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 _ 대중음악 의견가] 컬처뉴스
길동무가 된 음악
[공연리뷰] 범능스님의 노래이야기 <황금을 우박같이 쏟아 부을지라도>
2007-06-18 오후 5:16:50
6월 16일 토요일 조계사의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범능스님의 노래이야기 <황금을 우박같이 쏟아 부을지라도>에서도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노래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수행자의 일상이며, 자기 고백이었고, 또한 대중을 향한 설법이며, 이타행을 실천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노래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의 노래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은 그가 불가의 생활을 하며 음악을 시작했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세현, 지금은 범능이라 하지만 오래전 그는 정세현이라 불렸습니다. 정세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아마 <광주출전가>는 아시겠지요. 빛고을 광주에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언제나 불려졌던 노래, 우리의 심장을 불끈불끈 달아오르게 했던 그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그였습니다. 전남대학교 국악과를 다녔고 5․18 노래를 만들었으며 노래패 친구를 결성한 이가 바로 그였습니다. 당시 민중가요 노래운동에서 드물게 국악 어법의 노래를 만들었던 그는 남도의 한과 서정을 처연하고 절절하게 담아내며 광주전남지역 노래운동의 중심이 되었을 뿐 아니라 노래운동의 품을 넓히는 중요한 창작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93년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고단한 세상사에 지친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보다 더 큰 깨우침을 찾고자 한 탓이었을까요? 그가 노래운동을 접고, 음악의 업을 접고 불가에 귀의한 까닭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재능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촉망받는 젊은 창작자가 음악으로 말하기를 멈추고 종교에 귀의한 것은 그의 음악을 아끼던 이들에게는 분명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스님이며 또한 몇 장의 앨범을 내놓는 음악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정갈한 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이전의 노래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범능스님은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편안하게 만드는 음악이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라 말했다. 그리고는 곡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씩 들려주며 공연을 이어갔다. |
그의 음악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국악가요이며 포크송이었지만 세상일에 슬퍼하고 분노하던 목소리는 잦아들어 고요하고 깊어졌습니다. 흡사 법당의 목탁소리 같기도 하고, 법당 뒤뜰의 대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 같기도 한 그의 노래는 감정을 터뜨리기보다는 감정을 가만히 지켜보는 노래로 바뀌었습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진솔한 마음의 울림을 담은 노래들이 더 많았는데 그 역시 꽃이 피면 누군가 그립고, 비 내리면 적막하지만 그는 이제 그런 감정까지도 무심히 지켜보며 흘러가도록 두는 듯 했습니다. 아마도 오랜 수련의 결과였겠지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하였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하였으니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경계를 나누지 않으며 자유롭게 가고자 할 뿐이겠지요.
산가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 역시 달라졌을 것이고, 그가 달라졌으니 그의 노래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16일 공연은 그동안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반가운 공연이었습니다. 산 아래 있을때도 여러 장의 음반을 낸 그는 어느새 5장의 노래 음반과 3장의 명상음반을 낸 중견 스님 가수가 되었음에도 서울에서 정식 공연을 연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아담한 공연장의 전면에는 그의 웃는 얼굴이 걸게로 걸렸고 그는 기타와 베이스, 신디사이저, 피리, 대금, 해금, 아쟁, 가야금, 타악이라는 풍성한 편성으로 공연을 이끌어 갔습니다. 예의 스님이 된 뒤에 만든 노래 음반들을 중심으로 15곡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나이 지긋한 관객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노래를 듣더군요. 그는 예의 남도사투리로 곡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씩 들려주면서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도종환이나 김용택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대부분의 노래들은 앨범과는 편곡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여전히 평화롭고 아늑한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격렬함이 없는 노래들은 그의 낭랑하고 편안한 목소리와 단아한 국악 반주에 실려 너울너울 흘러갔습니다. 사이사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표정도 편안하고 무척이나 밝아보였습니다. 그는 밖에 있을 때는 힘주는 노래, 감정을 쿡쿡 쑤시는 노래들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왜 소리를 높여야하는지를 반문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편안하게 만드는 음악이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라 말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노랫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노래는 자연의 흐름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속내를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조금 심심한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세상의 모든 음악들이 다 소리를 지르며 부글부글 끓고 있기에 그 하나쯤은 느리고 고요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느림과 쉼에 대해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이들에게 그의 노래가 보시가 되어 찬불가를 진일보하게 하고, 장사익과 함께 국악가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참 의미있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이날 가끔 잘 들리지 않았던 음향과 미숙했던 조명이 너무 단출했던 무대와 함께 조금만 더 다듬어지고, 공연의 흐름도 좀 더 명확해지고 짧아진다면 굳이 불교신도가 아니어도 누구나 볼만한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그가 왜 머리를 깎았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지를 묻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질문일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택한 길을 기쁘게 가고 있고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으며 그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으니 20여 년전과 다름없이 깨달음을 나누고 중생을 구원하려 한다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어렵잖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정겨운 이웃으로 충분하지요. 불교에서는 함께 깨달음을 향해 가는 이를 도반(道伴)이라 하던가요. 각박한 세상, 많은 이들에게는 그런 길동무가 필요합니다. 그의 음악이 청량한 풍경소리처럼 오래 오래 함께 해주기를 바랍니다.
서정민갑 _ 대중음악 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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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안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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