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영화

[만민보] 태준식 감독 "세상이 비극으로 만연해 있다"

참된 2012. 11. 15. 02:03

 

ⓒ태준식  태준식 감독이 故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씨를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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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kdh@vop.co.kr     민중의 소리    기사입력 : 2012-10-11 13:16:22    최종업데이트 : 2012-11-14 08:50:20

 

 

 

 

 

태준식 감독

태준식 감독



태준식 감독에게는 ‘딱지’가 있다. 바로 노동전문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딱지’다. 쌍용 자동차 파업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의 전쟁’이나 울산 현대자동차 해고문제를 다룬 ‘안녕? 허대짜수짜님!’, 현대 중기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인간의 시간’처럼 ‘노동’을 다룬 작품이 많이 알려진 탓이다. 하지만 그는 이 ‘딱지’가 “여전히 부담스럽다”고 했다.

태준식 감독은 “창작자에게 딱지가 붙는 것은 안 좋다. 물론 ‘딱지’가 신념체제로 읽힌다는 것은 좋다. 그러나 ‘창작자’라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노동이라는 큰 주제로 녹일 수도 있고, 노동과 관련되지 않은 소재를 통해서도 노동을 녹여서 말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딱지가 붙어있으면 작업하기 부담스러워진다”고 했다.

홍대 앞 샘터분식을 배경으로 지역사회의 희망을 그린 ‘샘터분식’과 같은 작품을 보면 그의 ‘부담’이 이해가 간다. ‘샘터분식’은 노동과 상관없다. 또 ‘저작권’과 관련된 다큐도 있다. 이처럼 그의 필모그래피는 ‘노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확실히 그는 ‘노동전문다큐멘터리’ 감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는 ‘노동’문제가 많이 묻어난다. 그는 ‘노동전문 다큐멘터리 감독’에 거부감을 드러내면서도 “다만 이 사회의 변화를 원한다고 했을 때 변화의 중심은 ‘노동’이라는 생각은 있다”며 “창작의 큰 주제가 될 수 있다. 노동이란 것은 중요한 주제고 죽을 때까지 다뤄야 한다. 그러나 선입견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전문’감독이 “달갑지 않다”면서도 ‘노동’은 중요하다는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태준식 감독

태준식 감독이 故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씨를 촬영하고 있다.

공고, 건대 ‘햇살’, 노동자뉴스제작단...그리고 ‘지금’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시기는 건국대학교 연극동아리 ‘햇살’에서 활동하던 시기, 노동자뉴스제작단, 그리고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다. 모두 중요하고 소중한 시기다. 하지만 이 시기를 존재토록 한 것은 어쩌면 ‘고등학교’때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공고를 나왔다. 입문계 학생과는 다른 베이스가 있었고 생활도 달랐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입문계 애들은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하는데 내 주위를 보면 대부분 노동자들로 영등포 마찌꼬바(작은 공장)들어가서 일하다가 손가락 잘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 것이 기반 됐던 시기다. 내 주변 노동자들에 대한 생각이 고등학교 때 공고를 통해 더 많이 체득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고’를 다녔기 때문에 ‘일반계’학생처럼 소위 ‘학생다운’생활을 할 수 없었지만 반대로 영화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시기였던 것도 사실이다. 할리우드키드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이 시기에 영화를 많이 봤고 감독의 꿈을 키웠다. 이것은 건국대학교 연극 동아리 ‘햇살’ 활동과 ‘노동자뉴스제작단’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는 “대학 졸업 전인 1995년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활동했다. 그때부터 노동자들과 오랫동안 지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과 자주 접하는 시기였지만 어디까지나 ‘창작자’였기 때문에 ‘이념체계’와 ‘이론’이 빠삭하지는 않았다. 물론 ‘노뉴단’에서 저항의 방법들을 배웠고, 저항의 이유들에 대해서 확인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작품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다. 그는 “2003년 노뉴단을 그만두고 한 프로덕션 회사에 다녔다. 실질적으로 노동자 삶이 시작된 것”이라며 “노뉴단에서 노동자를 만나 운동이나 단합 이야기를 들었던 것보다 이 회사에서 1년 동안 노동자 삶을 살면서 오히려 내가 ‘노동자’라는 자각을 더 깊게 가졌다”고 말했다. 이런 자각이 실제 작품 속에서 노동자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사회를 변화하는데 노동이 제일 중요하지만 거대한 정치적인 이유를 가지고 일한 것은 아니다. 나는 정말 이기적이다. 나를 위해서 작업한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을 위한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있는 감독.

그는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했다. 사회적인 ‘대의’나 정치적인 뜻보다는 순전히 자신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자신만을 위해서 작업을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물론 노뉴단에서 철저히 운동권이라고 생각하고 제작했다. 하지만 프로덕션 회사를 다니고 그 이후 작업할 때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약간 한 발 바깥으로 나와 있다. 이 때문에 객관화 되서 창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동자’인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이기심’은 한 발작 떨어져 우리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대중들이 그의 작품을 거친 ‘노동’이야기가 아닌 담담하고 거부감 없이 즐겨볼 수 있게 하는 이유다.

그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했다. 물론 ‘노동’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태준식 감독 ‘그’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아직도 해야 할 이야기, 가슴 속에 생각해놓은 아이템이 열 개 정도 더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진행할 작품에 대해 “세상이 워낙 비극으로 만연해 있다. 다큐작업이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비판의식을 안 가질 순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극적 상황, 슬픈 상황이 기본 정서로 깔려있다. 나는 그것을 벗어나고 싶다”며 “힘든 이야기만 하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어떤 것에 대해 저항했던 사람들이 다시 삶의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어떻게 그 싸움을 잊지 않고 삶을 영유해 가면서 살지 보여줄 것이다”라고 예고했다. 이 이야기를 위해 평택 대추리 싸움과 쌍용 자동차 사람들이 선택됐다.

이어 그는 “이번 대선 때 어느 정권이 들어설지 모르겠다. 그러나 새 정권이 들어서면 또 그간 노력과 싸움이 새까맣게 잊혀서 살 텐데……. 다음 작품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쩌면 자신이 ‘노동자’이고 그의 노동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대중도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단 태준식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노동전문다큐멘터리’감독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으면 어떠한가. 그는 ‘촬영 빵꾸나면 할 일을 못 찾는 창작자’이자 집에 있는 ‘아이’ 이야기에 해맑게 웃어버리는 한 아이의 ‘아빠’, 그리고 대한민국의 ‘노동자’인 것을.


태준식 감독, 故 전태일 동생 전태삼 씨와 다큐멘터리 '어머니'스텝들.

태준식 감독, 故 전태일 동생 전태삼 씨와 다큐멘터리 '어머니'스텝들.



<김세운 기자 ksw@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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