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예술

늦은 시작

참된 2008. 10. 1. 09:11

                            

                          ▲  故 권명희 조합원 [출처: 정용택 제공]

 

 

늦은 시작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 (28) - 故권명희 조합원과 김성만 동지

연정 (르뽀작가)  참세상   2008년09월26일 19시58분

 

 

노래를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불가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며
난 아직도 이십대 아니라 그 할애비라도
따라 잡을 수 있다며
내 열정은 아직도 뜨거웁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서투른 나에게
봄날처럼 안겨오는
미소가 하나하나
너무 고맙다

-김성만의 첫 번째 앨범 ‘늦은 시작’표지에서
 

기륭투쟁 1129일 차가 되던 9월 25일

명희 언니 소식을 접하고, 기륭전자 농성장에 와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앉아있다 가버린 이가 있었다. 가수 김성만 선배다.
 

성만 선배는 기륭분회 조합원들에게 명희 언니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해준 사람이다. 2006년 어느 날, 우연히 부천 순천향병원에서 명희 언니를 만났다고 한다. 늘 조용하고 말이 없던 명희 언니가 먼저 와서 “노래 좋아 한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성만 선배가 조합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조합원들이 언니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지만, 언니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결국, 이를 수상하게 여긴 조합원들이 언니네 집에 ‘쳐들어’ 가게 되고, 언니는 그제서야 암 투병 중임을 이야기한다.
 

▲  가수 김성만 동지가 권명희 조합원에게 선물한 앨범 '늦은시작'

지난 주, 성만 선배가 명희 언니에게 전해달라며 음반 한 장을 분회에 맡겼다고 한다. '김성만의 늦은 시작'이라는 타이틀의 앨범이었다. 2003년도에 나온 앨범이다.
 

“무려 10년이 넘게 투쟁가를 쓰지 않았습니다. 투쟁가는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메시지가 담긴 포크였습니다. 포크음악 등 다양한 리듬에 나를 담아 내는 것 사회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내 삶 등등. 또한 직설적이지 않은 언어로 노래를 그려나간 것이 제 음반 '늦은 시작'입니다.“ - 가수 김성만의 블로그 ‘삶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라’中에서
 

“내가 명희 씨한테 선물 하나를 하고 싶은데, 뭐가 좋겠냐고 기륭동지들한테 물어봤어요. 기륭동지들이 내 앨범이 좋겠다고 하더라고. 명희 씨가 집에서 애들하고 내 사이트에 들어와서 내 노래를 들었다고 하더라고. 어디서든 애들하고 같이 듣기에는 편안한 포크 음악이 좋을 것 같아 이 음반을 선물하게 됐지. 이 음반은 내 나이 마흔 무렵을 담은 건데, 명희 씨가 나이이기도 하고...”
 

문득, 그 음반을 선물한 이유가 궁금해져서 성만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연 때문에 밖에 나와 있는 상황이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성만 선배는 자신이 느꼈던 늦은 시작의 기쁨과 확신을 언니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앨범이 언니에게 전달되기 전에 언니는 뭘 시작해도 아직은 늦지 않은 마흔 여섯의 나이에 먼 길을 떠나버렸다. 정성과 사랑을 담아 서명한 음반에 실린 노래를 들어보기도 전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비행기 타고 여행 한 번 가보는 그 소원을 이루기도 전에...


“아름다운 무늬로 가득한 사람
우리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를 기억합니다 성만“
 

그 음반은 언니의 영정 옆에 놓이게 될 거다. 언니가 떠나는 길에 다정한 벗으로 동행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불법파견도, 노예 노동도, 문자해고도, 용역깡패도, 경찰 폭력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언니로 하여금 이 세상과 그 끝에서 만났던 이들을 추억하게 하는 매개체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늦은 시작’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남아있는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우리들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모든지 시작을 해야지. 내 사랑을 보여줘야지.”
 

뭘 보다가 뭐가 두렵니 그렇게 푸념을 하니
그저 모든지 시작을해야지 내 사랑을 보여줘야지
이제그만 한숨떨치고 내손을 굳게 잡아봐
한1년만 젊었으면 이듬에 또 하겠지

야야야야야야 풀잎은 늘푸르고
야야야야야야 강물은 또흐른다.

겨울가고 봄이오면 다시금 새싹이 돋고
우린 날마다 새로움으로 무엇을 하고있을까
여름가고 가을오면 투명한 잠자리하나
영글어진 들녘에서 우리 삶도 익어가겠지

- 김성만의 노래, '늦은 시작'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