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 점 ] '민주노동당'결성과 노동자 정치운동의 전망
뉴스센터 nuovo@jinbo.net / 1999년09월01일 참세상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 결성과 노동자 정치운동의 전망
지난 8월월 29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진보정당창당추진위 주최로 창당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6천2백여명의 발기인에 1천6백여명이 참가한 이날 대회는, 논
란 끝에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결정하고 권영길, 양연수, 이갑용씨를 공동
대표로 선임하였다. 그리고 대회는 당면과제로 △사회복지예산 20%쟁취 및 노
동시간단축 △재벌해제투쟁 전면화 △기간산업 해외매각 반대투쟁 △군축 및
군비삭감투쟁 △농가부채탕감 △국가보안법철폐 등을 당면과제로 삼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이번 (가칭)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아래 창준위)의 결성은 한편으로 87년 대
투쟁을 계기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논의가 모색된 이후 진행된 흐름과
차별성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민주노총과 전국빈민연합 등 기층 대중조직의 조
직적 결의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만큼, 과거 '정파' 중심의 정치조직 건설방식
과는 많은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점'은, 지난 96∼97년 총파업과
연이어 계속되는 총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정치적 투쟁과 대응의 조직
화 필요성이 대중운동으로부터 직접적인 자기요구로 자리잡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97년 대선부터 민주노총 차원의 정치세력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당시
권영길 위원장의 대선후보로의 추대와 좌우를 망라한 선대본으로서의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을 매개로 한 대선활동 등은 이러한 주체적 요구를 실
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편으로 인식되면서, 올 들어 진보정당 창당논의의 흐
름으로 구체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한편 97년 대선에서 국민후보 방식으로 진행된 '독자후보'
운동을 계기로 지난 10여년간 노동자·민중운동 내 횡횡하였던 '민주대연합'의
우경화된 노선의 이론·실천·정치적 파산과 함께,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전망
을 내다볼 수 있는 계기였다. 하지만 당시 '종이정당', '일어나라코리아'를 둘
러싼 논쟁, 대선후 선본의 해소와 정치조직으로서의 국민승리21로 전환과 진보
정당 건설을 위한 일련의 논의과정 등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업임을 확인시켰지만, 동시에 그 운동의 성격과 방향
을 둘러싼 차이와 대립을 확대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편 97년 대선 이후 전국노련과 전국의 많은 단체와 일선의 활동가들은 국
민승리21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진보정당 건설 흐름에 많은 우려감과 비판적
인 자세로 임해 왔다. 국민승리21로 모여졌던 대다수 조직적·개인적 주체들이
그동안 현실 운동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실천상의 제 문제는 그 동안 일선에서
노동해방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많은 운동가들에게 능동적 참여를 어렵
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대중투쟁과 전선운동에 대한 개입의 양
식이 갖는 자기한계, 부르주아 '선거'를 매개로 한 정치활동양식의 문제, 정치
조직의 회원을 확보하는 방식 등은 '노동자·민중정치'의 기본 정신을 왜곡시
키는 문제까지 수반하고 있다. 정치조직, 특히 정당조직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의지하는 세력기반에 의지하고 대표해서, 이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의 획득을
주요한 정치적 목표로 설정한다. 노동자·민중의 정당 건설에 있어 노동자 민
중의 주체성의 원칙과 체제대안적 사회적 목표의 설정은 노동자 민중정치의 핵
심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강령(시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창준위의 정치노선은 노동자·민
중주체성에 입각해 있지만 현행 부르주아 정치·사회지배 질서를 능동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사회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 민중 중심의 사회경
제체제'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계급착취와 사회적 제 모순을 양산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의 일
부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유럽 등지에서 제기되었던 수정자본주의에 입
각한 '구조개혁론'과의 차이점을 사실상 찾기 힘들게 한다. 물론 권영길 대표
는 '우리 당은 국가권력을 쟁취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정당'임을 강조하고 있
지만, '국가권력의 쟁취'의 문제가 곧 체제대안의 올바름을 보증하는 것은 아
니다. 이와 같은 목표를 설정했던 대다수 사민주의와 유로콤 세력들이 이미 이
론적·실천적으로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할 때, 그리고 진보
정당 창당논의 과정에 깊숙히 개입했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정치노선을
'사민주의'와 선거를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창준위의 앞날은
이념적·실천적으로 현실의 계급투쟁에 능동적으로 개입·주도할 수 있는 정치
적 기관으로 자리잡기에는 많은 한계를 갖게 될 것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채택을 계기로 창준위 내부에 여러 각도로 논
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이번 결정과정은 민주노총에서 참여한 주체들의 입
장이 주로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동자 중심성'에 입각한 당명채택
이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로 판단할 수 있지만, 우
리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판단이다. 현재 많은 '선거주의자들'은 2천년 총선
에서 이러한 당명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
며, '계급연합'의 취지에 맞지 않는 당명채택에 대한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당명논의는 한편에서 현재 창준위의 성격을 가늠하는 가치기준점을 제공한다.
현재 창준위 내에서는 선거중심의 정치운동의 경향(사민주의와 국민정당론),
조합주의(노동자주의), 대중투쟁과 긴밀히 결합된 전투적 진보정당의 경향 등
이 서로 착종된 채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당명논쟁을 계기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러한 여러 경향의 착종과 충돌이 결국은 진보정당운동이 갖
는 '정체성'과 정치활동을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추진중인 진보정당운동이 '새로운 실험'임을 부정하지는 않는
다. 대중운동의 결합에 의한 진보정당운동이 과거 '정파중심의 정치조직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적극 판단할 수도 있다. 하
지만 현재 우리 노동자·민중에게 필요한 정치조직의 건설을 판담함에 있어 지
난 10여년간의 진보정당 운동의 문제를 단순히 '지식인중심의 정파운동'으로
축소해서 이해하는 방식은, 현재의 진보정당을 둘러싸고 상반된 이해를 갖는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지적은 결과적이고 현상적인
측면의 지적일 뿐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파'때문이 아니라, 이를 매개로
진행된 '노선'과 '현실활동의 성격'에 있었다. 87년 이후 민중의당->민중당,
한노당 등으로 이어지는 합법정당운동 과정에서 이를 주도했던 세력들에게 노
정된 문제는 기층대중운동과 전선운동에 능동적 개입력과 주도성, 정치지도성
을 갖지 못하고, 부르주아 선거를 중심으로 자신의 정치적 전망을 만드는 실천
으로 경도되면서, 계급대중으로부터 '자립화'되는 양상을 밟아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주도했던 많은 세력들은 결국 대중투쟁에 대한 일상적·정치적
결합력을 확대하지 못하고, 전선으로부터 이탈하여 제도정치권에 편입되거나
분해되는 과정을 되풀이해 오면서 일선의 선진활동가들의 불신을 재촉하여 왔
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패턴은 현재 창준위 내에서도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약점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운동기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대중성'의 문제가 아니라, 깨지더라도 계급적 대의와 대중운동에 대한 결합력
을 지속시키고 이를 정치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정치적 기관의 구축을 중심으
로 고민이 집중되어야 한다. 계급과 민중운동에 헌신할 수 있는 선진활동가들
의 정치적 결집과 통일성 획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중성 획득'의 일반성
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현실의 대중은 지난 대선의 경우처럼 자기조직의 대표
에 투표하지 않고 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보수정치집단에 대부분 표를 던졌
다.
이와 같은 이유는 현실의 대중이 사회적 지배세력에 맞서 투쟁하지만, 동시
에 지배세력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이중적 '처세술' 때문이다. 진보정당 건설의
흐름 속에서 현재 민주노총 등이 취하고 있는 '대중조직의 형식을 정치조직의
자기근거로 결합시키는 방식'은 선거에서 '표 획득'에 부분적인 유용성을 가져
다 줄 수 있지만, 노동자 정치운동의 계급적 기반을 본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될 수 없다. 대중조직이 특정한 정치방침을 갖고 이에 입각한 조직사업을 전개
할 수는 있지만, 이것으로 계급적 정치조직이 힘있게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현재 정치조직 건설의 과정에 '노동자정치세력화 = 진보정당 = 대
중정당'으로 사고하는 협소한 도식에 반대한다.
현재 다양한 경향이 결합하고 있는 창준위는 아마 내년 총선을 계기로 분해
될 공산이 크다. 현재 창준위가 현실 운동에서 유의미하게 작용하고자 한다면,
사민주의·개량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계획을 내부로부터,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노동자·민중투쟁의 계기로부터 확보해야 할 것이
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뒤늦더라도 노동자 정치의 새판을 짜야 한다. 사민
주의, 개량주의, 선거주의, 조합주의에 착종된 노동자 정치조직은 노동해방을
열어갈 수 있는 노동자·민중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창준위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에게 늦더라도 힘
있는 계급적 노동자·민중의 정치조직을 만들기 위해 내부의 개량적 선거주의
세력과 정치적으로 단절할 것을 촉구한다.
노동해방의 새로운 희망은 현장과 지역, 전선운동에서 헌신하는 계급적 선진
노동자와 민중운동가를 중심으로 새롭게 구축되어야 하며, 이러한 흐름을 능동
적으로 열어가기 위한 방안을 올 하반기 그리고 내년 총선을 경유하면서 현실
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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