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

김진숙, 온몸으로 시를 쓰는 노동자 / 오 도 엽

참된 2011. 1. 15. 14:12

아래는 오도엽님의 블로그(http://blog.jinbo.net/odol/)에서 옮겨 놓은 것이다

 

 

김진숙, 온몸으로 시를 쓰는 노동자 / 오 도 엽

Jan12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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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업복 팬티

 

공장 탈의실 옷걸이에 낡은 깃발처럼 걸린 누런 팬티는, 주조 공장 성철이 일할 때 갈아입는 작업복 팬티다. 새 팬티 입으나 누런 팬티 입으나 공장에 들어가자마자 쇳가루 흙먼지투성이 될 게 뻔하다고, 자주 빨아도 아무 소용 없다고, 아무렇게나 걸어 둔 성철이 작업복 팬티다. “성철아, 그래도 불알과 자지는 쇳가루 흙먼지 못 들어가게 잘 닫아 둬라. 사용자 잘 만나서 토끼 같은 새끼도 낳아야 하고…….” 아침부터 누런 팬티 하나 쳐다보며, 우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또 웃어도 마음이 아프다.

- 서정홍 시인, 『58년 개띠』, 보리 출판사

 

스물 넷, 나는 용접을 배웠다. ‘꼬마’라 불리던 견습공 시절, 용접불꽃에 내 눈알은 시뻘겋게 화상을 입었다. 잔업을 마치면 공장 형님들을 따라 포장마차에 갔다. ‘쐬주’가 들어가면 내 눈은 붉다 못해 들풀처럼 활활 타올랐다. 눈을 감으면 뜨거운 모래알이 굴러다녔다. 눈을 뜰 수도, 그렇다고 감을 수도 없었다. 엉기적엉기적 담벼락을 더듬거리며 연탄불 꺼진 차가운 자취방을 찾아갔다.

 

그 시절, 온통 ‘빵구투성이’였다. 용접장갑에다 가죽 앞치마와 토시로 온몸을 칭칭 둘렀지만 쇠를 녹이며 튀어나온 용접 불꽃은 내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양말은 말할 것도 없고 팬티에 러닝셔츠까지. 어디 옷뿐이랴! 손등에서 발등까지, 내 온몸을 불꽃으로 태워 빵구를 냈다.

 

“마, 용접 오래 하면 아들 낳기는 그른 기라. 밤에 서지도 않는 대이.”

 

정말 용접 때문이었을까? 아침 8시부터 밤 10까지 잔업, 빨간 날 특근까지, 죽어라 철판과 용을 쓰다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무서웠다.

 

빨랫줄에 널린 속옷과 양말, 시퍼런 작업복……. 불똥 자국을 보면 창자가 시렸다. 용접 불꽃은 어느새 내 위장까지 빵구를 냈다.

 

15년 공장 생활을 그만 두고, 5년 넘게 글을 쓰며 먹고 산다. 이제는 손등에 촘촘히 박혔던 불똥 자국마저 사라졌다. 팬티도 멀쩡하다. 수세미에 주방세제를 풀어 박박 밀어도 지워지지 않던 손가락 마디마디의 기름때도 없다. 그래도 잘도 먹고 산다.

 

한진중공업에서 배를 만들던 용접노동자 김진숙. 그가 한겨울 영도 앞바다 찬바람을 맞으며 크레인에 올랐다. 김주익 열사의 마지막 외침이 고스란히 남은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김주익이 떠난 뒤론 불을 떼지 않은 차가운 방에서 잠을 잔 김진숙. 크레인에 오르기 전날 밤, 보일러를 돌렸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 김진숙의 편지에서’

 

김진숙의 편지가 시인인 나를 부끄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