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된 '민중가수 정세현'의 공연
'광주출정가'에서 '산사문답'으로
▶'범능 스님'이된 '민중가수 정세현'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 무엇이 두려웁냐 출전하여라 / 억눌린 민중의 해방을 위해 / 나가 나아가 도청을 향해 / 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민중가수 정세현'을 기억하는가, 이 노래 '광주출정가'를 만든 이. 지독한 저항정신을 서정성 진한 우리가락에 담아 노래로 싸우던 이. 그의 노랫말처럼 '꽃등 들어 불밝히'며 한 시대를 가로질러갔던 이.
'민중가수 정세현'에서 '스님 범능'으로...
그가 10여 년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는 이제 '민중가수 정세현'이 아니다. '정세현'에 얽힌 속세의 연을 떠난 '스님 범능(梵能)'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노래'로 우리와 만나려 한다. 탈속(脫俗)의 수도승이 범속(凡俗)한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얘기는 무엇인가.
2집 앨범인 '먼 산' 발간을 기념하여 오는 4월 14일 주말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를 전화로 미리 만났다. 공연이라는 표현이 거북스러운 듯 그는 "지인들과 편하게 만나 얘기도 나누고 밥도 나눠먹는 자리"라고 설명한다.
"수행하는 입장에서 보면 삶은 허망한 것이어서 없어질 것이거든요.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해 하는 것 모두가 번뇌입니다. 노래란 이런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인데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이 항시 마음이 잔잔하고 평온해졌으면 합니다."
그는 '평온'이란 말을 자주 썼다. 세속과 탈속의 경계어(境界語)처럼 '평온'이란 말이 다가왔다. 그는 '평온'의 상태를 일러 "잔잔한 물"이라 했다.
"세속에서의 제 음악은 사회문제를 많이 담았습니다. 지금은 삶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공감하고 싶습니다. 예전 음악이 국악에 담긴 전라도 사람들의 감수성을 많이 표현했다면 지금의 제 음악은 감성어법은 사라지고 평온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힘이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저마다 가지고 있는 정서에 따라 제 음악을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정세현식 전투적 서정성'을 추억하는 이들에겐 '범능식 평온'은 탈속자의 유약한 변일 수 있겠다. '정세현'과 '범능'을 가름하고 동일시하는 곳에 '인연의 굴레'가 놓여 있다. 그렇다면 '스님 범능'은 '민중가수 정세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미술평론가 이세길과 주고받은 '세간문답'에서 그는 이렇게 답한다,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후회없는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입산한 지 9년. "(사람은) 좋아하는 인연따라 사는데 세속보단 산에 있는 것이 편안하고 좋아서" 입산했다는 범능 스님. 그는 이번 주말공연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들려주는 노래"를 부를 계획이다.
범능 스님이 살아온 길
1961년 전남 화순 출생 1989년 전남대 예술대학 국악학과 피리전공 졸업 89년-90년 진도 에서 인간문화재 51호인 조공례 선생께 민요 사사 90년 91년 일본 사가현 주최 아시안 들노래 페스티발 우리소리연구회 대표로 참가 87년 광주 노래패 "친구"창단 활동 90년 광주 "우리소리 연구회" 창단 활동 93년 산문 입산
대표곡|광주출전가/꽃아꽃아/혁명광주/진군가/섬진강/꽃등들어 님 오시면/내님 등 다수
`노래가 설법보다 포교에 더 효과적`
'노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한 범능 스님이 네번째 앨범을 낸 것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연다. 3일 오후 8시 전남 화순군 화순읍 만연사의 대웅전 앞에서다. 이 음악회 무대엔 범능 스님 외에 사회를 맡은 고규태 시인과 김용택.도종환 시인, 국악 실내악단 '황토제' 등도 함께한다.
그의 새 앨범 '무쏘의 뿔처럼'에는 도종환.김용택씨 등의 시와 석용산 스님의 글에 가락을 붙인 '바람이 오면' '허공의 새여' '무쏘의 뿔처럼' '낙화' '푸른 연가' 등 10곡이 실려 있다. 하나같이 듣다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이다.
범능 스님은 한때 운동권 가요의 작곡자이자 민중 가수였다.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무등산 정기가 우리에 있다/무엇이 두려우랴 출전하여라/억눌린 민중의 해방을 위해/나아가 나아가 도청을 향해/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386 세대들의 귀에 익숙한 이 '광주 출전가'를 작곡한 '정세현'이 바로 그다. '꽃아 꽃아 아들꽃아 오월의 꽃아'로 시작하는 '꽃아 꽃아'와 '진군가' '혁명광주'도 그의 작품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고 민중가수로 활동하던 그는 85년 전남대 국악학과에 들어가 피리를 전공했다. 졸업 후엔 우리 소리 연구회를 만들고, 진도에 머물며 인간문화재에게 민요를 배우는 등 노래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러다 93년 홀연히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속세를 떠나 전국의 사찰을 떠돌다 충남 예산군 수덕사에서 출가한 것이다. 범능 스님은 출가 이유를 묻자 "다 인연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음악이 추구하는 근본과 수행의 궁극이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집안 분위기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그의 집은 6남매(5남1녀) 중 4형제가 불가에 귀의했다.
그는 8년 만인 2001년 출가 전에 만든 노래들을 모은 '오월의 꽃'과 산사에서 만든 노래들을 담은 '먼산'이란 앨범 두 장을 들고 대중 앞에 다시 섰다. "예불도 염불도 다 음악"이라는 그는 "산사에 있을 때도 틈나는 대로 작곡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정세현'이 '범능'으로 변한 것 만큼 음악도 많이 달라졌다. 출가 전 노래가 사회 현실의 모순을 직접 다뤘다면, 출가 후의 노래들은 삶의 근본적인 문제와 존재 자체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범능 스님은 "긴 설법보다는 짧은 노래가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작곡하고 공연하고 음반을 내는 것이 나의 보시이고 공양이고 포교"라고 했다. 그는 화순군 북면 불지사에서 안거 중이다. |