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민주화운동] 62. 노동과 문학
경향신문 2004-07-04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황석영의 대표적인 노동소설 ‘객지’(1971)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간척지 공사장까지 흘러들어간 떠돌이 노동자들의 각성과 분노를 함축하는 매듭이었다. 원래 마무리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쟁의가 실패한 뒤 주인공 동혁이 다이너마이트를 입에 물고서 장렬하게 폭사해요. 산을 내려가던 노동자들이 뒤돌아보는 장면으로 끝나죠.” 그런데 발표를 앞두고 황석영은 “너무 세니까 뒷부분을
자릅시다”라며 몇 줄을 잘라낸다. 다분히 검열을 의식한 결정이었다.(황석영 회갑기념 문집 ‘황석영 문학의 세계’, 문학평론가 최원식과의 대담 중에서, 2003)
사실 당대 한국 사회는 노동자들에게 ‘손님의 땅’(객지)이었다.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1970)에서 YH무역 여공 김경숙의 죽음(1979)까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는 사회는 내일은커녕 아득히 먼 미래의 일이었다. 80년대 역시 그 내일이 아니었다. 수출입국의 신화를 이룩하는 데 누구보다도 앞장선 노동자들의 처지는 여전했다.
“벌써 닷새째 출근을 못했어요. 지난주 금요일 오후 온몸에 식은 땀이 흐르며 기운이 빠져 더이상 일을 계속할 수가 없더군요. 옆에서 일하는 동료가 ‘언니 많이 아픈가 봐. 조퇴해. 내가 얘기할게’ 고개를 저었지만, 그 애가 과장에게 사정을 얘기하는 소리에 이어 ‘안돼. 지금 얼마나 바쁜지 알기나 해?’ 한마디로 거절하는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아프면 공연히 서러운 것인데 야속함에 눈물이 다 흐르는 것을 참으며 ‘도대체 이렇게 일시켜 얼마나 잘되나 보자. 안 간다’ 하고 이를 악물며 퇴근 시간까지 버텼어요.”(장남수, ‘이럴 때면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5호, 1985)
그 무렵, 노동자들 앞에 한 유명 강사가 ‘사랑받는 아내교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특별 강연을 하러 왔다. 그야말로 사랑받는 ‘비법’들을 얘기한 후, 그래도 못 미더운지 친절한 ‘부탁’을 보태면서 강연을 끝마쳤다. “제발 청바지 입지 마세요. 공순이 티나고 교양이 없어 보이니까요. 유명 백화점에 가면 옷 한 벌에 5만~6만원밖에 안 해요.”
하지만 노동자들은 현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작지 않은 변화였다. 당시 유행하던 헤겔 철학에 기대면, 노예가 스스로 노예임을 자각하는 순간 이를 악물고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분발하기 때문이다. 그 강사의 ‘부탁’에 대해 여성 노동자 송효순은 “백화점 선전을 나왔는지 강의를 하러 나왔는지 기분이 나쁘다. 월급이 한 달에 5만원인데 옷만 사 입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인지 우리들의 생활을 알 리 없는 지식인들은 편리한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돈만 받아가면 그만이라는 식”(송효순, ‘서울로 가는 길’)이라며 투덜거린다.
그 투덜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광주항쟁 이후 공장으로 들어간 ‘또다른’ 지식인들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자, 공장으로! 실천적인 학생운동가들은 졸업을 앞두고 고민에 빠지는데, 선택은 결국 감옥 아니면 공장이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학평론가 김윤태·유시주 등은 88년 구로노동자문학회를 창립했다. 실천문학사는 잡지 ‘노동문학’을 발간하면서 노동 현장의 글쓰기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고, 구로노동자문학회의 창립을 후원했다. 시인 오철수는 이규배·김주대·신동원·조호상 등과 더불어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집단 창작에 앞장섰다. 효성물산 여성 노동자들을 가르치던 신예 평론가 이재현은 동료 작가들을 “공장이야말로 당신들의 원고지가 되어야 한다”고 꾀었다. 말하자면 중국 혁명기에 유행하던 ‘하방(下放)’을 하라는 셈이었다.
‘여대생 작가’라는 이름으로 주목을 받던 소설가 김인숙도 그런 ‘꾐’에 빠져 보장된 미래를 팽개쳤다. “베스트셀러 ‘핏줄’의 수만 독자들에게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 어떻게든 올바른 갚음을 해야 했고, 나와 같이 왜곡된 세계를 살아갈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세계란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했다.”(김인숙의 설문 응답, ‘소설창작의 길잡이’, 1989)
그녀는 부평의 콜트악기 파업 농성에 동참하는가 하면, 낚싯대 제조회사에 위장 취업하기도 했다. ‘하나 되는 날’ ‘함께 걷는 길’ ‘성조기 앞에 다시 서다’ 등 제목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지적 허영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이재현은 87년 김인숙·정도상·백진기·김재용·김남일 등과 함께 서울 경기대 근처에 ‘하나방’이라는 사무실을 개설, 지식인 작가들의 조직적인 하방을 주도했다. 그런 식으로 현장에 들어간 문학도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정체를 철저히 위장했기 때문에 훗날 얼굴을 드러냈을 때 오히려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뭐? 네가 바로 그 유명한…? 세상에, 난 감쪽같이 속았네.”
‘기출’(기본계급 출신)로 알려졌던 많은 노동문학가들이 실은 ‘학출’(학생운동 출신)이었던 것이다. ‘쇳물처럼’의 정화진은 서강대, ‘파업’의 안재성은 강원대를 다녔다. 필명을 쓴 경우도 적지 않아 ‘동지와 함께’를 쓴 한백은 소설가 정혜주였고, ‘함께 가자 우리’를 쓴 차주옥은 훗날 한겨레문학상으로 등단하는 김연이었다. 소설가 이인휘의 경우 구로동 현장에서 ‘신새벽’이라는 노동 잡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소설가 정도상이 찾아왔다. 습작품을 한번 보겠다고 가져가서는 ‘녹두꽃’에 전격 공개해 버린 것이다. 그때 필명은 박해운. ‘우리 억센 주먹’이라는 중편이었다.
실천문학은 88년 봄호에 신인 작가 김하경·방현석을 선보였는데, 그들의 등장은 지식인 노동문학이 비로소 작품으로서도 당당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다니던 방현석은 총학생회장이었다.
그렇지만 총학생회는 지하 조직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그는 인천 지역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그 경험을 ‘내딛는 첫발은’이라는 소설로 형상화해 냈는데, 결말이 준 충격은 황석영의 ‘객지’에 결코 못지않은 것이었다.
“‘야이, 씨팔새끼들아. 기계 못 꺼!’ 정식이 던진 스패너가 공중을 날았다. 유리창을 박살내고 밖으로 떨어졌다. 정식의 옆 6호기가 꺼졌다. 그 뒤 4호기가 꺼졌다. 그리고 9호기가, 8호기가 꺼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개처럼 살 거야, 언제까지.’ 정식은 금형 받침목을 들고 내달렸다. 이주임과 순옥을 잡았던 구사대가 도망쳤다. 밖의 정형은 러닝셔츠까지 갈갈이 찢긴 채 얻어맞고 있었다. 15호기, 16호기가 꺼졌다. 11호기, 21호기, 2호기, 12호기, 13호기…가 차례로 꺼졌다. 스패너가 유리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기계 소리 대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잇달았다. ‘나가자.’ 누군가 외쳤다. 나가자. 가자. 나가자. 한순간이었다.”
그 ‘한순간’은 이제 우리 역사에서 노동자들이 더는 용납할 수 없는 ‘영원한 시간’이어야 했다. 노동문학 역시 전혀 새로운 ‘한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닭장집 월세 3만원, 시다 월급은 6만원”-
“하루 9~10시간 일하는 미싱사 월급이 잔업·특근 다해서 9만원쯤 됐어요. 그런데 ‘닭장집’ 월세가 3만원이었어요.”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중심에 있었던 심상정(민노당 의원·전 대우어패럴 미싱사)은 훗날 한 인터뷰에서 80년대 구로동 여공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다림질하고 프레스를 다루는 13~16살의 ‘시다’들은 6만원쯤 받았고 3~4명이 닭장집에서 칼잠을 잤다”고 전했다. 고소득층 자녀들이 선호하던 ‘나이키’ 운동화가 4만~5만원대였던 터라 계급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노동자시인 박노해는 시를 통해 밑바닥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고발, 문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긴 공장의 밤/시린 어깨 위로/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드르륵 득득/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시다의 언 손으로/장미빛 꿈을 잘라/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끝도 없이 올린다”(‘시다의 꿈’ 중에서)
-기획·집필에 참여한 사람유시춘(소설가) 이우재(자유기고가) 김남일(소설가) 황인성(인권운동가) 정재돈(농민운동가) 한상봉(자유기고가) 김명인(문학평론가) 최민희(민언련 사무총장) 박노승(경향신문 논설위원) 문성현 (" 미디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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