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제목이 깁니다.
'홈플러스테스코 노동조합 월드컵지부 설립 2주년 맞이 문화제'
홈플러스 노조 노래패 '비상'은 이날 아주아주 오랜만에 모여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체 얼마만인지, 이렇게 '노래'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마도 4-5개월은 족히 된 듯 합니다.
운좋게 휴가를 내서, 오후 네시에 홈플러스가 있는 월드컵경기장으로 갔습니다.
며칠 밤샘한 뒤라서 몸은 흐느적흐느적하고 머리는 띵하기만 합니다.
너무 오랜만이기도 하고, 나뿐만 아니라 언니들도 퍽 지쳐 보여서
노래연습을 어찌 시작하나,,,,덜컥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시원한 하드 하나씩 먹고는 정신이 좀 들자, 슬슬 언니들을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들! 나 오늘, 은평 당협에서 노회찬 대표님 강연회 있는 날인데, 이리로 온 거예요.
제가 당협 운영위원인데, 당협 행사 안 챙기고 이리로 온 거라고요. 그러니까, 언니들! 오늘 노래공연 진짜 잘 해야 돼요. 알았죠? 얼른 노래연습 시작해요."
억지로 지어낸 협박(?)은 아닙니다. 같이 행사 준비하지 못해서, 정말로 동네 당원들한테 미안한 마음 가득 안고 나온 자리였으니까요. 그러니까, 약간 지쳐 떨어져 있던 언니 하나가 퍼뜩 대답합니다.
"안 되지! 혜원이 없으면 우리 노래연습 어떻게 하라고. 반주해줄 사람도 없는데. 알았어, 얼른 연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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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어린 협박이 힘을 발휘했나 봅니다....우리는 곧바로 노래연습을 시작했습니다.
홈플러스 매장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열심히 신나게 연습을 했습니다.
언니들한테 무슨 노래 하고 싶냐고 물으니까, 하나같이 '노래만큼 좋은 세상'을 하잡니다.
꽃다지의 노래만큼 좋은 세상 이곡을 듣습니다.(출처 피엘송닷컴 http://plsong.com/home.php)
이 노래는 음을 많이 낮춰 부르는 거라서 반주엠알을 구할 수 없었거든요. 어쩔 수 없이 기타 반주를 해야 하는데 기타 반주도 미처 다 외우지 못했고, 기타 반주까지 하기엔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거든요.
그래도 어쩝니까. 언니들이 하고 싶다는데.
다음 노래는 지난해 이랜드 마지막 문화제 때 마지막 곡으로 불렀던 '희망은 있다'에요.
윤미진의 희망은 있다 이곡을 듣습니다(출처 피엘송닷컴 http://plsong.com/home.php)
이 노래는 반주가 있어서 집에서 가져간 스피커에다가 엠피쓰리를 연결해서 연습을 했어요.
오후 네시 넘어서 만나갔고는....두시간도 채 연습하지 못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언니들이 노랫말도 금방 기억해내고, 음도 곧잘 따라하는 거예요.
그리고 파업 투쟁할 때 그랬던 것처럼, 노래하면서 즐거워 하시네요.
비상매니저로서, 그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었답니다. 좀 틀리면 어때요. 못하면 어때요.
하면서 즐겁고, 하면서 문화패로서 갖는 의식까지 새롭게 깨우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거죠.
그래도, 공연하기 전에 지독하게 떨린 우리들은....막걸리 한두잔씩 마셨답니다.
얼굴은 좀 발그스레해졌지만, 술 기운에 용기가 생겨서는...저도 언니들도 큰 실수 없이 노래 공연을 치러냈어요. 사람들이 칭찬도 많이 해주었어요. 파업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잘 불렀다고...믿거나 말거나지만...저는 그냥 '믿는'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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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 시작할 즈음,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님이 홀홀단신으로 오셨습니다.
심상정 전 대표님이 먼저 인사말을 해주셨어요.
정신이 없어서..다른 말씀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이말 만큼은 생각이 잘 나요.
"오늘 참 부르는 곳이 많았어요. 게다가 어느 집회에서는 장기하도 온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전 장기하보다는 '비상' 공연 봐야 한다고, 여기에 왔습니다."
그저 인사말씀일지라도, 듣는 비상매니저는 참 기분 좋았습니다. ^^
다음에는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님이 오셨어요.
저녁에 은평당협이 준비한 강연회에서 힘들게 강연 마치고는
또 한 걸음에 이곳으로 와주셨습니다. 강연 준비 같이 못하고, 강연도 듣지 못해서 무척 죄송스러웠는데.... 이렇게 월드컵 문화제에서 얼굴 뵈니,,,그저 반갑기만 했습니다...
고맙습니다.......노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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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는 무려 세 시간이나 진행됐습니다...그만큼 공연 내용도 참 많았습니다.
사진 맨 위부터 홍대학생들 노래와 춤 공연, 이날 음향 세팅과 진행까지 모조리 맡아주신 김성만씨..
은평 촛불이 나은 스타!!! 섹스폰 연주가 일품인 인생악사님.
어느새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어버린, 노동가수의 길에 막 들어선 이수진씨..
길에서 가야금 병창(?)을 듣는 색다른 기회를 만들어 준 정민아 밴드..까지.
월드컵의 밤을 따뜻하고 옹골차게 수놓아주었습니다..세시간이 절대 길게 느껴지지 않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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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노동자들은 문화제를 할 때면 꼭 저렇게 음식을 준비합니다.
부추전과 막걸리와 김치와 두부....배고픈 사람들, 술고픈 사람들 두루 아우를 수 있는
먹을거리로 문화제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여러 공연들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언니들 얼굴을 보니...제가 다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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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홈플러스 노동자들 자체 공연이 여러 개 있었어요.
'비상' 공연에 이어 장구를 들고 나온 정종숙 조합원 공연이 있었답니다.
"이건 순전히 취미생활이에요, 취미. 난 프로가 아니니까, 그냥 사람들 즐겁게 해주는 거..
그게 목적이랍니다........그런 마음으로 나왔어요.."
그렇게 사람들 웃음 한 가득 이끌어내고는 장구랑 노래랑 멋들어지고 구성지게 치고 부르고 하셨답니다...옷도 직접 준비해서 가져오셨죠.
홈플러스 노조 몸짓패도, 문화제 마지막을 아주 힘차고 멋지게 장식해 주었어요...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몸이 들썩 거려지는...그런 공연...
이들도 참 오랜만에 공연해 보는 걸 테지요....비상처럼..
오랜만에 몸짓 연습한 거 까먹을까 아깝노라면서...
"어디든 저희가 필요하면 불러주세요...단 일주일 안에 부르셔야 합니다.."하는 말도
제가 다 기분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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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얼굴.....이랜드일반노조 전 위원장 김경욱님...그리고 이랜드일반노조 현 사무국장 홍윤경 언니..
조용히 자리에 있으려던 전 위원장님, 조합원들이 가만 두지를 않네요.
앞으로 나와서,,,,한 말씀....해주셨어요...
언니들은,,김경욱 전 위원장님 나오니까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어느 언니는 저더러 김경욱 위원장님 사진좀 찍은 거 보내달라고 그러질 않나..
근처에 앉은 언니들한테 슬쩍 물었죠..."와,,,김경욱 위원장님 언니들한테 인기 디게 많은가봐요?" 그랬더니....차분한 대답이 돌아오네요...
"그럼,,,자기를 다 던졌던 사람이잖아....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환하게 웃고 있는 홍윤경 언니는..지난번에 '언니'로 부르기로 한 덕에..
뒤풀이 할 때 열심히 '언니'라고 제대로 불러보았네요...
'언니'라고 부르기 어색하면 어쩌나....하는 미리 했던 걱정은...기우였답니다!!! *^^*
비상 공연 감동적이었다고 따로 문자까지 보내주시는 센쑤~ 덕에....제 기분도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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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케이크 커팅식이 있었어요.....노회찬 대표님, 심상정 전 대표님이 주요하게 커팅식에 참석해 주셨어요..어찌보면 소박한 자리일 수도 있는 문화제에서,,끝까지 자리 함께 해 주시고,,언니들한테 잔뜩 힘 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함께 해 주신 마음 덕분에...진보신당 당원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고 또 뿌듯했어요....
케익 커팅식을 하고는 다 같이 기념사진도 찍고, 다 같이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도 불렀어요...맨 아래 사진에 코끝이 찡한 언니들 보자니...글쓰는 지금 제 마음도 찡해지네요....
코끝이 빨개진 언니들 마음,,,조금은 알 수 있어요..문화제 자리에 함께 해 주신 그 많은 사람들 덕분에...
얼마나 많은 힘을 얻었는지, 그리고 고마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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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노조 노래패 '비상' 언니들이에요....
이 언니들이 어떤 언니들인 줄 아세요?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에요.)
몇달 전만해도 '비상' 못하겠다고,,,,그만하자고,,,,저한테 부탁하던 언니들이에요..
복귀해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겁다고,,,
거기다 파업할 땐 몰랐던 일상 생활에서 해야 하는 노동조합 활동이라는 거
그것 지켜가는 것만도 너무 힘들기만 하다고.....
그 때 비상 노래 선생님인 명인 언니랑,,,,간신히 간신히 언니들을 설득했어요..
제발 비상 없애자는 말만 하지 말아 달라고..노래연습 하자고 안할 테니까,,,기다릴 테니까...몇달만 쉬어보자고...그 이야기 나눌 때 제가 맘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몰라요....
언니들은 힘들다고 하죠,,,,그게 왜 힘든지 정말 잘 알겠죠.... 저한테 너무 미안하다고,,,그면서도 제 타박도 빼놓지 않아요..
"헤원이 너 때문이야...니가 하자고 그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힘든 거 안했을 거잖아..
으이구 그 때 왜 니 말 들어갔곤,,,맘 고생인지 몰라...."
그 땐 제가 좀 억울해갔곤,,,따졌죠....
"언니들,,,제가 강요한 적은 없잖아요...그냥 언니들이 노래하는 거 좋아하는 거 보이니깐..해보자고 말한 것뿐이고, 언니들이 스스로 받아들인 거잖아요...그리고 잘 생각해 봐요....언니들 분명히 파업하면서 노래할 때 좋아했잖아요..기쁘게 노래했잖아요...저 언니들 노래하면서 행복해했던 얼굴 다 기억해요...그것까지 부정하면 안 돼요, 정말..그럼 나 진짜 속상해요.. 으이구~ 아무래도 언니들이랑 노래방을 간게 잘못인가 봐요..그 때 왜 그렇게 노래도 잘하고, 잘 놀고 그런 거예요..노래방 몇번 같이 간 게 죄라니까요!!!"
아직도 너무 생생한,,,민중의 집에 이어서 호프집에서 벌어진 이야기 풍경들.....
잊을 수 없어요...벌써 서너달이 훌쩍 지난 이야기건만.....
그런데....그 언니들이....월드컵 문화제 때 비상 노래해야 한다고
알아서 결정하고, 연습 시간까지 알아서 정한 거예요...
그 연락을 받고...제가 얼마나 얼마나 행복했을지,,,,이건 비상 언니들도 잘 모를 거에요...
그렇게 우리는 몇달만에 만난 거고요...짧은 노래연습시간이었지만...
지난 시간들이 그저 헛된 것만은 아니어서 노래 공연 실수 없이, 또는 사람들 말 그대로 믿자면 어느 때보다 잘 된 공연을 치러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언니들 눈빛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소박하게 조합원 중심으로 치르려 했던 문화제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으니까요...
언니들이 정말 감동받았어요..진심으로......
그래서...제가 문화제 끝날 즈음....처음으로 언니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전에는,,,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
"언니들!!! 앞으로 노동조합 활동 잘 하실 거죠? 꼭 잘 하셔야 돼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언니들을 기억하고, 또 지지하고 응원하고 또 지켜보고 있잖아요....그러니까,,,노동조합 잘 해서...사람들한테 힘도 주고 본보기도 보여 주셔야 해요. 꼭 그렇게 하셔야 돼요.."
버릇없는 철부지가 던진 이 말에...언니들은 수줍게 대답해 줘요...
"그래,,,그래야지...우리 잘 할 거야....."
내친김에....한 마디 더 해버렸어요...
"언니들,,,우리 이제 연대해요...노래로 연대하자고요..
명지대 문화제에서도 얼마나 언니들이랑 얼마나 노래하고 싶었는지 몰라요.."
역시 '노래' 이야기만 나오면...대답이 시원치 않아요...
그래도,,,,달라진 건 분명해요....전 같으면, "안 돼! 우리가 실력도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한다고!!! 우리 조합원들 앞이니까 하는 거지!!" 그랬을 텐데 이번엔 안 그랬거든요.
다들 고개만 떨구어요...쑥스런 얼굴로... 전 그걸로 족해요....
비상 언니들한테...다시 노래하자고,,,말할 빌미를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번 문화제는 정말정말 저한테 소중해요.....지독하게 소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