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다음 까페 김연 그리고 판소리(http://cafe.daum.net/kimyouen)에서 옮겨 놓은 것이다
새해를 맞아 도내 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중추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을 만난 그들이 일구고 있는 예술과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전북문화의 희망을 가늠해 본다. /편집자주.
“나 같은 사람 뭣이 있다고 만나자요. 아이고 쑥스러운디….” 소리판에 오르면 호방한 통성으로 청중을 휘어잡는 김연 명창(40·도립국악원 판소리부 교수)도 이런 구석이 있었나. 부담스럽다는 말을 뒤로하고 그를 만난 지난 2일은 국악연수가 일제히 개강하는 날. 초급반 수업이 있는 그의 가방에 종이뭉치가 한 가득이다.
“첫 날이라 선생 소개를 해야하는데 일일이 말로 하기 뭐하고, 공연 때 팜플렛을 챙겨와 봤어요. 내 팬이 돼야 소리공부도 신이 날 텐데. 잘 될까 몰라요.”
벌써 5년째 계속된 ‘왕초보’들과의 판소리 수업이지만 때마다 그의 마음은 설렌다. 판소리에 ‘판’자도 모르는 그들의 소릿길 입문에 제대로 추임새를 넣고 싶은 바람에서다.
열여덟 시절에 석촌호수에서 명창 박봉술선생의 소리에 이끌려 소리꾼이 된 지 20여 년. 구전심수 도제교육만으론 시대가 원하는 소리꾼이 될 수 없겠다 깊어 스물 여섯 늦깍이로 전북대에 입학, 전주와 연을 맺었다.
전남 신안이 고향인 그가 전북에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은 일. 어려운 가정형편에 ‘투쟁적’으로 대학시절을 보냈고, 명창 이일주선생 문하에서 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로 소리를 익혔다. 전주대사습에서 여러번 고배를 마시고, 결국 국창 임방울국악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 명창 반열에 선 것이 지난 2002년.
명창 반열에 오르니 ‘다시 낮아졌다’고 그는 말했다. 소릿길에 입문하면서 스승처럼 청중을 찾아가 소리판을 벌이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게 된 것도 그것이 계기가 됐다.
“소리는 결국 삶인데, 그 삶과 어울릴 때 우리소리가 진정한 가치를 얻을 수 있지요. 공연장에서의 소리도 좋지만, 어디든 자리를 펴고 예정되지 않은 청중들과 호흡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소리판이 아닐까해요.”
이런 마음에서 지난해 6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덕진공원에 자리를 편 그의 소리판은 어느새 전주의 명물이 됐다. 단골로 찾아드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은 물론이고, 20대 젊은 연인들마저도 그의 구성진 소릿가락에 귀를 기울인다. 뿐이랴. 부산에서 왔다는 한 중년신사는 전주가 왜 소리고장인지를 알겠다며 무릎을 치고 간 일도 있다.
겨울이라 잠시 휴지기를 두었지만 설 지나고 날이 풀리는 2월엔 다시 고수와 소리꾼 1인2역의 이 작은 소리판을 재개할 셈이다.
“이일주 선생님의 소리에, 소리로 형상을 그리는 오정숙 선생님을 따라 저도 그렇게 소리판을 지키고 싶습니다. 늘 대중 곁에서 울고 웃으며 삶의 희노애락을 담아내는 소리꾼이요.”
그가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펼치는 공무원 연수가 매년 인기강좌에 오르는 이유도 이런 바탕에서 연유한다. 김 명창은 올해 수궁가 완창발표회와 판소리 다섯바탕을 무대를 준비로 또 한참은 바쁠 태세다.
“불혹이 됐으니 더 이상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지 않을 때가 됐지요. 소외된 이웃과 대중 곁으로 더 바삐 걸음하면서 스스로의 소리공부에 매진할 겁니다. 나누면서 더 많이 얻게 되겠지요”
첫 수업에 늦으면 안된다며 서둘러 총총 걸음을 떼는 그의 모습에서 전북국악의 희망을 읽는다. 사학을 전공하고 원광대에 출강하는 연하의 남편 이병규씨 사이에 엄마를 따라 소리공부를 하겠다는 정인이, 기영이 남매가 있다. /최홍은기자·tot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