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식 열사

현대차 사옥 앞에 오늘도 장송곡이 오열합니다

참된 2013. 8. 2. 12:49

 

현대차 사옥 앞에 오늘도 장송곡이 오열합니다

[기고] 박정식 열사와 이미 죽어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덤

2013-07-31 21시07분 | 권수정(현대차 사내하청지회)    미디어충청
 
 
 
여기, 35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박정식은 2004년 8월 25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엔진부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입사했습니다. 자동차의 엔진 부품을 조립하며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성실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최병승에게 ‘현대자동차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후 그는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대법 판결에 의하면 이미 2006년 8월 26일부터 정규직이었던 셈이니 법치국가의 대법판결을 신뢰했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누구보다 열심히 앞장서서 싸웠고,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기억되는 그는 그러나 지난 7월 15일 집에서 목을 매어 죽은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 출처 : 백승호 현장기자 ]

박정식이 대법판결을 보고 노동조합에 처음 가입하면서 설마 3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싸워야 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설마 대법판결을 이행하라는 요구로 파업을 하는 조합원들에게 현대차 정규직 관리자와 용역깡패가 폭력을 행사해 뼈가 부러지고 코뼈가 주저앉고 머리가 깨지는 중상을 입어야 한다는 상상을 했겠습니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우리에게 저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늘 합법이고 우리의 파업은 언제나 불법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폭행을 당하고도 죄인처럼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하는 것은 항상 우리라는 것을 그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3년이 지나도록 대법판결이 이행되지 않아 같은 처지의 최병승과 천의봉이 300여일을 철탑에서 새처럼 살아야 한다는 상상을 박정식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믿어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어 스스로 목을 매고 죽을 것이란 상상을 어떻게 했겠습니까. 대법판결을 보고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말입니다.

박정식은 마땅히 정규직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법이 지켜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규직이 될 뿐 아니라 그동안 불법을 저지른 정몽구가 처벌되는 것이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이니 대법판결정도는 지켜질 거라 믿었던 박정식의 순하고 착한 어리석음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박정식의 죽음 이후 아산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자책을 합니다. 정식이에게 미안하고 미안하다고 온몸을 비틀어 통곡을 합니다. 늘 웃고 있으나 당연히 힘들었을 그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어깨 한번 두드려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그가 절망하기 전에 함께 더 열심히 싸우지 못해 미안하고, 이제 죽었는데 그의 죽음에 온당한 장례를 위해 최소한 ‘현대자동차가 박정식에게 사과 하라!’는 요구로 파업을 하려다가 수백 명의 관리자들에게 조롱당하며 끌려나온 길바닥에 주저앉아 생각합니다.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았으면 정식이가 죽지 않았을까.’

소나타와 그랜저의 오른쪽 문짝을 다는 정규직 노동자와 왼쪽 문짝을 다는 비정규직노동자는 같은 사람이니 마땅히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비정규직이니까, 그냥 살았어야 하는 겁니다. 감히 노동조합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말고, 정규직보다 적은 임금, 힘든 노동, 부당한 차별, 멸시하는 눈빛, 모두 그저 침묵으로 감당하며 살았어야 하는 겁니다.

2003년 3월 송성훈이 월차 쓰려다 관리자에게 칼로 아킬레스건이 잘리는 사건이 발생했어도 우리는 그냥 꾸역꾸역 라인으로 들어가 한 시간에 63대의 자동차를 만들며, 다음에는 월차 쓰려다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말고 그냥, 살았어야 하는 겁니다.

그냥 그렇게 살걸, 감히 노동조합 만들지 말고, 컨베어 벨트로 움직이는 제조업에서 파견업은 불법이라는 법조항 따위는 알려고도 하지 말고, 법원에게 판결을 묻지도 말고,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순진한 생각은 품지도 말고, 어차피 비정규직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정해져있는 월차를 요구하는 것조차 칼에 찔리는데, 10년을 감히 정규직이 될 꿈을 꾸었으니, 우리 정식이가 죽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우리 정식이를 죽였고, 마침내 올바른 것이 이길 거라는 정의로운 꿈이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 출처 : 백승호 현장기자 ]

서울 서초구 양재동 231번지, 현대자동차 사옥 앞에 오늘도 장송곡이 오열합니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잘 먹고 잘사는 힘으로 박정식을 죽였고, 꿈을 짓밟아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죽이고 있는 정몽구의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상복을 입어 통곡한지 오늘로 사흘입니다.

나와 사과하라는 정몽구는 보이지 않고 어제는, 비 온다고 편 파라솔을 불법이라며 득달같이 달려온 수십 명의 서초경찰과 구청직원들에게 짓밟히고 폭행당하며 빼앗겼습니다.

“집회신고하며 허가받은 파라솔이 도대체 왜 불법이냐. 너희가 허가해 준 것이 왜 불법이냐. 이러려면 집회신고는 뭐 하러 받는 것이냐. 대법판결도 안 지키면서, 불법을 저지르는 정몽구는 3년째 내버려두고, 사람 죽은 상갓집에 이게 무슨 짓이냐. 너희도 사람이냐. 너희도 사람이냐”... 악을 쓰는 목소리가 정몽구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를 맞아 떨며 생각해보니 사람이 죽은 마당에 그깟 파라솔이 뭐라고 안 빼앗기겠다고 이름만 경찰이고 구청직원이지 용역깡패와 다름없는 정몽구의 사병들에게 용을 쓴 것인지, 웃음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죽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죽음조차 현대차는 외면하고 공권력은 조롱합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231번지, 정몽구의 현대차 사옥. 여기는 박정식과 이미 죽어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덤입니다. 이 무덤은 이윤을 위해 탐욕스런 현대차 자본과 정몽구의 눈치를 보는 포악한 공권력의 살아있는 증언입니다. 이 무덤에서 부활하는 박정식을 기어코 보고야 말겠습니다. 월차 쓰려다 죽으나,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다 죽으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 출처 : 백승호 현장기자 ]
  • 덧붙임
  • 권수정 님은 전국금속노조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