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콘서트 \'동행\' 기획단] |
시동을 걸었어 나만의 길을 찾아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다시 합시다! 어제 연습을 많이 했나? 컨디션이 안 좋아?”
“비행기 타고 와서 몸이 좋은 몸은 아니죠...”
“확 질러봐. 찍자. 그냥.”
7월 22일 일요일 오후, 서울 구로동 ‘희망의 노래 꽃다지’ 녹음실. 조성일 씨의 첫 번째 음반 녹음작업이 한창이다. 녹음실 안에 서있는 조성일 씨의 눈에 잔뜩 긴장감이 서려있다. 컨트롤부스(녹음조종실)에 있던 ‘꽃다지’ 음악감독이자 조성일 씨의 솔로 음반 프로듀서이기도 한 정윤경 씨가 쉰 목소리가 난다며 다시 할 것을 주문한다. 정감독 앞에서 녹음 엔지니어 이승완 씨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다.
“아유~ 다시 할게요. 뒤에 ‘보잘 것’ 다시 할게요. 성일아 보잘 것부터 다시 할게.”
“가겠습니다이~”
나만의 길을 찾아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들어볼게”
나만의 길을 찾아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수차례 다시 부르고 들어봐도 정감독은 영 탐탁치가 않은 모양이다. ‘쉰 목소리’는 개선되지 않고, 결국 밖에 나가 잠시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한다. 목소리를 아껴야 하는 조성일 씨는 물 한 모금 마시고 조용히 앉아있다. 금방이라도 장맛비가 쏟아질듯 하늘이 어둡다.
조성일 씨의 첫 음반 제작은 지난해 5월 그가 정식 가수로 참여한 마지막 ‘꽃다지’ 콘서트가 끝난 이후 음반제작비 모금으로 첫 발을 뗐다. 그리고 올해 2월에 수록곡 선정 작업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음반 작업이 시작되었다. 조성일 솔로 앨범의 주제인 ‘Road song’ 시리즈의 첫 번째 앨범은 가녹음과 악기·보컬 녹음, 믹싱작업과 마스터링 등을 거쳐 오는 8월 17일 ‘콘서트 동행’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자칫 발매 일정이 위태로울 뻔 했으나 고비를 넘기고 안정 궤도에 진입한 상태다.
이번 앨범에 수록될 <시동을 걸었어>를 포함한 노래 10곡 모두 조성일 씨가 직접 글과 곡을 만들었다. 연주자로는 일렉기타 고명원, 베이스 기타 박우진, 피아노 키보드 멜로디카 이지은, 어쿠스틱기타 정윤경, 드럼프로그래밍 이승완 씨가 함께하고 있다. 기획은 김춘광(‘꽃다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과 민정연 씨가 맡았으며, 이승완 씨가 레코딩·믹싱 엔지니어로 참여하고 있다.
▲ 첫 번째 음반 ‘Road Song 제1집 시동을 걸었어’를 녹음 중인 조성일 씨 [출처: 연정] |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녹음하고
휴식 시간을 갖고 다시 녹음실에 와서 지난주에 녹음했던 노래를 오늘 녹음한 것과 비교하는 작업을 한다.
내 지갑 속 묵혀 있던 운전 면허증 십년 만에 꺼내들고 길을 나섰네
지도를 펴고 길 찾아 조금씩 앞으로 가려져 있던 세상을 만나러 가는 길
시동을 걸었어 나만의 길의 찾아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어때? 난 리듬감은 오늘 게 나쁘진 않은데, 목소리 생기가 적은 거 같아. 찬욱아, 넌 어때? 엔지니어적으론 어때?
“오늘 목 상태가 어떤가를 떠나 엔지니어적으로만 보면 오늘 게 저음과 고음이 균등하게 들어있어 훨씬 더 좋죠.”
프로듀서와 녹음엔지니어가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정윤경 감독이 <시동을 걸었어>에서 ‘써~~’가 밝게 나오는 게 다행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사 중에 ‘짐짝’이 정확하게 안 들려서 체크도 한다. 저녁 무렵, 이날 녹음 일정이 마무리되자 조 씨의 얼굴에 비로소 안도의 기색이 감돈다.
“녹음 시작하고 한 달 넘게 하루도 못 쉰 거 같아요.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 올라와서 녹음하고 가면 바로 또 일하니까. 한 달 정도는 버틴 것 같은데, 그다음부터 갑자기 피곤이 훅 오더라고요. 어제도 오면서 졸았어요. 어제 녹음 끝나고 숙소 가서 확 쓰러져 버리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의 원천, 제주에 정착하는 꿈
조성일 씨는 현재 제주 시민이다. 2012년 5월, ‘꽃다지 창립 20주년 기념 콘서트: 혼자 울지 말고’에서 14년 동안 활동해온 ‘꽃다지’ ‘탈퇴 선언’을 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에 내려갔다. 그 곳에서 지난해에는 고정 수입 없이 한 달에 1~2개 있을까말까 한 공연과 감귤밭 아르바이트로 버티다가 올해 제주에 있는 지인에게 소개받아 시작한 일이 어린이집 차량 운전이다. 요즘 그는 평일에는 일을 하고, 근무가 없는 주말에는 서울에 와서 음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녹음한 <시동을 걸었어>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꽃다지’ 가수 시절에 차를 타고 가다가 만든 노래다. 2011년 꽃다지 4집 음반 <노래의 꿈> 녹음이 끝나고 방전이 되어 불면증에 시달리며 너무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다시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던 노래 가사다. 그리고 6개월 뒤에 그는 제주로 떠났다. 이 노래의 멜로디는 서울에서 동기 부분만 만들어 두었다가 제주에 내려간 뒤에 완성했다.
“그때 이 노래 가사를 만들어놓고 제주에 가니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다 풀리더라고요. 작년에 집중적으로 3개월 안에 곡이 다 나왔어요. 갑자기 뚜껑이 팍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중얼거리게 되더라고요. 서울에 있을 때는 생각했던 멜로디가 안 나왔거든요. 근데 막 나오는 거야.”
조씨의 꿈은 제주에 정착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 있게 “제주 정착하러 내려 왔어요”라고 얘기했지만,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쉽게 얘기할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그 뒤로는 “제주 정착을 지향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닌 제주로 오게 된 것은 ‘꽃다지’ 활동 중에 공연을 하러 방문했던 일본 오키나와 평화행진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소박한 문화 공간을 보면서 기회가 되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제주에 내려가기 일 년 전 추석 연휴 때 큰 마음 먹고 가족 여행을 제주에 가서 한 바퀴 돌면서 제주의 깊은 맛을 알게 되었다. 오키나와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도 했다. 답답하고 힘들었던 것을 위로받으면서 치유 받는 느낌이 들고, 자연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제주에서도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지만, 그곳에는 치유할 수 있는 연결고리들이 많아 좋다.
“나가면 바다가 있고, 위를 올려다 보면 하늘과 구름이 향연을 벌이고 있어요. 그림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얹혀있던 게 다 쑥 내려가는 거죠. 그런 것들이 해소를 시켜줘요. 날 자유롭게 해주고, 압박되어 있던 걸 풀어지게 해요. 저는 지금도 잘 내려왔다 생각이 들어요. 제주하고 서울을 오가면서 앨범 작업을 하고 공연도 하고 있지만, 그거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주라는 곳이 있으니까.”
▲ 제주 위미 바닷가에서 조성일 씨 [출처: 사진작가 임종진] |
조성일 씨는 하원이라는 작은 마을에 ‘뜬금없이’ 있는 아파트에 산다. 창문을 열면 한라산이 가리는 것 없이 다 보이고, 옆쪽으로는 바다가 보인다. 그는 기적 같이 이 집을 구했다. 제주에는 ‘신구간’이라고 해서 매년 대한(大寒) 후 5일부터 입춘(入春) 전 3일까지 총 7일 동안 이사를 하는 풍습이 있다. 조씨는 2012년 3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꽃다지’ 공연을 하게 되면서 그해 ‘신구간’ 시기를 놓쳤다. 공연이 끝나고 서귀포에 갔지만, 공연 전에 애써 조사했던 정보들은 이미 쓸모 없는 것이 되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서귀포에 있는 한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가 기적처럼 현재 살고 있는 전세 아파트를 소개받았고 보자마자 바로 계약을 했다.
작년에는 지인의 감귤밭에서 일을 했다. 감귤을 리어커로 운반하고 수확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는 당시 감귤밭에 있던 창고에 평상 하나를 갖다놓고 작업실로 사용했다. 그에게는 너무 소중한 공간이었다. 여름 내내 감귤밭 작업실에서 내내 잠도 안자면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집중해서 계속 노래를 만들었다.
“이번 음반에 들어가는 노래의 6~70%는 그 감귤밭 창고 평상에서 나온 거에요. 나머지 3~40%는 차 안에서 나왔고요. 차 타고 가다가 중얼거리다보면 ‘괜찮은데’ 하고 나오는 곡들이 있어요. 동기 부분을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놓고 창고에 가서 틀어놓고 작업을 하는 거죠.”
감귤밭 작업실에 계속 있다 보니 ‘밥을 얻어먹는’ 등 ‘민폐’를 끼치는 횟수가 늘게 되자 최근에는 어린이집 부근에 작업실을 구해 어린이집 근무 사이 비는 시간과 퇴근 이후에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노래 중에 <하늘을 나는 새>는 제주에 와서 만든 노래로, 차를 타고 막힘이 없는 제주 도로를 가면서 '이런 게 자유인가?'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다 놓고 오니 훨씬 넓은 걸 볼 수 있더라는 깨달음이 담긴 노래다.
"꽃다지 4집은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현장에서도 좋아해 줬어요. 저도 몇 곡을 썼는데, 그 곡들도 괜찮은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계속 꽃다지 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그런 거 다 내려놓고 온 거니까. 내 상태를 생각 안하고 욕심 부렸으면 있을 수 있었겠죠. 그런 느낌을 담은 노래에요."
하늘을 나는 새 넌 알고 있었지 모든 욕망을 버리고 가볍게 떠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하늘과 바다 얻을 수 있는 평화와 자유
- <하늘을 나는 새>
또 하나의 인연, 강정마을
“하원마을에서 차로 5분만 가면 강정마을이에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몰랐어요. 이사 하고나서 지도를 보니까 강정이 밑에 있는 거에요. 연이 되려고 그러나보다 생각했죠. 지금까지 해온 음악을 놓지 말고 계속 뭔가를 하라는 의미인가보다. 서울에 있었으면 음악을 아예 못 했을 거에요. 제주에 와서 상태가 나아지면서 조금씩 다시 하고 있는데, 긴장을 하라고 옆에 강정이 있는 거구나 했죠.”
기적처럼 살 집을 구한 것과 함께 또 하나의 신기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강정마을, 그리고 강정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정착을 위해 제주에 온 것이기에 사람을 천천히 만나고 관계도 천천히 맺고 싶었다. 그래서 강정과도 급하게 연을 맺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에 지난해 여름, 강정포구에서 ‘평화활동가대회’ 문화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서 멀찍이 앉아 지켜보고 있었는데, 두물머리에서 활동하던 가수 ‘쏭’에게 존재를 들키게 된다. 즉석에서 다음날 있을 예정이던 평화활동가대회 행사 공연 섭외를 받고, 이를 수락하여 제주에서 첫 번째 무대에 서게 된다. 이를 통해 그가 제주에 왔다는 소문이 강정마을을 포함하여 그를 알만한 제주 사람들에게 퍼졌다. 요즘은 신중한 ‘정착 지향자’의 자세를 견지함과 동시에 자신이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제주에서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강정마을에 가고, 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행사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익산 금산사 템플스테이 ‘내비둬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조성일 씨에게 제주는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
▲ 조성일 씨의 첫 번째 앨범 ‘시동을 걸었어’의 자켓 이미지 [출처: 사진작가 임종진] |
신뢰와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에 감사
<시동을 걸었어> 가사에는 10년 만에 나서는 길이라고 나오지만, 사실상 그가 솔로라는 새로운 길을 나선 것은 꽃다지에 들어온 지 15년 만이다. 2년 전 서울을 떠나는 일이 그러했듯이 솔로 음악인의 길을 걷는 것 역시 쉽지는 않다. 동시에 그것 못지않은 고마움과 감동이 함께 하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올해 초, 두 번째 음반 제작비 모금 프로그램인 텀블럭 소셜펀딩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목표액을 넘기는 열기를 경험했다. 문화운동을 하는 동료 음악인들의 지원과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꽃다지에서 연을 맺은 정윤경 씨가 프로듀서를 맡아주었고, 가수 박준·송순규(아카펠라 그룹 ‘아카시아’)·연영석·정윤경(꽃다지)·정혜윤(꽃다지) 씨가 바쁜 일정 중에도 기쁜 마음으로 코러스 작업에 참여해 주었다. 조씨는 자기 음악 색을 분명히 갖고 가는 에너지가 큰 사람들이 흔쾌히 코러스에 응해주고 함께해준 게 고맙다고 했다. 코러스 작업이 끝나고 모처럼 동료 음악인들과 술 한 잔 할 수 있었던 것도 고단한 앨범작업 중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많은 분들이 제 활동을 신뢰해 주고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 주신 게 정말 감사한 일이죠. 매 주말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일이라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는데, 막상 해보니 할수록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몸과 목이 덜 회복된 상태에서 피로가 이어졌지만, 다행히 녹음도 잘 되었어요.”
이날 녹음 작업이 끝나고 정윤경 감독이 회를 사주겠단다. 정감독이 잘 안다는 횟집이 있는 구로디지탈단지역에 가기 위해 ‘꽃다지’ 사무실을 나섰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듯한 후덥지근한 기운이 느껴진다. 내일 저녁 녹음작업을 마치고 제주에 있는 집에 가면 밤 11시는 족히 될 것이다. 그리고 눈을 붙이고 다음날 새벽 6시 30분에 집을 나서 30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서 스쿠터로 갈아타고 가다가 다시 내려 10분을 걸어 어린이집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할 것이다.
“저는 술 조금만 먹을 거에요.”
“니가 언제는 많이 먹었냐?”
‘대화는 술집에 가서 하는 거’라는 신조를 갖고 있는 정감독이 술집에 빨리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했으나 택시가 오지 않아 결국 버스를 타기로 한다. 조성일 씨가 천천히 버스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버스 앞 좌석에 앉은 그의 축 처진 어깨가 ‘나 피곤해요’라고 말한다. 버스가 출발한다. 꽤 괜찮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