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은 그림

스스로 광부가 돼 광부의삶 그린 화가 2010.05

참된 2011. 1. 22. 12:54

스스로 광부가 돼 광부의삶 그린 화가 2010.05
황재형
1952년 전남 보성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0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수상. 1983년 태백으로 내려가 광부들과 함께 생활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1984년부터 6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 일본 마루키미술관과 오사카시립미술관 등에서 전시회를 했고,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다. 고한성당 교육관 벽화(1994), 태백 칠표목장 벽화(1995), 황지 천주교 성당 벽화(1996) 작업을 했다.
이진숙  미술평론가

<쥘 흙과 뉠 땅〉은 화가 황재형의 1984 년 첫 개인전 제목이었다. 26년이 지난 2010 년, 그는 같은 제목으로 가나아트센터에서 여섯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쥘 흙은 있어도 누울 땅은 없는 ’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주제가 30년의 긴 화업에 일관되게 흐른다.
 
  “이 작품들은 우리 부부가 탄광촌에서 27년간 부대끼며 살아온 삶의 집적물이다. 생각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땀과 시간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허구의 것이 아니라 실제 풍경이고 동네 사람이고,이웃사람들이다. 작품을 서울로 보내던 날 집식구가 많이 울더라.”
 

길고 긴 잠 / A Long- lasting Sleep, 80.3x116cm, Oil on Canvas, 1999~2007


  풍채 좋고, 사람 좋아 보이는 화가 황재형이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제작년도가 1985~2009’로 표기된 것들이 더러 있다. 오랜 세월 그의 화실에서 완성을 기다리던 작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볼거리를 만들었다. 전시 오프닝 당일 이웃 주민 등 450여 명의 인파가 몰려 가나아트 개관 이래 최대 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장사익의 축가가 그의 그림을 배경으로 구성지게 흘러갔다.

 

한 숟가락의 의미 / The Meaning of one Spoon, 130.3x97.3cm, Oil on Canvas, 1984~1998

  1952년 전북 보성에서 태어난 황재형은 촉망받는 작가였다. 〈황지 330〉이라는 작품으로 1980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는데, 광부의 옷을 극사실 기법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그의 그림은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는 민중미술 운동에 동참했던 미술단체 ‘임술년’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1983년 태백으로 내려간다.
 
  “왜곡된 산업화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구로, 가리봉동 같은 외곽 지역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삶을 보았다. 그 공장지대에서도 쫓겨난 사람들이 가는 곳이 바로 탄광촌이었다. 나는 나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좁은 시야로 보면 막장이란, 인간이 절망하는 곳이다. 막장은 태백뿐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
 
고무 씹기 / Chewing Rubber, 72.6x60.7cm, Oil on Canvas, 1997~2008

  그곳에서 그는 화가로서, 광부로서 살았다. 〈우리가 신문에 났어〉 〈한 숟가락의 의미〉 등은 당시 그려진 그림들이다. 〈우리가 신문에 났어〉는 신문에 기사가 실림으로써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소박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 막장 안에서 랜턴을 비추며 식은 밥을 먹는 광부의 모습을 그린 〈한 숟가락의 의미〉는 생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상대를 타자화해 동정의 눈길로 보는게 아니라, 함께 생활하면서 우러나온 담담한 이해가 엿보이는 작품들이다. 남편을 잃은 후 선탄부로 일하는 여인의 서러운 눈빛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탄광촌은 세월과 함께 변했다. 탄광 종사자들은 10분의 1로 줄었고, 탄광이 문을 닫는 대신 카지노와 호텔이 들어서면서 관광 도시로 변모하기 위해 몸부림하고 있다. 황재형의 그림 속에는 이런 변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제 그가 바라보는 것은 자연이며, 자연 속에 녹아들어 있는 오랜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선탄부, 권씨 / A Miner, Mr. Kwon, 72.6x60.7cm, Oil on Canvas, 1996

 
  이제는 폐광된 쓸쓸한 사북 풍경
 
  황재형이 그린 사북 풍경은 알싸하다. 번쩍거리는 21세기 디지털 서울의 느낌과는 다른 촉감과 질감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눈 내린 사북의 풍경은 흑백 자체다. 폐광촌이 된 지 오래지만, 눈이 내리면 어디선가 석탄가루가 묻어 나와 검은 눈이 된다. 사람들은 잊어가는 과거를 자연은 기억해내며 스산한 풍경을 만든다. 그는 연탄재가 쌓여 있는 골목길, 강풍을 피해 납작하게 엎드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을 그린다. 이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세 집 중 두 집은 빈집인 사북의 풍경에서 간간이 느껴지는 온기를 작가는 기억하고 있다. 쓸쓸하고 삭막한 폐광촌의 겨울을 견디는 그림으로 바꾸는 것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다.
 
검은 산 검은 울음 / 162x227.3cm, 캔버스에 석탄과 먹, 1996~2006

  쓸쓸하면서도 깊은 정조가 담긴 풍경화를 그는 붓이 아닌 나이프로 그린다. 나이프는 큼직한 물감 덩어리를 캔버스에 올리면서 버려진 들판 같은 거친 질감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폐광촌은 풍경으로 뿐 아니라 재료로도 그림 속에 들어온다. 탄광이나 광부들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검정색에는 석탄 가루가, 쓸쓸한 농가나 밭을 그리는 노란색에는 태백의 흙이 섞여 들어갔다. 가난한 시절 물감 값을 아끼려고 시도했던 것인데, 이게 화면에 깊은 맛을 더한다.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녹슨 물건이 많이 등장한다.
 
  “녹은 정신적인 상처이자 물리적인 상처를 의미한다. 그것은 정신적인 집적물이다. 한이든 애정이든 미움이든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인 것으로 시대의 상처이자 아픔이다. 그 속에서 자신을 다져나가는 사람들의 미래, 꿈같은 것이 담겨 있기도 하다.”
 
피냇골 이야기 / The Story of Pinaet Valley, 80.2X184.9cm, Mixed Media on Canvas, 1998~2004 Winter

  10여 년간 덧칠이 된 그림은 변화된 시간을 실어 나르고, 그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도 달라졌다.
 
  “산업화 100년 동안 자연과 인간은 공존하기 어려웠다. 극도의 이윤 추구 속에서 자연도 인간도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림은 그런 상처를 말하기도 하고 어루만져주기도 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지역사회에서 나무심기 운동을 하고 광원 자녀들을 모아 ‘동발지기’라는 모임을 꾸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불편한 잠을 자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위안이 되고, 너무 편안하게 자는 사람에게는 경각심을 주는 미술을 하고자 한다”는 그의 결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단수 / Out of Water, 80x162cm, Oil on Canvas, 1993~2000

  “태백은 큰 빛을 의미한다. 《정감록》에 보면 태백산에 가면 사람과 씨앗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좌절과 우울 속에도 희망이 존재할 것이다. ‘산업화 초기에 묵묵히 수고하고 희생해준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 어려운 시절에도 잘 견디어보자’라는 마음이다.”
 
  그는 이제 모두에게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말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2010년 가을쯤 뉴욕 가나에서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