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사람

별 신경현

참된 2010. 6. 4. 00:51

- 권 영숙 동지를 생각하며

 

신경현

 


하늘의 별이 될 수 없었기에 그녀는,

미싱을 타고 라인을 타던 손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선 웬지 숨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밤이 오는 걸 깜빡이는 전등불을 보고 알 수 있었던

캄캄하고 어둡던 시절의 이야기 속에

그녀, 하루를 목 메인 울음 울었네


수군거리고 속닥이는 말들과 시선들 끝에 붙은

공순이 세 글자를 가만히 써놓고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을

그 밑에 아주 작게 아팠다고 써놓았을

내가 기억 할 수 없고

내가 말 할 수 없었던 그녀의 일기


어떤 날은

퇴근길 시장에서 떡뽁기며 오뎅을 시켜놓고

한참동안 동료들과 수다를 떨었다고 쓰고

어떤 날은

고개 숙인 채 반장에게 욕 얻어먹던

동생 어깨를 어루만졌다고 쓰고

어떤 날은

굽은 등으로 돌아가던 어머니를

배웅하던 북부 정류장

물끄러미 서서 한참 손을 흔들었다고 아프게 썼을 일기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을

짐작조차 어려운 고통과 싸우며 견뎌왔다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기억 속 구사대가 있었고

핏기 없는 손으로 적어 내려가던 대자보가 있었고

해고와 폐업과 블랙리스트가 신나게 춤을 추던

가난하고 누추한 밤들을 서로가 울면서 쓰다듬던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쓸쓸한

3공단 한국 LBI

눈물이 만들어 낸 슬픔과

분노가 만들어 낸 의지가 넘나들며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어깨와 어깨를 걸어

서로가 불꽃처럼 빛나던 시절

부서지고 깨지면서 건너 온 그녀

온몸이 피멍으로 떨리네


패배의 두려움을 들먹여 물러서지 않고

승리의 전리품을 들먹여 물러서지 않던 그녀

모두가 떠난 공장바닥에

뚝뚝 떨어진 땀방울처럼 남은 그녀

작고 작은 것들의 아픔을 더듬어 어루만지는

못나고 볼품없는 손들의 연대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환하게 빛나는 평등한 연대

온몸을 맡긴 채 유영하는 민들레 꽃씨처럼

무수한 바람에 실려 살아오는 생명의 연대

천천히 스며들고 고요히 젖어드는

평온한 어느 햇살 묻어나는 봄의 중심에

그녀, 별이 되었네

못 다 꾼 꿈을 읊조리며 눈을 감네

 

 


** 고 권영숙 동지 대충의 약력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여고 졸업

76년 구미 코오롱에 입사하면서 구미 도시 산업선교회 활동을 시작하여 수차례 구미 지역 공장에서 해고에 항의해 싸움

80년 부터 대구에서 3공단 및 이현공단 등에서 현장 활동함

86년 3공단 한국 LBI에서 노조 설림 후 사무국장으로 활동함

한국 LBI는 전노협 대구노련의 핵심 사업장으로서 위원장인 유영용씨가 대구노련 초대 의장이 됨

이후 한국 LBI가 노조 탄압을 해오면서 해고 및 폐업에 맞서 투쟁함

90년 초에 결혼을 하고 90년대 대구 기독교 노동자의 집에서 노동상담 실장으로 일함

2000년 경에 대구 청소 용역 노조 설립을 주도하면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을 시작함

대구 청소 용역 노조 및 대구 여성 노조에서 상근 활동을 함

2004년 위암 발병

2007년 위암 극복

2010년 암 재발

 

2010년 5월 23일, 사망함

 

위는 전국현장노동자글쓰기모임 해방글터(http://cafe.naver.com/ptpen/1039)에서 옮겨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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