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춤꾼

“오월 그날 아픔에 작두 타는 ‘거리의 발레리노’ 됐죠”

참된 2018. 1. 4. 15:45





“오월 그날 아픔에 작두 타는 ‘거리의 발레리노’ 됐죠”

등록 :2017-05-17 23:11수정 :2017-05-17 23:11   한겨레




【짬】 다큐 ‘바람의 춤꾼’ 주인공 이삼헌씨

발레리노 출신 춤꾼 이삼헌씨가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5·18’를 맞는 소회를 얘기하고 있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발레리노 출신 춤꾼 이삼헌씨가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5·18’를 맞는 소회를 얘기하고 있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칼날을 직접 갈았다. 그 날카로운 날 위에 맨발로 올라섰다. 작두를 탄 것이다. 신 내린 박수무당도 아닌, 젊은 남자 대학생이 작두를 타는 모습에 모두들 놀랐다. 굿당이 아닌 대학가 시위 현장이었다. 반미 분위기가 강했던 당시, 그는 춤을 추다가 살아있는 닭을 성조기로 감싼 뒤 자신의 입으로 물어뜯는 ‘미제 응징’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사방에 닭의 피가 튀겼다. 강렬했다. 그의 춤은 그렇게 시위 현장의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그는 ‘거리의 춤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위 현장의 춤꾼’이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미선의 추모 현장부터 쌍용차 해고 노동자 시위 현장, 최근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서, 그는 춤을 추었다. 그의 춤은 ‘아팠다’. 그래서 진정성이 묻어났다. 애초 그는 고급스런 무대에서 우아함을 꿈꾸던 발레리노였다. 그러나 시대의 아픔은 그를 거리로 내몰았고, 그는 그것을 기꺼이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30년째 거리에서 춤추는 이삼헌(53·사진)씨는 고교 시절 직접 겪은 광주항쟁의 처절했던 아픔을 아직도 가슴 시리게 간직하고 있다.

중2때 스스로 발레학원 찾아가 입문
“80년 5월 전남도청 죽음 현장 목격”
탈춤반 가입 ‘대학가 무당’으로 활약
군대 훈련중 공황장애 발병해 고통

시위현장 찾아 ‘진혼의 춤사위’ 30년
친구 최상진 감독 기록해 오늘 시사

그는 학창 시절 “지극히 존재감이 없었다”고 했다. 성적도 바닥이었다.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를 흥분시킨 것이 발레였다. 중학교 2학년 어느날,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남자가 발레하는 장면을 보았다. 무대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발레리노를 보고 넋이 빠졌다. 곧바로 광주시내의 발레 학원을 찾아갔다. 물론 농사를 짓던 부모는 반대했다. 3남7녀의 막내였던 그는 누나들에게 용돈을 얻어 간신히 학원에 등록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스스로 발레를 배우러 온 것을 기특하게 여긴 학원 원장은 수강료를 반값으로 깎아주고, 발레복도 내줬다.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은 때문인지, 그의 몸짓은 곧 빛을 발했다. 고교 시절 전국 발레 콩쿠르에서 여러차례 우승을 했다. 그리고 세종대 무용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을 중간에 그만두어야 했다. 독재 정권을 몰아내기 위한 시위 현장에 몸을 던졌다. 한국의 춤을 배우겠다고 들어간 탈춤반은 대학생 의식화의 선봉대이자 문화 선전대였다. 시위 전단지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지다가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는 ‘대학가의 무당’으로 불리며 발레리노가 아닌 시위 현장의 춤꾼으로 변신해갔다.

1980년 5월 고교 1학년 때 그는 계엄군의 총탄에 죽은 시민들이 널려 있는 옛 전남도청을 목격했다. 짙은 분향 내음과 비린 피 냄새가 뒤섞인 그곳에서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았다. 집 가까이 있는 광주교도소에서 들리는 총소리에 새벽잠을 설쳤다. 공포의 나날이었다. 그때의 두려움은 그의 잠재의식에 숨어 있다가 군 복무 중에 괴롭혔다. 공황장애였다. 제식훈련을 받다가 그는 혼절했다. 광주 진압 군인의 영상이 제식훈련 지휘관의 구령 때문에 되살아난 것이다. 그 뒤로도 그는 공황장애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춤을 부르는 시위 현장의 확 트인 공간에서 치유하려 애를 썼다.

“너무 아픈 시대를 살아왔어요. 나의 조그만 몸짓이, 그늘진 시대에 작은 희망이길 바랍니다. 아프고 소외된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는 것도 과분한 바람일 것입니다.”

그의 춤은 아주 독특한 창작무의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서양춤인 발레와 전통 한국춤이 한민족 특유의 한의 정서와 융합되면서 새로운 춤사위가 빚어진다. 대통령 탄핵 시위가 한창일 때는 하루 걸러 광화문광장에서 춤을 췄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항의해 만든 연극무대 ‘블랙 텐트’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과 고 백남기 농민의 혼을 달래는 창작무 <산천초목>을 추기도 했다.

2014년 그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샤먼축제에 진혼무를 추는 한국 전통무용가로 초대받았다. 공황장애로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그는 동해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배로 간 뒤, 유라시아 횡단열차를 타고 파리로 갔다. 비행기로 18시간 걸릴 거리를 20일 걸려 간 것이다. 가는 도중 곳곳에서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과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위한 진혼춤을 추기도 했다.

그의 몸짓을 친구인 최상진 영화감독이 15년 동안 필름에 담았다. 최 감독은 이씨의 시위 현장 몸짓을 끈질기게 기록했고, 마침내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춤꾼>으로 완성됐다. 새달 6일 전국의 17개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상영될 이 다큐의 내레이션은 영화배우 배종옥씨가 재능기부로 맡았다. 18일 건국대 케이유(KU)시네마테크에서 언론 시사회를 연다.

“1980년대 광주부터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한국의 현대사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춤추는 내내 아팠습니다. ‘바람’은 곧 ‘바람’입니다. 희망의 나라를 바라는 저의 몸짓은 봄바람이 불면 유난히 아려옵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