속 홍길동 이상현), 올 하반기 정식 개봉을 앞둔 용산참사 문제를 다룬 '두 개의 문' (김일안, 홍지유 감독)이 상영됐다.
후원을 희망하는 자는 '현카' 공식홈페이지(http://www.fieldcam.kr)를 참조하면 된다.
이상욱 독립영화 프로듀서가 故 김천석을 떠올리며 뱉은 말이다. 2008년 4월 기륭전자 투쟁 현장에서 3년간 영상 촬영을 해오던 김천석 씨는 4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유흥희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10일 "생을 달리한 그는 언제나 부르면 오는 자판기와 같았다"고 김 씨를 회상했다. 유 분회장은 김씨를 처음 만난 날을 기륭전자 해고자 복직투쟁을 시작하던 2005년쯤으로 기억한다. 김씨의 카메라가 있을 때는 대치 중이던 용역과 경찰들도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 했다. 유 분회장은 "그는 시녀살이 하듯이 3년간을 살았다"며 "그도 밤새워 일하는 노동자였고 동지였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에는 '숲속 홍길동'이란 이름으로 현장 영상을 제작했던 이상현 영상활동가가 48세의 나이로 반지하방에서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쳤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씨가 생활고로 목숨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씨는 죽기 얼마 전 "당장 먹을 쌀이 없는 상황"이라는 글을 한 게시판에 남겼고 마지막 순간에는 캠코더와 노트북을 모두 잃어버렸다. 당시 투쟁현장에서 그와 함께 했던 영상활동가들 모두 충격에 빠졌다.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태준식 감독은 "숲홍 형님은 어려운 가운데에도 늘 사람들을 잘 챙겼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시고 난후 우리 편을 챙기지 않았다는 생각에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최근 두 활동가의 죽음으로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하 현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유 분회장은 "이제껏 영상활동가들로부터 받은 수혜를 되돌려주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9월 10여명이 모였다. 이런 과정에서 '카메라 등 장비를 사주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후반작업까지 도울 수 있는 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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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상현(숲속 홍길동) 영상 활동가가 생전에 찍은 영상 中 이랜드 자본의 노동자 탄압 착취에 맞선 투쟁 영상 14, 2007년 10월 23일 낮, 신촌 광흥창역 이랜드 본사앞 (4분 42초) 속보 제작 (출처=http://nodong.com/hong)ⓒ숲속 홍길동
카메라를 들었던 영상활동가와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시민들의 관심 밖에서 고군분투 해왔다. 현카를 만들자고 나선 사람들은 말한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덕분에 '한 대라도 덜 맞을 수' 있었고 '현실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카메라들은 누가 지키나"
사실 현장에서 '영상활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일은 드물다. 지엠(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수년간 카메라에 담아온 김수목 영상활동가 또한 자신을 '영상활동가'라고 떳떳히 소개해본 적이 없다. 김수목 활동가는 "영상활동가는 투쟁가들의 일정에 같이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주체가 되지 못하는 점이 많다"며 "흐름을 같이 하지만 주체가 되지 못해 소외된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이런 점에서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나비 활동가는 "현카가 의도하는 것은 전운동네트워크로서 귀속까지는 아니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물리적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장 영상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한미FTA 반대나 4대강 사업 반대 프로젝트를 위해서 반짝 모이는 것이 전부였다"며 "일상적으로 챙겨줄 수 있는 네트워크, 즉 일상을 공유하고 생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것이 '현카'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1인 미디어나 다름 없는 영상활동가들은 농성장 등을 다니며 카메라에 투쟁현장을 담고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게시물로 등록하는 작업들을 해오고 있다. "감독이 '자신의 욕망'을 담아 영상을 제작한다면 영상활동가들은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독립영화 진영에 발을 걸치고 있을 뿐"이다.
이상욱 프로듀서는 "체제나 제도는 영상활동이라는 시각의 창을 저평가 해오고 사회적 산물이 아니라고 말한다"며 "비주류 영상의 활동이 안정적으로 보장돼야 영화계 또한 지속가능한 다양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카는 이에 따라 현장 영상활동가들에게 영상 제작 및 영상장비 대여 지원을 해줄 계획이다. 지원비용은 소액후원을 받아 마련한다. 이 모임은 앞으로 후원금을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상영회나 간담회, 엔딩크레딧 운동 등 영상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을 생각이다.
10일 이제껏 현장 카메라의 보호를 받아왔던 당사자 유 분회장과 나비, 태준식 감독 등 독립영화인, 미디어 활동가 및 시민단체 10여명이 모여 현카의 발족식을 가지고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날 첫번째 만남의 자리에서는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와 '9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현장 영상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상영회'가 열렸다.
노동자뉴스단이 제작한 '노동자 뉴스 6호'를 시작으로 故 김천석의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 기륭투쟁영상', '2008년 비정규 투쟁'(최은정 감독), '죽지 않았다'(김성만 감독), '연영석 뮤직 비디오'(숲속 홍길동 이상현), 올 하반기 정식 개봉을 앞둔 용산참사 문제를 다룬 '두 개의 문' (김일안, 홍지유 감독)이 상영됐다.
후원을 희망하는 자는 '현카' 공식홈페이지(http://www.fieldcam.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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