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며

장마[연정의 바보같은 사랑]단식농성 43일차, 기륭전자분회 교섭 있던 날

참된 2008. 7. 27. 18:00

 

 

장마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22) - 단식농성 43일차, 기륭전자분회 교섭 있던 날

 

연정(르뽀작가)  참세상 2008년07월25일 10시59분

 

 

“오늘 타결이 되면 내일 아침 최동렬 회장 집 일인시위 안 가도 되니까 늦잠 좀 실컷 잘 수 있으려나...”

7월 23일 밤 10시, 교섭 시작을 얼마 남겨두고 은미가 중얼거린다.

오늘 밤, 타결이 된다면 은미는 늦잠을 잘 수 있고, 인섭 오빠는 주말에 있을 꽃다지 콘서트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43일차 단식을 하고 있는 4명의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단식을 풀고, 외딴섬 같은 옥상에서 내려와 병원에 가서 포도당 주사를 맞고, 한 달 보름 만에 샤워를 하고, 이미 미각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 혀에 따뜻한 미음 몇 방울이라도 묻혀볼 수 있을 것이다. 투쟁이 끝나고 가장 먼저 생기는 삶의 변화는 무척이나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교섭 장소인 관악지청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나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다. 지난 3년간 기록해 온 기륭투쟁을 어떻게 정리를 해서 세상 사람들과 만나게 할 것인가가 주요 화두였고, 그동안 절반이라도 초고라도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기도 했고, 투쟁이 끝나면 조합원들 만나기도 힘들 텐데 부족한 인터뷰는 어떻게 하나 하는 자잘한 걱정들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조합원들은 별 기대가 없다. 그동안 부푼 꿈을 안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륭전자는 6월 교섭 자리에서 “조합원들을 결코 배신하지 않을 테니 나의 진실성을 믿어 달라.”고 조합원들에게 직접 얘기하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뒤통수를 치기도 했었다.

▲  7월 23일 교섭 시작 장면

그렇다고 일말의 희망마저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아무 희망이 없다면 이 고통스런 투쟁을 할 수가 없다. 오늘, 조합원들의 잘 될 거라는 기대감은 30% 정도다. 오늘 자리는 오후에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 대표가 최동렬 회장을 불러다가 야단을 쳐서 사측이 노조에 요청을 해서 급하게 밤 10시에 마련된 자리다. 교섭을 해봐야 알겠지만, 단식자들의 건강문제 때문에 조합원 모두 하루라도 빨리 타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배영훈 대표이사가 바이어를 만나고 늦게 오는 바람에 20분 정도 늦게 시작한 교섭은 2번 정회를 포함하여 1시간 30분 만에 끝나버렸다. 회사가 한나라당, 노동부와 협의하여 들고 나온 안은 5개월 직업훈련 후에 기륭전자와 무관한 제3자가 설립한 신설회사에 직업훈련 상황을 확인한 후에 근무를 하다가 2009년 12월에 기륭전자 정규직화 여부를 결정하여 정규직 근로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었다.
 
 사측은 여전히 직원들 반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협안을 갖고 나왔다고 둘러댔다. 교섭 자리에 배석했던 장의성 서울지방노동청장과 사측은 이 안을 받지 않으면 더 이상의 교섭은 없다는 뜻을 내비치며 이 안을 받으라고 했단다. 결국 노조 측 내부 고민 후에 다시 교섭 일정을 잡기로 한다.
 

최소 기륭전자가 직접 설립한 자회사에 근무 후 정규직화를 최소 요구안으로 제시했던 조합원들에게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당장이라도 벅벅 찢어버리고 싶은 안이었지만, 조합원들은 참는다. 단식자들 때문에 교섭 틀을 깰 수 없어 고민하는 것 같았다.
 

▲  교섭이 끝나고 조합원들과 밖으로 나오는 배영훈 대표이사

1층 현관으로 나오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배영훈 대표이사와 서울지방노동청장은 운전기사가 들고 있는 우산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차를 타고 사라진다.
 

“장난해? 우리가 당신들처럼 그렇게 시간이 많아서 여기 온 줄 알아?”

배영훈 대표이사도, 서울지방노동청장도 다 떠나버리고, 관악지청 직원들과 금속노조 사람들만 남아있는데, 행난 언니가 절규한다. 단식자들 때문에 참았던 울분이 터져 나온 거다.

조합원들과 금속노조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도 우산을 펴들고 터벅터벅 전철역을 향해 걷는다. 일찍 끝나 전철을 타고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택시를 타고 가다 내렸는지 문이 열린 택시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구역질을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도, 어깨동무를 하고 비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여자들의 모습도 서글프다.


기륭 투쟁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쭉 ‘구로디지털단지역’이었던 역 이름이 오늘은 낯설다.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면 구로공단의 모든 노동자들이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며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집회 때마다 이야기하던 단식 43일차 김소연 분회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륭 투쟁은 ‘구로공단역’이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이름이 바뀐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시작된 투쟁이다.


은미는 내일 아침 일찍, 졸린 눈을 비비며 껑충하게 올라간 우비를 입고 최동렬 회장집 앞으로 일인시위를 하러 갈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길고 지루한 장마가 끝날 때 쯤, 기륭 동지들의 단식도, 기륭투쟁도 끝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